올리버 크롬웰이 실시했던 공화정, 10년만에 끝나...'일장춘몽'으로 끝난 체제전환
영국 왕실이 사라지지 않을 현실적 이유도 존재한단 평가 나와
영국 정치체제의 강점은 '변화 대응성'

현지시간 14일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이 버킹엄 궁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되는 모습.  [사진=로이터]
현지시간 14일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이 버킹엄 궁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되는 모습. [사진=로이터]

엘리자베스 2세를 이어 영국 왕위에 오른 찰스 3세의 행동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가 현지시간 10일 열린 즉위식에서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려 할 때 오른팔에 걸리적거리는 만년필 통을 치우라며 측근에게 인상을 쓴 장면이 영상으로 공개되는가 하면 현지시간 13일에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Belfast)에서 만년필에서 잉크가 샌다며 짜증을 냈던 일화가 보도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보다 못한 인격과 품성을 지녔다', '찰스 3세 대에 이르러 영국 왕실이 폐지될 조짐이 보인다' 등의 부정 일색인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찰스 3세 개인에 대한 평가를 영국 왕실 존속 여부 판단에 적용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단 지적이다. 영국 왕실이 역사적·현실적으로 영국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한다면 영국인들은 찰스 3세 때문에 왕정을 폐지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대신 평가가 나쁘지 않은 윌리엄 왕세자가 하루빨리 왕위에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문물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하는 영국인들의 '보수적'인 성향과 맞물려 영국은 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쉽사리 바뀔 것 같지 않단 분석이 나온다.

찰스 3세가 현지시간 14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되는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을 뒤따르는 모습. 일각에선 찰스 3세가 어머니보다 군주로서 부적합하고 부덕하여 왕실 지지 여론이 급락해 종국엔 군주제가 폐지될 것이라 주장한다. [사진=로이터]
찰스 3세가 현지시간 14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되는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을 뒤따르는 모습. 일각에선 찰스 3세가 어머니보다 군주로서 부적합하고 부덕하여 왕실 지지 여론이 급락해 종국엔 군주제가 폐지될 것이라 주장한다. [사진=로이터]

 

올리버 크롬웰이 실시했던 공화정, 10년만에 끝나...'일장춘몽'으로 끝난 체제전환 

먼저 영국 군주제가 쉽사리 폐지될 수 없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 영국은 17세기에 이미 '공화국'을 잠시 경험해본 적이 있다. 그것도 '왕권은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왕권신수설'을 거스르고 국왕의 목을 자르면서까지 단행한 체제전환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공화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약 10년의 기간만에 영국은 공화정에서 다시 군주국으로 회귀했다. 세계사에서 '구체제(앙시앵 레짐, Ancien Regime)'를 혁파한 시민혁명으로 인정되는 프랑스 혁명보다도 1세기 이상 앞서 공화국을 경험한 영국이 왜 다시 왕을 모시는 나라가 됐을까.

이 과정의 중심엔 비운의 왕 찰스 1세(1600-1649)와 잉글랜드 공화국 건립의 일등공신이었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 있다.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을 겸해 영국에서 처음 '동군연합(同君聯合)'을 이룬 왕이자 스튜어트 왕조의 시조였던 제임스 1세가 승하한 후 그의 아들 찰스 1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에겐 두 왕국을 적절히 다스림과 동시에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던 종교 문제를 예민하게 다뤄야 한단 과제가 남겨져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잉글랜드에서 성장하고 있던 청교도 젠트리 계급 및 그들로 구성됐던 잉글랜드 의회와 원만하게 지내야 했으며 , 스코틀랜드의 경우엔 잉글랜드의 국교회(Anglican Church)에 포함되길 거부하던 스코틀랜드 장로회가 큰 문제였다. 

찰스 1세의 초상화.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던 왕이었다. 그 때문에 복잡한 '동군연합' 왕국의 정치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단 평가다.
찰스 1세의 초상화.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던 왕이었다. 그 때문에 복잡한 '동군연합' 왕국의 정치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단 평가다.

