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무례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예의가 없다’는 뜻이다. 서해안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한 감사원의 서면 요구에 대해 문재인은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말했다. ‘무례하다’도 아닌 ‘무례한 짓’이라는 표현을 썼다. ‘짓’은 어떤 행위에 대해 지극히 낮추어 부르는 비속어다. 한마디로 독립적 헌법기관에 대해 무례하다고 말하는 전직 대통령의 무례함 앞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감사원 감사의 부담함을 지적하며 “국민이 진정 촛불을 들기를 원하는 것이냐”고 했다. 이재명 당대표까지 나서 ‘정치보복’,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 선동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금번 대선을 통해 엄중한 국민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촛불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한다. 이제는 촛불이 마치 자신들의 보검인양 망나니처럼 휘둘러댄다. 대체 이들의 후안무치는 어디까지인가.

전직 대통령이 감사원의 요구를 ‘무례한 짓’이라고 업신여기는 것 자체가 바로 공포정치다. 문재인은 퇴임 후 잊혀진 시민이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아방궁과 같은 사저에서 초특급 경호를 받으며 정치인들이 알현하는 제왕적 통치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무례한 짓’이라는 표현에는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스스로를 올려두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전직 대통령이 독립적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향해 ‘무례한 짓’이라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그동안 어떻게 군림했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 내 <정치탄압 대책위원회>라는 것도 참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정치탄압을 운운하는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해야 할까?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국민의 삶은 내팽개친 채 적폐몰이로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던 때를 정녕 잊었단 말인가.

감사원이 요구한 이번 조사는 2020년 서해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에 피격, 소각된 해수부 공무원 고 이대준씨가 월북했다고 단정한 경위를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 가장의 죽음 앞에 정치적 올가미를 덧씌워 월북이라 규정했다. 당시 관련된 자료공개를 거부한 채 법원의 자료공개 결정에 항소하고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공개를 막았다. 떳떳하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있는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금수보다 못한 자라 하지 않았던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물론 유가족들에게 마저 이처럼 무례한 언행을 하고도 낯부끄러운 줄 모른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 북한의 무례함과 잔인한 만행 앞에 대통령과 민주당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따져 묻고 싶다.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 욕하고, 남북연락사무소는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든 북한의 무례함 앞에서는 비굴함으로 일관했다.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유가족들의 절규에는 무관심한 그들이었다.

대한민국의 법치와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안은 철저히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법과 원칙에 근거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수사를 정치보복 운운하며 마치 자신들이 탄압받는 의인 인양 행세하는 짓거리에 몸서리가 쳐 친다. ‘무례한 짓’이라는 말을 들은 유가족들의 지금 심경이 어떠할지 문재인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하는 그 모든 ‘짓’을 국민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는 걸 왜 모를까. 성역 없이 철저한 감사와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다시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의는 분명 살아 있다고 믿는다.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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