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시장이 긴축 기조로 전환되자, 국내 벤처 업계도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현 정부가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함에 따라, 민간 영역 출자도 연달아 감소하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2'에서 한 관람객이 국내 벤처·창업기업의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중기부는 CES 혁신상을 받은 총 404개사 중, 약 5분의 1인 74곳이 국내 벤처·창업기업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2'에서 한 관람객이 국내 벤처·창업기업의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중기부는 CES 혁신상을 받은 총 404개사 중, 약 5분의 1인 74곳이 국내 벤처·창업기업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정부 예산만 축소된 게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부 내에서 창업·벤처 정책을 총괄하고 벤처투자 활성화와 창업 관련 제도 개선 등을 담당하는 창업벤처혁신실장도 4개월째 공석이어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7개 기관서 벤처 예산 25% 삭감

정부는 2023년 예산안에서 중소벤처기업부를 포함한 7개 기관에서 벤처 활성화 예산을 25%나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한 모태펀드 출자기관 10곳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정부 편성 예산안의 모태펀드 출자액은 7045억원으로 나타났다. 작년의 9378억원에 비하면 2343억원이나 삭감된 것이다.

특히 소관 부처인 중기부의 예산은 2065억이 줄어드는 등 10개 부처 중 7개 부처의 예산이 삭감됐다. 예산이 증가한 부처는 문체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등 3곳이다.

벤처업계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벤처투자 예산을 2,300억이나 삭감했다며 “사실상 벤처시장을 방치하겠다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올해 연말부터 내년까지 벤처 혹한기가 도래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예산 확충을 통해 버팀막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모태펀드는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이다. 정부가 마련한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기관은 한국벤처투자이다. 모태펀드는 민간 투자의 자율성과 벤처 생태계의 성장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에 시작된 한국의 벤처 투자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주도한 모태펀드의 역할 덕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가 내년에 벤처투자 예산을 25%나 줄임에 따라, 벤처업계의 고통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청산기한 도래한 한국벤처투자 47개 자펀드중 93.6% 연장 신청...대안부재 상황?

최근 한국벤처투자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청산기한이 도래한 47개 자펀드 중 44개 조합이 청산기한 연장 신청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93.6%에 달하는 수치다. 작년 대비 15.6%포인트나 높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나달 3일 서울 서초구 한국벤처투자에서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벤처투자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나달 3일 서울 서초구 한국벤처투자에서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벤처투자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산기한 연장 결정은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벤처투자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분기 회수 실적은 4526억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나 감소했다. 기업 수 기준으로도 438개사, 21.2%가 줄었다. 2020년과 2021년 각각 전년 대비 41.4%, 77% 상승을 보인 회수 시장이 최근 들어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모태펀드가 투자한 벤처회사의 IPO상장 현황 역시 부진한 실정이다. 2021년 상반기 23개 기업(SPAC 제외)이 코스닥에 상장된 반면, 올해 상반기에는 15개 기업만이 상장에 성공했다.

4개월째 공석인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 인사는 10월 돼야 마무리

이런 가운데 벤처업계에서는 4개월째 공석인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 자리에 누가 올지, 인사가 언제 마무리 될지 관심이 높다. 차정훈 전 실장이 임기를 4개월 남기고 5월 19일 사직함에 따라, 인사혁신처는 6월20일 창업벤처혁신실장직 공개모집을 시작했다. 공석이 된 지 1달 만에 공개모집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벤처업계의 어려움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인 셈이다.

통상 공무원과 민간인을 불문하고 공개 모집하는 개방형 직위 채용의 경우, 임명까지 3개월 정도 소요된다. 따라서 창업벤처혁신실장 인사는 10월 2~3째주에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진다. 공석 5개월, 공모가 시작된 지 4개월 후인 시점이다. 중기부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동시에 시작된 개방형 직위 채용의 직위가 44개에 달해 임명 일정이 늦춰졌다”고 해명했다.

인사혁신처는 서류·면접 등 심사를 거쳐 8월12일 창업벤처혁신실장 최종 후보자 2인을 중기부에 보냈다. 후보자들에 대한 신원조사·인사검증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벤처업계, “현장 잘 아는 민간 전문가가 창업벤처혁신실장 돼야”

벤처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상과 경기둔화로 투자 혹한기인 만큼, 민간 전문가가 창업벤처혁신실장이 돼야 한다”며 "현장을 잘 아는 민간 전문가가 창업벤처혁신실장이 돼야 도움 되는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금리 인상과 함께 경기가 둔화되면서, 벤처업계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표시된 원/달러 환율. [사진=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금리 인상과 함께 경기가 둔화되면서, 벤처업계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표시된 원/달러 환율.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긴축재정 기조 속에서 창업·스타트업 업계에 필요한 정책자금을 안정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정통 관료 출신이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다. 제2벤처붐으로 벤처생태계가 커지다가 막힌 상황에서 정책 집행을 위해서는 예산을 잘 나눠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공무원이 더 낫다는 것이다.

한 벤처업체 대표는 "정부가 모태펀드 등 창업 예산을 줄이니까 민간 영역 출자도 연달아 감소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해주는 해결사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