문제는 찰스 1세가 '왕권신수설'에 심취해 모든 사안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특히 잉글랜드에서만 자란 그는 아버지와 달리 스코틀랜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 결과 잉글랜드 의회와 반목해 한동안 의회 없이 홀로 통치해야만 했으며, 스코틀랜드를 종교적으로 억압하는 과정에서 스코틀랜드 장로회와도 척을 지게 됐다. 결국 스코틀랜드·아일랜드 반란이 연이어 터지자 이를 독단적으로 진압하려는 찰스 1세와 왕의 정치적 행동은 자신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회측이 충돌하며 '잉글랜드 내전'이 터졌다. 이 때 의회측 사령관으로 나선 사람이 올리버 크롬웰이다.

올리버 크롬웰의 초상화. 크롬웰은 의회를 장악하고 '신형군'을 조직하여 찰스 1세와 왕당파 세력을 격파했다. 종국엔 찰스 1세를 처형하는 데 이른다.
올리버 크롬웰의 초상화. 크롬웰은 의회를 장악하고 '신형군'을 조직하여 찰스 1세와 왕당파 세력을 격파했다. 종국엔 찰스 1세를 처형하는 데 이른다.

2차에 걸친 내전은 크롬웰이 '신형군(新形軍, New Model Army)'을 조직하는 등 활약을 펼치며 결국 의회측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이 과정에서 찰스 1세의 왕으로서의 권위가 지나치게 추락해버렸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의회로부터 앞뒤로 공격받아 진퇴양난에 빠졌던 그는 잉글랜드가 보기엔 어이 없게도 스코틀랜드에 항복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로부터 찰스 1세의 몸값을 받은 후 그를 잉글랜드에 넘겨 버렸다. 이로써 찰스 1세의 꼴은 우스워졌다.

그 후에도 그는 포기하기 않고 옥중에서 잔존 왕당파와 연락하면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의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올리버 크롬웰은 찰스 1세를 처형하기로 마음먹었다. 의회 내 국왕 사형 반대파를 진압한 크롬웰의 주도 하에 결국 찰스 1세는 사형되고야 만다.

찰스 1세의 처형을 묘사한 그림. 당대 유럽엔 '왕권신수설'이 공유되고 있었으며 점차 절대왕정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일개 신하들이 국왕을 처형한단 사실에 유럽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찰스 1세의 처형을 묘사한 그림. 당대 유럽엔 '왕권신수설'이 공유되고 있었으며 점차 절대왕정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일개 신하들이 국왕을 처형한단 사실에 유럽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그 후 잉글랜드 왕국은 약 10년간 잉글랜드 공화국이 됐다. 하지만 '호국경(護國卿)' 크롬웰은 엄격한 청교도 정책을 폄과 동시에 군사독재를 실시했다. 이에 잉글랜드인들은 크롬웰이 온 나라를 '수도원'처럼 만들고 있다며 왕정 시대가 오히려 자유로웠다고 회고하는 한편 공화정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롬웰이 1658년 사망하자 프랑스에 도망가 있던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는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업고 다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찰스 2세의 명으로 크롬웰의 시신이 부관참시되었을 때, 영국의 공화정도 '일장춘몽'이 되어버린 셈이다.

 

영국 왕실이 사라지지 않을 현실적 이유도 존재한단 평가 나와

영국 군주제를 지탱하는 현실적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영국 왕실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들어설 경우 영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상당히 하락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연방에 속한 54개국 중 14개의 '영연방왕국(Commonwealth Realm)'이 영국 왕을 국가 수장으로 모심으로써 유지되고 있는 '연합왕국' 체제가 완전히 깨져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 '영연방왕국' 중 인지도가 있고 각각의 국력도 일정 수준 올라 있는 국가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있다. 이 나라들은 모국 영국과 함께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파이브아이즈(5개의 눈)'에 속해 있기도 하다. 즉 '영연방왕국'은 영국과 미국의 간접적인 연결고리이기도 한 셈이다. 영국 왕실이 폐지되면 '영연방왕국'도 사라지게 되므로 이러한 네트워크가 유지되기 어려워질 수 있단 소리다.

'영연방왕국'을 나타낸 지도. 카리브 해 인근 국가들은 소국이지만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는 영국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동시에 미국에게도 핵심 동맹국들이다. 이들로 인해 영국의 국제적 위상이 유지되기도 한단 평가다.
'영연방왕국'을 나타낸 지도. 카리브 해 인근 국가들은 소국이지만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는 영국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동시에 미국에게도 핵심 동맹국들이다. 이들로 인해 영국의 국제적 위상이 유지되기도 한단 평가다.

