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지시간 21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 동원령'을 선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지시간 21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 동원령'을 선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지시간 21일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동했다고 밝혔다. 지지부진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는 러-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평가되는 이번 동원령으로 최대 30만명에 이르는 예비군이 합류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로 인해 러시아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가 관건이란 평가다.

 

병역법·형법 개정 동반한 '동원령'...사실상 '계엄령'

이번 동원령은 병역법 개정을 동반한다. 하원에 해당하는 러시아 두마(DUMA)는 현지시간 화요일 탈영, 도피 등 병역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병역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동원·계엄기간 동안 군 복무와 관련해 저항이나 폭력 등의 방법으로 공식적인 군의 명령을 위반하면 최대 15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또한 두마와 러시아 상원인 연방평의회는 러시아 형법 개정안도 준비중에 있는데, 개정안에 따르면 전시에 무기를 비롯해 군사장비를 파괴하거나 과실로 손상할 경우 최대 5년의 징역형이 부과될 전망이다.

병역법 개정·형법 개정으로 볼 때 러시아는 사실상 계엄령에 돌입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다. 2022년 현재 총 2백만명의 러시아의 예비군 중 30만명이 징집된다면 15%가 차출되는 셈으로, 적지 않은 예비 병력이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일어날 수 있는 치안 악화, 물자 부족에 대비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침공 전쟁을 '방어전'으로?

푸틴 대통령은 '부분 동원령'을 '러시아 방어'를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가 현지시간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서방이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며 "방어를 위한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푸틴의 연설엔 소련의 대외인식이 고스란히 담겼단 평가다. 레닌 주도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후로, 소련 지도자들은 현실에서 유일무이하게 공산주의 실험을 하고 있는 소련이 항상 외부 세력에 둘러싸여 있고 침공에 노출돼 있다는 '소련 포위론'을 바탕으로 대외 정책을 입안했다. 그에 따라 소련은 자국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이자 산업·정치의 중심지인 모스크바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종심'을 깊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동유럽을 공산권으로 만들고, '겨울 전쟁'을 통해 핀란드로부터 영토를 할양받는 등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됐던 것도 이 때문.

러시아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을 개시했음에도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실시하면서 "서방이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고 한 데엔 소련으로부터 내려오는 러시아의 전통적 대외인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단 지적이다. 미국과 나토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로 재정·무기 지원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푸틴 대통령의 연설엔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크라이나를 내세운 서방과의 대리전'으로 간주하는 러시아 여론이 담겼다고 볼 수도 있다.

 

전쟁 장기화의 원인이 병력 부족?

다만 러시아가 전쟁을 조기에 끝내지 못하고 반년 이상 끌게 된 원인이 단순히 '병력의 부족' 때문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단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선전하고 있는 데엔 러시아와의 전쟁을 우크라이나판 '대조국전쟁(1941-1945)'이 되어가는 점이 꼽힌다. 즉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단 점이다. 반면 러시아 병사들은 명분 없는 '침략자'일 수밖에 없어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군대를 일찍이 경험한 적이 있다. 바로 핀란드와의 '겨울 전쟁'이 그것이다. 핀란드는 턱없이 부족한 병력, 장비를 치밀한 작전과 혹독한 겨울 날씨로 극복하면서 3배가 넘는 소련군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늦췄다. 하지만 무엇보다 핀란드군을 필사적으로 만들었던 건 '조국'을 지킨단 사명감이었다. 전쟁 끝에 핀란드는 국토의 11%를 소련에 할양해야 했지만, 소련에 합병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러시아군에 밀린단 당초의 예측이 무색할 정도로 키이우를 지켜내고 오히려 동부 전선으로 진격한 데엔 내 나라를 지킨단 '대조국전쟁'을 수행함으로써 사기가 오르고 필사적이 된 데 있단 평가다. 이와는 반대로 전쟁에 동원된 러시아군은 초기엔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다반사였고, 각종 군장비와 물자를 내버려두고 도망가기까지 했다. 

이러한 점으로 봤을 때, 푸틴 대통령은 동원령을 내리는 대신 전쟁의 '명분' 확보를 통해 러시아군의 사기부터 진작해야한단 지적이 힘을 받을 수도 있다.

 

인구 감소하는 러시아, 이번 전쟁으로 가속화될 수도

이번 동원령을 통해 러시아군이 승기를 잡더라도, 차후 러시아라는 국가의 미래에 치명적일 만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거론된다. 안 그래도 부족한 러시아 남성 인구가 더욱 부족해져 남녀 불균형 성비가 더욱 강화될지도 모른단 것이다.

소련은 나치 독일과의 '대조국전쟁'을 거치면서 최소 2천만에서 최대 4천만의 인구가 사망했다. 특히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남성이 다수 사망해 전후 한동안 남녀 성비가 4대7에 달할 정도로 불균형적이었다. 여기에 러시아 남성들의 음주문화로 인해 평균 수명도 매우 낮은 현상까지 겹쳐져 러시아는 세대가 올라갈수록 남성이 훨씬 적다. 

2022년 기준 여성이 약 7천8백20만명, 남성이 약 6천7백60만명으로 전체 인구 수로도 여성이 더 많으며, 30-44세의 경우 여성이 1천7백11만명, 남성이 1천6백83만명이다. 이 차이는 윗 세대일수록 커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45-59세는 여성이 1천5백9만명이며 남성이 1천3백11만명이고 60-74세는 여성이 1천5백15만명이며 남성이 9백90만명에 불과하다. 

2019년 기준 러시아의 출산율은 1.5명으로 아주 낮은 편은 아니지만, 높은 사망률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1억 4천만명에 달하는 러시아 인구는 2025년엔 1억 3천만 이하로 감소하고 2050년엔 7천7백만명까지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병력이 전사하게 되면 러시아의 인구 부족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는 셈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인접지역의 신병 모집센터 옆에 서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인접지역의 신병 모집센터 옆에 서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