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칼럼] 우리가 거꾸로 착각하고 있는 국제질서, 냉정하게 국익을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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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2.09.20 09:29:52
  • 최종수정 2022.09.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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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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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구의 약 90%가 우크라이나 분쟁과 관련해 미국을 따르지 않는다(Nearly 90 Percent of the World Isn't Following Us on Ukraine). 9월 15일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전 사우디 아라비아 공관장 데이빗 런델David Rundell과 전 유럽중부군 사령관 정무 보좌관인 마이클 그푈러 Michael Gfoeller가 기고한 오피니언란의 제목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며 러시아는 선제공격을 감행한 침략국이니 악惡, 러시아를 제재하는 미국과 서방은 선善으로 여기는 한국인으로서는 어리둥절할 만한 내용이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푸틴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서구 미디어들의 내러티브 공세가 빗발치고 있는데 이와는 정반대 논조다.

이 글의 저자들은 미국에 친숙한 글로벌 정치, 경제 동맹시스템이 급변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런 변화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모스크바에 대해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정작 세계인구의 87%가 미국에 따르기를 거부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세계의 거의 90%의 나라가 미국을 따르지 않는다'는 뉴스위크의 오피니언.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세계의 거의 90%의 나라가 우리를(미국) 따르지 않는다'는 뉴스위크의 오피니언.

소위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등을 돌린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지만 그 ‘국제사회’라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히려 소수다. 당장 아시아만 봐도 대러제재에 동참을 선언한 국가는 한국, 일본, 타이완 정도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형성된 양극단의 국제질서가 확연히 해체되면서 국익에 따라 비동맹, 중립내지 다중협력체제로 양상이 바뀌고 있다.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은 인간의 속성인데 현재 국제질서의 변화를 보는 시각역시 마찬가지다. 상하이협력기구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믿었던 중공의 시진핑, 인도의 모디총리의 배신을 당했다는 서구 미디어의 내러티브를 국내 매체들이 그대로 받아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뉴스위크 오피니언의 일부.
뉴스위크 오피니언의 일부. '세계 인구의 87%가 우릴 따르길 거부해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시진핑이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분쟁과 관련해 러시아 지지의사를 삼갔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상하이 회동 바로 직전 중공권력 서열 3위로 시진핑의 측근인 중공 전인대 상무위원장 리잔수가 러시아 국가 두마의장 뱌체슬라프 볼로딘과 만나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 취지를 십분이해하며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인도의 모디 총리가 푸틴에게 전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서구편에 서서 러시아를 압박하는 모양새는 전혀 아니었다. 그저 원칙론을 말한 것에 불과했다.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푸틴, 중공의 시진핑, 인도의 모디는 상당히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과거의 고정관념인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실리를 추구하는게 지금의 국제관계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 터키다. 인도는 미국주도의 안보협의체 쿼드QUAD회원국이면서 러시아, 중공과 함께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주요 플레이어Major Player이기도 하다. 전통적 비동맹외교의 유산을 계승하면서 글로벌리즘에 반대되는 주권 민주 Sovereign Democracy를 내세운 러시아와 맹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는 국경분쟁으로 인해 중공, 파키스탄과 앙금이 있지만 상하이협력기구 프레임에서는 두 잠재적 적국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적대감이 있더라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할게 있으면 협력한다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상하이협력기구'에 참여한 주요 국가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상하이협력기구'에 참여한 주요 국가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세계가 우크라이나 분쟁을 계기로 금융 서비스 강국인 미국, 서방 대對 에너지 자원, 인구, 실물경제강국인 러, 중, 중앙아시아, 중동, 남미의 대결 구도로 변모하고 있다. 오랫동안 친미국가였던 사우디 아라비아는 OPEC+카르텔을 통해 러시아와 긴밀한 에너지 동맹을 맺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석우증산 요청을 공개거부하고 러시아산 정제유를 수입하기도 했다. 또 중공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동시에 시베리아에서 생산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해 유럽에 판매하고 있다.

인도도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와 일정정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정부도 자국의 경제실익과 민생을 위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겠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서구의 경제, 정치적 영향력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이 확대되는 추세다. 상하이협력기구SCO외에 브릭스BRICS도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EU, NATO, G7을 오히려 압도하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공, 남아프리카공화국의 5개국 집단인 브릭스BRICS에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터키가 가입의사를 밝히고 있다.

인도의 모디 총리,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 주석이 손을 맞잡은 모습.
인도의 모디 총리,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 주석이 손을 맞잡은 모습.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도 아직까지는 세계 경제 질서의 기둥으로 남아 있지만 신뢰는 크게 손상돼 예전같지 않다. 대러 경제제재의 일환으로 실시된 SWIFT결제 시스템에서의 러시아 퇴출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로인해 탈달러화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다른나라들로하여금 대안을 모색하도록 내몰고 있다. 러시아가 에너지 대금 지불을 루블이나 위앤화, UAE의 디르함으로 하자고 제안하자 중공과 인도가 여기에 따랐다. 달러 대비 자국통화가치의 하락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국가들이 탈달러화를 점차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페트로달러에 이바지해온 사우디 아라비아가 미국을 완전히 등지게 될 경우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는 걸정타를 맞을 수도 있다.

그동안의 국제질서를 규정해온 단어 세계화Globalization는 막을 내리고 있다. 세계화는 참가자가 자신의 이익을 증진한다고 믿는 경우에만 작동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대다수의 국가들이 서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스템을 부당하게 이용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규칙 기반 세계질서 Rules based World Order는 무너지고 새로운 대안이 태동하고 있다.

세계질서의 격변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한국은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19세기 영국총리를 지낸 파머스턴 경은 “영원한 친구도 없도 적도 없다. 오로지 우리의 영원한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유명한 말이 있다는 것은 알고만 있을 뿐이다. 현재 상황과 대입해 국제질서를 읽어내는 이는 드물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집트 원전사업에서 3조원 규모의 하청을 수주했다고 경사분위기다. 그런데 이 사업에서 러시아 원전사업체에서 재하청을 받았다는 사실은 도외시하거나 모르고 있다. 또 사우디 아라비아 신도시 건설에 참여할 꿈에 부풀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의 플레이어라는 점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직도 도식적인 사고에 빠져 국제정세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 구한말에는 외국문물이나 소식을 접하지 못해 그렇다 치더라도 세계경제 10위권의 중견국가를 차처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수준은 참으로 아리송할 때가 많다.

상하이협력기구의 판도를 나타낸 지도. 이번에 이란이 새로이 정식회원국으로 추가됐다.
상하이협력기구의 판도를 나타낸 지도. 이번에 이란이 새로이 정식회원국으로 추가됐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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