또한 영국이란 나라 자체의 유지도 어려워질 수 있다. 영국 왕실이 존재함으로 인해 잉글랜드·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의 결속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그 구심점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왕실 홈페이지는 왕의 역할에 대해 '군주는 천년간 발전해온 헌법적·대표자적 의무를 수행하고, 국가 정체성·통합·자부심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안정성과 연속성을 주고, 성공과 탁월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자발적 봉사의 이상을 유지한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영국 왕이 직접적인 정치 행위는 하지 않지만 '국가 원수(Head of State)'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서술이다. 이렇듯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왕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영국인들에겐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혼란, 체제의 마비가 올 거란 예측이 가능해진다.

아울러 영국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제로 전환되면 잔존하고 있는 영국 귀족제도 전면적으로 말소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이들이 신분을 기반으로 소유하고 있는 부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이들의 부가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배분해야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또 국고에 귀속될 부는 어떻게 선정되어야 하고 그 정도는 얼마일지에 대해서도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모될 인력, 시간, 재원, 여론 충돌이 만만치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영국 왕실이 국가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2019년 조사에 의하면 귀족과 상류층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는 잉글랜드 전체의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정확한 조사는 다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 역시 영국 정치체제가 급격히 변하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로 전망된다.

무엇보다도 영국 왕실이 전면 폐지되진 않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신있게 제시하는 이유엔 '체제 변혁의 절실한 요인이 없다'는 것도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체제 전환이 급격히 이뤄졌던 이유는 주로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충격이 발생해 현 체제로는 그에 대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구체제의 모순을 버티다 못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루이 16세의 목이 잘렸고,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소비에트 연방이 들어섰다. 한국의 경우엔 무능한 조선왕조는 속이 곪은 상황에서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개입이 결정타가 되어 멸망했고,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엔 한국전쟁을 겪으며 반공·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됐다. 반면 현재 영국은 이러한 '절체절명'의 국난을 겪고 있지 않단 것이다. 왕정 폐지 여론은 늘 존재하지만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당연히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영국 정치체제의 강점은 '변화 대응성'

일각에선 영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여전히 군주를 모시는 입헌군주국이란 모순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은 지배층이 변화하는 현실에 발맞춰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지 가능했던 '승자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국 지배계급이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단 사실은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의 저작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에서 잘 설명하고 있단 평가다. 

박 교수는 "보수주의는 변화에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며 "변화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정체되고 화석화된 사회를 낳을 뿐이고, 오히려 혁명이라는 과격한 변화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제도의 개혁이 때때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 "보수주의는 조심스럽고 숙고된 개혁을 건강한 사회의 필수적 요소로 받아들이며, 영국 보수당은 변화가 자신들의 손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낫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고도 했다. 이는 영국 보수당에 관한 설명이지만 영국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걸어온 행적을 고려한다면 영국 지배계급 전반의 자세라 해도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 보수당이 고루한 정치집단이 아닌 변화를 받아들인 역동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의 저작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영국 보수당이 고루한 정치집단이 아닌 변화를 받아들인 역동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의 저작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영국 지배계급의 정점에 있는 영국 왕실 또한 변화를 받아들여왔단 평가다. 국가를 직접 운영하려다 끝내 몰락했던 다른 국가의 왕가들과는 달리 영국 왕들은 현명하게도 '군림하되 통치하진 않는다'는 신조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통치권은 잃었지만 책임에서도 자유롭게 됐다. 국가 운영의 책임은 오롯이 영국 내각이 진다. 선례를 비춰봤을 때 영국 왕실이 언젠가 존망의 기로에 선다면 특권을 추가로 내려놓는 등 변화된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리란 분석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타당하게 보인단 평가다. 결국 폐지 여론에 힘입어 영국 왕실이 사라지게 될 것이란 예상은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가 있은 뒤 여왕을 추모하러 나온 영국 국민들 가운데 왕실 근위대 복장을 입은 아이의 모습. 영국인들은 자발적으로 여왕을 추모하러 나오고 있다. 이는 영국 욍실과 왕이 국가 정체성의 상징이면서 국가 통합과 자부심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단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사진=로이터]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후 여왕을 추모하러 나온 영국 국민들 가운데 왕실 근위대 복장을 입은 아이의 모습. 영국인들은 자발적으로 여왕을 추모하러 나오고 있다. 이는 영국 왕실과 왕이 국가 정체성의 상징이면서 국가 통합과 자부심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단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사진=로이터]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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