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의 의상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검은 베일(veil)’이 달린 모자가 반윤(反尹) 진영의 표적이 된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매체에서는 이 논란에 대해 커뮤니티의 내용과 댓글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김 여사는 베일이 달린 모자를 착용했다. [사진=연합뉴스]

베일 달린 모자는 과부만 쓰는 것이라는 등, 근거가 희박한 루머까지 동원돼 김 여사를 향한 조롱이 도를 넘어섰다.

주장 1=김어준, 19일 오전 TBS 뉴스공장에서 “베일 모자는 로얄 패밀리 여성만 쓰는 것” 조롱

하지만 이 논란의 단초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비롯됐다는 보도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김어준이 김건희 여사를 공격한 한 마디에, 반윤 진영이 일제히 동조했다는 것이 이 논란의 전모라고 볼 수 있다.

김어준은 19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조문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두고 “납득이 안 간다”며, “(대통령실이) 일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고 비난했다.

류밀희 기자와 함께 진행하는 이알뉴 코너에서도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이 조문과 장례식 참석인데, 일을 못한 거다”고 재차 비판했다. 그러면서 ‘외교적 결례’는 아니고 대통령실이 일을 못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문제는 코너 말미에 갑자기 김 여사의 모자를 거론하면서 시작됐다. 김어준은 “김건희 여사가 착용한 망사포 달린 모자는 영국 장례식에서의 전통”이라며 “그 전통은 로얄 패밀리 장례식에서 로얄 패밀리의 여성들만 쓰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장례식에 참석한 다른 나라 여성들이 검은 모자를 써도 베일은 안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르고 하셨나 봐. 적어도 영국에서는 그렇다. 모르시는 것 같아서 알려드렸다”고 비아냥댔다.

주장 2=20일 새벽 보배드림을 필두로 비난 글 쏟아져...‘왕족 패션’, ‘과부 패션’ 등으로 사실 왜곡

이 방송 이후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김 여사의 조문 패션에 대한 비난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보배드림’에서 김 여사의 베일을 가장 먼저 문제삼은 글은 20일 새벽 0시 5분에 올라왔다. 김 여사가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상복 패션을 따라했다는 주장이었다.

20일 새벽 0시 5분,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는 김건희 여사가 재클린 케네디의 상복 패션을 따라했다며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보배드림 캡처]
20일 새벽 0시 5분,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는 김건희 여사가 재클린 케네디의 상복 패션을 따라했다며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보배드림 캡처]

이 글을 시작으로 “이것은 큰 결례다. 여왕의 유족인 왕족들만 면사포를 쓰는 것”이라는 글 등이 이어졌고, 해당 글에는 “조문객이 상주의 상복을 입은 격”, “저거 쓰고 싶어서 영국 갔을지도”, “빨리 과부되고 싶은가 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또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에는 ‘현재 대통령 영부인 장례식장 의상이 문제 제기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검은 베일 모자는 과부가 아닌 이상 착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저런 모자를 모닝 베일(mourning veil)이라고 부르는데, 상중임을 알리려고 쓰는 게 유래고, 요즘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얼굴을 가리려고 혹은 과부임을 알리려고 쓴다”고 했다.

해당 글은 게시된 지 불과 2시간 만에 1000개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윤 대통령 부부 내외를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여성 이용자 비율이 높은 더쿠는 윤 대통령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면서 심지어 적대적인 커뮤니티로 꼽힌다.

팩트 = 각국 지도자 부인들도 ‘베일 모자’ 착용...미 폭스 뉴스, “모닝 베일은 왕족에 국한되지 않아” 보도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과 영부인 브리지트 여사가 19일(현지 시각) 열린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브리지트 여사는 베일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과 영부인 브리지트 여사가 19일(현지 시각) 열린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브리지트 여사는 베일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하지만 김어준의 발언이나 각종 커뮤니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여왕의 장례식에 참여한 퍼스트레이디들이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쓴 모습이 다수 포착됐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인 브리지트 여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부인 미셸리 여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부인 소피 그레고어 여사 등이 베일이 달린 모자를 썼다.

자이르 보우소나루(가운데) 브라질 대통령과 부인인 미셸리(왼쪽) 여사가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미셸리 여사가 베일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가운데) 브라질 대통령과 부인인 미셸리(왼쪽) 여사가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미셸리 여사가 베일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폭스뉴스는 “모닝 베일은 왕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방송사는 지난 17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서 여성 문상객들이 검은 베일을 착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의미는 이렇다’는 리포트를 통해 “왕실의 유족이 장례식에서 베일을 쓰는 것이 오랜 전통인 것은 맞지만, 왕족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1982년 모나코의 그레이스 왕비 장례식 때도 왕족 뿐만 아니라 다수의 여성이 검은색 베일을 썼다. 1963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그의 부인 재클린 여사가 애도 베일을 쓴 것은 이미 유명하다. 따라서 슬픔의 상징으로 착용할 수 있는 것으로, 왕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운데)의 부인 소피 그레고어 여사(왼쪽)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JTBC 캡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운데)의 부인 소피 그레고어 여사(왼쪽)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JTBC 캡처]

김 여사가 선택한 검은 망사 베일이 둘러진 모자는 ‘패시네이터’라 불리는 소품으로, 비스듬히 눌러 쓰거나 핀으로 고정해 착용하는 머리장식을 말한다. 실제로 영국 왕실 여성들이 많이 착용하지만, 조문 패션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생전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공식행사에서 무릎 아래까지 오는 정장치마에 패시네이터와 장갑, 스카프. 핸드백을 착용했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원피스와 패시네이터 색을 맞춰 착용한다.

이처럼 외신 기사와 각국 대통령 부인들의 베일 달린 모자 착용 사진이 알려지는 상황에서도 김어준은 20일 방송에서 ‘김 여사의 모자에 대한 비난’에 대해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았다. ‘보배드림’에서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의 베일에 대해 ‘머리를 묶기 위한 용도’라는 억지 주장만 제기됐다.

관련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