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에 대해, 국민들은 정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MBC는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미디어를 통해 불분명한 소리를 전달받을 때, 함께 제공된 자막 등 시각적 정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MBC가 전문가나 대통령실의 확인을 거치지도 않고 ‘바이든’이라는 자막을 먼저 내보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MBC 캡처]
미디어를 통해 불분명한 소리를 전달받을 때, 함께 제공된 자막 등 시각적 정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MBC가 전문가나 대통령실의 확인을 거치지도 않고 ‘바이든’이라는 자막을 먼저 내보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MBC 캡처]

전문가의 확인이나 대통령실의 확인을 거치지도 않은 채 해당 자막이 전 국민에게 노출되면서, 대다수의 국민은 ‘바이든은’이라고 받아들이는 실정이다. 이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함에 따라, 논란이 증폭됐다. 이후 일부 언론사를 비롯해 정부도 해당 영상을 복수의 전문가와 연구소에 의뢰해 팩트체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오히려 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팩트체크로 사태가 정리되는 게 아니라, 혼란이 더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①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판독 불가능’으로 결론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는 대통령의 비속어 문제가 발생한 22일 자문위원 5명이 모여 윤 대통령 발언 영상을 분석했다. 그리고 ‘판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움직이는 윤 대통령의 입 방향이 계속 바뀌는 데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김성한 안보실장 등이 카메라 앞을 가린 상태에서 녹음된 소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도됐기 때문에, 왜곡돼 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시 논의에 참가했던 한 자문위원은 “한국어는 특성상 초·중·종성 가운데 중성만 강하게 들리고 나머지는 약하게 들리기 때문에 인터뷰에서도 20cm 거리에 핀마이크를 배치한다”며 “이번처럼 1m 정도 거리에서 현장 소음까지 시끄러운 상태에서 녹음된 내용은, 발화자인 윤 대통령 본인이 밝히지 않는 한 정확한 워딩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판독 불가능이라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날리면’이라는 김 수석의 해명에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관측된다.

② 조선닷컴이 의뢰한 5명의 전문가...2명은 ‘날리면’, 1명은 ‘바이든’

조선닷컴은 속기사 관련 단체장을 포함한 5명의 전문가들에 의견을 물어봤다. 이중 답을 한 3명의 의견은 엇갈렸다. 2명은 ‘날리면’에, 1명은 ‘바이든’이라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풍부한 수사기관 협조 경력을 가진 35년차 속기사는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으로 들린다”고 했다. 그는 “텍스트부터 먼저 본 뒤 영상을 봤기 때문에 ‘바이든’이라고 들었지만, 문맥상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다각도로 앞뒤 정황을 분석해보면, 앞부분이 ‘승인 안 해주고’인 것은 비교적 분명히 들리기 때문에 이로 미뤄봤을 때 날리면이었을 것으로 결론냈다”고 했다.

또 다른 17년 경력 속기사도 “저속으로 들어보면 더 잘 들린다”며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며는’이 맞는 거 같다” 했다.

반면 30년 경력의 속기사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아 유튜브를 통해 여러 차례 들어봤는데, 아무리 들어도 바이든이란 단어는 들렸다”고 했다. 그는 “통상 다른 의뢰 업무를 처리하는 수준에서 들었을 때 그렇게 들렸고, 녹취록 의뢰가 들어왔다면 그렇게 풀었을 것”이라고 했다.

③ 정부, 복수의 민간 전문가에게 의뢰...‘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믄’으로 결론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된 '바이든'을 '날리믄'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MBN  캡처]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된 '바이든'을 '날리믄'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MBN 캡처]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복수의 민간 전문가에게 의뢰해 문제의 음절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믄’이라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면’을 ‘∼하믄’이라고 발음하는 서울 지역 특유의 언어 습관이 서울 출신 윤 대통령의 발언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바이든’과 ‘날리믄’은 단어별 음절구성이 ‘ㅏ, ㅣ, ㄴ’으로 동일해, 선입견을 가지고 들으면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22일 브리핑에서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설명한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하면’을 ‘~하믄’으로 발음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 습관과도 관련이 있는 결과인 셈이다.

④ 국민의힘 의원의 일부 주장...‘아 말리믄’ 혹은 ‘발리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밤 페이스북을 통해 "음성을 연구하는 모 대학에서 잡음을 최대한 제거한 음성이랍니다"라며 음성 파일을 올렸다. 배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국회의원 '이 사람들이' 승인 안 해주고 '아 말리믄' 쪽팔려서 어떡하나 라고 아주 잘 들린다"며 "'이 XX'도 없었고 '바이든'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26일 C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발리면’이라는 색다른 주장을 제기했다. 조 의원에 따르면, “첫음절에서 분명히 ‘ㅂ’도 들리고 ‘ㄹ’도 들리기 때문에, 이를 조합하면 ‘발’이 된다”면서 “바이든이 아니라, ‘발리면’이라고 주장했다.

2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바이든’이 아니라 ‘발리면’이라고 주장했다. [사진=TBS 유튜브 캡처]
2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바이든’이 아니라 ‘발리면’이라고 주장했다. [사진=TBS 유튜브 캡처]

‘발리다’는 말은 일종의 비속어로 ‘도망친다’는 의미이지만, 여기서는 ‘날리면’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인 것으로 관측된다.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는 이유, ‘몬더그린’ 현상과 ‘바비큐’ 효과 때문

이처럼 정치 성향에 따라 윤 대통령의 발언을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로 ‘몬더그린’ 현상과 ‘바비큐’ 효과가 제시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종의 ‘각인효과’라고 설명한다.

처음 텍스트로 입력된 정보가 듣는 이의 귀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불분명한 소리를 전달받을 때, 함께 제공된 자막 등 시각적 정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이 효과는 ‘바비큐성 사전각인 효과’로도 불리는데, ‘바비큐’라는 단어를 반복해 들려준 실험에서 유래한다. ‘바비큐’를 여러 번 들려줄 때 자막에 ‘밥익혀요’ ‘밤에키워’ ‘아늑해요’ 등 발음이 비슷하게 들리는 다른 단어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바비큐’가 아닌 자막 속 단어로 음성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특정한 발음을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는 다른 발음처럼 듣는 ‘몬더그린’ 현상도 같은 원리에 해당한다. ‘The Bonny Earl of Murray’라는 스코틀랜드 노래 가사 중 "그리고 그를 풀밭에 눕혔네(And laid him on the green)"라는 구절을 "그리고 몬더그린 아가씨(And Lady Mondegreen)"로 잘못 알아들었다고 고백한 미국인 작가 ‘실비아 라이트’의 에세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All by my self’(올 바이 마이 셀프)라는 팝송을 ‘오빠 만세’로 바꿔 부른 개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몬더그린 현상을 이용한 개그에 해당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