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부터 적용되는 전기‧ 가스요금 인상안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 가스공사의 막판 조율이 난항을 겪으면서 결정이 늦어지는 실정이다. 현재 정부는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대기업에 차등요금제 적용 등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의 구조개혁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준비 중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6일 10대 그룹 사장단과 에너지 절감 회의를 개최하고, 겨울철 에너지사용 10% 절감을 목표로 산업계의 에너지 절약 동참을 요청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6일 10대 그룹 사장단과 에너지 절감 회의를 개최하고, 겨울철 에너지사용 10% 절감을 목표로 산업계의 에너지 절약 동참을 요청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특히 전기요금에 대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업에 전기요금을 더 내게 하는 식으로, 전기요금 차등제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택용(가정용)·일반용(업소용)보다 산업용 전기료를 더 큰 폭으로 올리는 것이다.

많이 쓰는 기업 더 내게 하는 ‘전기요금 차등제’ 적용...겨울철 에너지사용 10% 절감도 병행

그럴 경우 막대한 양의 전기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수천억원대의 전기요금을 추가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10대 그룹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에너지 절감 효과가 큰 대용량 사용자를 중심으로 우선적인 (전기)요금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조정을 고민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사실상 산업용 전기료의 차등 인상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 장관은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산업계의 역할 및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의 에너지 절감 동참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93%를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의 국제 가격 상승으로 공급 리스크가 커지게 되자, 수요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겨울철 에너지사용 10% 절감을 목표로 산업계의 에너지 절약 동참을 요청했다. 정부와 공공기관부터 난방 온도 제한 등 에너지 절약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에 앞서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도 23일 산업계 간담회에서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원가회수율과 현실적인 부담 능력을 고려할 때 대용량 사업자들의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은 지난 23일 산업계 간담회에서 "대용량 사업자들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히며 에너지 다소비 기업이 요금을 더 부담하도록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은 지난 23일 산업계 간담회에서 "대용량 사업자들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히며 에너지 다소비 기업이 요금을 더 부담하도록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이렇게 산업용에 대해서만 인상을 공식화한 이유는, 전력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보내고, 한전의 적자를 줄일 수 있는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기재부가 전기료 대폭 인상에 난색을 보이는 상황에서, 산업용만 인상할 경우 국민이 느끼는 체감 인상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창양 산자부 장관, “대용량 사업자 그동안 혜택 많이 받았다”

지난해 국내 전력 소비량의 55%는 산업용이고, 이 중 60%를 30대 기업 사업장에서 사용했다. 일반용(22%)·주택용(15%)보다도 많다. 그러나 판매단가는 산업용이 ㎾h당 105.48원으로, 주택용(109.16원)·일반용(128.47원)보다 싸다. 지금까지 제조업 비중이 큰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싸게 공급한 측면이 컸는데, 전력 과소비를 유도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이 장관은 “대용량 사업자의 사용량이 많고 그동안 혜택을 받았다”면서 “수요 효율화 여력이 있고 수요 효율화의 효과도 큰 영역부터 가격 기능이 작동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도 전기요금 정상화를 강조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지고, 가격 상승분이 전기료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력 적자 30조원 되면 전력 구매대금 지급 어려워져

원가 이하 전기 공급이 통상 문제로 확전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이 장관은 “한국전력의 적자가 연말 30조원이 되면 전력 구매 대금 지급이 어려워지면서 전력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공급 기반이 훼손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가 이하의 전기를 오래 공급해 온 구조를 개선해 가격 시그널이 작동되도록 물가당국과 정상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혀, 4분기 전기료가 예정분보다 커질 수 있음을 예고했다. 이 장관은 “에너지는 순수하게 에너지 문제로만 접근해야 한다”며 “물가가 중요하지만 에너지 주무 부처로서 위기 상황에서는 연계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6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0대 그룹 사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산업용 요금을 원가에 맞게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지난 26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0대 그룹 사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산업용 요금을 원가에 맞게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하지만 정부 내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산업용만 큰 폭으로 올리는 것은 부담이 크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국의 생산과 수출 경쟁력을 해치는 데다, 도금·주물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영세한 뿌리산업 중소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산업계에서는 이와 관련, 한국의 산업용 전기료가 싸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해 보면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4.3달러로, 33개국 중 22위다. OECD 평균의 88% 수준에 해당한다.

반면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h당 103.9달러로, 관련 수치가 있는 34개 회원국 중 31위로 평가돼 네 번째로 저렴했다. OECD 평균(170.1달러)의 61% 수준에 해당한다. 다른 국가와의 상대적 비교에선 가정용이 더 싸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산업용의 원가회수율이 높다는 것이 산업계의 주장이다. 단순히 판매단가만 비교하면 산업용이 가정용보다 저렴하지만, 한전에 돌아가는 원가 대비 수익은 산업용이 많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폭과 시기를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 중이다. 석유·화학, 철강, 전자, 자동차, 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8대 업종과 30대 대기업을 대상으로 우선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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