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길어지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국내 가스요금 인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지금까지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PNG)를 쉽게 수입하던 유럽이 액화천연가스(LNG)로 눈을 돌림에 따라, 한국은 갈수록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러시아 PNG 공급중단으로 유럽 국가들 LNG 확보 나서...LNG 가격 가파르게 상승

유전 등에서 분출되는 자연가스를 의미하는 천연가스는 운송 방법에 따라 액화천연가스(LNG)와 파이프천연가스(PNG)로 구분된다. PNG는 천연가스를 기체 상태 그대로 배관을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액화 과정이 필요 없고 운송 비용도 저렴해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PNG를 많이 사용해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리·지정학적 이유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어려운 탓에 LNG를 선호해 왔다. LNG는 산지에서 추출한 천연가스를 액화시켜 부피를 줄인 뒤, 특수 선박을 이용해 인수기지로 이송하는 방식이다. 기지에 저장된 LNG는 다시 기체 상태로 만들어 배관망을 통해 각 지역 도시가스업체, 가정 등으로 공급된다.

LNG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형 LNG 터미널이 필수적이다. 사진은 SK가스가 지난 20일 공개한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 건설 현장과 SK가스 울산 기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LNG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형 LNG 터미널이 필수적이다. 사진은 SK가스가  울산에 건설 중인 LNG 탱크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로 LNG를 소비하는 나라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LNG 시장은 다른 에너지에 비해 안정적인 수급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이 LNG 확보에 나선 지난해 9, 10월을 기점으로 LNG 현물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20년 2달러에 불과하던 LNG 국제 가격은 올해 들어 한때 80달러를 넘어서는 수급 구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유럽이 겨울에 접어들어 수요가 늘면 가격 상승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27년까지 러시아산 PNG 수입을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친환경 재생에너지 비중도 확대되지만, 부족한 에너지의 상당량을 LNG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독일은 지난 3월 북해 연안 브룬스뷔텔에 연간 80억 세제곱미터(㎥)를 처리하는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천연가스는 기체에서 액체로 바뀌면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에, 배로 운송하려면 액화 처리가 필수적이다. LNG 터미널은 탱커를 세워두는 정박시설, 천연가스를 내리는 하역시설, 기체로 변환하는 기화시설 등으로 구성된 종합 설비인데, 막대한 투자 비용이 투입되는 대형 시설이다.

독일이 거액을 들여 LNG 터미널을 확충하려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가스 수출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PNG)를 쉽게 수입했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가스 수출을 통제하자, 국내 가스 수요를 LNG로 충당하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줄이려는 독일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새로운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줄이려는 독일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새로운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PNG에서 LNG로 눈을 돌리는 유럽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유럽 지역의 LNG 수입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유럽연합(EU) 28개국에 공급된 러시아산 PNG는 450억 ㎥로 전년 동기보다 210억 ㎥ 감소했다. 유럽은 대신 220억 ㎥의 LNG를 수입하며, 부족분을 모두 LNG로 충당했다.

유럽 국가들이 LNG 시장에 진입하면서 높아진 LNG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에 따라 소비자들이 내야 하는 가스 요금도 폭등했다. 독일의 주택용 가스 요금은 지난해 3월 대비 올해 3월에는 3.52배 올랐고, 네덜란드 역시 3.23배 상승했다.

장기계약으로 LNG 확보해둔 한국 LNG가격은 아직 안정세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소비자가 내는 가스 요금이 메가줄(MJ)당 14.2원에서 14.7원으로 거의 변동이 없다. 3.5% 상승에 그친 것이다.

한국이 가스 요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LNG 물량의 대부분을 10년 이상 장기계약으로 확보해둔 탓이다. 전체 LNG 공급량의 80% 정도가 장기계약 물량에 해당한다.

두 번째로는 정부가 강력하게 가격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 부문까지 민영화가 이루어진 유럽의 가스 시장은 소비자가 시장 가격을 거의 부담해야 하는 구조이다. 하지만 한국의 가스 가격은 정부가 정책적 필요에 따라 통제한다.

특히 국제 가격이 요동치는 현 상황에서는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이 소비자에게 훨씬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가격 인상에 따른 부담을 누군가는 장기간 짊어져야 한다는 점이 부작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당장 올겨울 난방비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고 좋아할 수 있지만, 이번 겨울에 내지 않은 요금을 언젠가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스공사가 정부의 가격 통제로 받지 못한 돈(LNG 수입가와 소비자 가격의 차액)은 '미수금'의 형태로 남게 된다. 그냥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외상값처럼 자산의 형태로 남는 것이다. 이 미수금은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나중에 가스 요금에 반영된다. 향후 국제 가스 가격이 내렸을 때 소비자 가격을 내리지 않고 요금을 유지해 미수금을 줄여나가게 된다.

가스공사 미수금, 연말에 역대 최대 규모인 8조원 예상돼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5조4,000억 원(올해 6월 기준)으로 불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에 7조9,000억 원에 이르러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가스공사가 ‘미수금’으로 처리한 수조 원대 금액은 결국 국민들이 언젠가는 이자까지 붙여서 내야 한다. 현금 흐름이 막힌 가스공사가 LNG를 사오려면 미수금으로 처리한 금액만큼의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이 금융비용이 도시가스 요금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정부는 2012년까지 도시가스요금을 동결했다. 당시 가스공사는 5조 5000억 원 규모를 미수금으로 처리했는데,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도시가스요금을 인상해 회수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가스 소비자 요금을 원가에 근접하게 인상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16일 SNS를 통해 “지나친 도시가스요금 억제는 미래세대와 소비자에게 미수금을 전가하는 문제가 있다”며 요금 인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미래세대에게 미수금 전가하지 않으려면?...요금 인상과 함께 에너지 절약이 해법

산업부는 요금 인상과 함께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통해 전체 수요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 겨울 에너지 사용량의 10% 절감을 목표로 정부와 공공기관의 난방온도 제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에너지 사용량의 10% 절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에너지 사용량의 10% 절감을 위해 산업계에 동참을 요청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미래세대에게 미수금을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는 요금 인상을 통해 소비 절감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가스를 저렴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과소비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앙대 정동욱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데다, 지금은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이중고에 처해 있다"며 "요금 인상과 별개로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펼쳐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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