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안 끝났다

유승민 전 의원이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분위기이다. 유 전 의원은 자신이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 1위를 기록한 어느 여론조사 결과를 본인 페이스북 계정에 인용하며 이준석 대표 징계 사태와 뒤이은 당내 갈등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빠진 집권여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할 뜻이 있음을 강력히 내비쳤다.

“유승민 끝났다!”

2030 젊은 세대로부터 ‘틀튜브’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강경 극우 성향의 보수 유튜브 정치 채널들이 올해 지방선거 국면에서 방송 제목으로 요란스럽게 달았던 문구다. 민심에서 압도하는 유승민 예비후보가 당심에서 우위를 차지한, 정확히 말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윤심(尹心)을 등에 업은 김은혜 예비후보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자 친박 색채가 짙은 이들 극우 유튜브 방송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유승민에게 윤석열은 병 주고 약 주는 사람이었다.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김은혜 후보가 김동연 후보에게 경기지사 선거에서 어이없는 막판 역전패를 허용하면서 불공정한 당내 경선의 희생양이 돼버린 유승민에 대한 연민과 동정론이 당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이 윤핵관들을 행동대원으로 내세워 이준석을 무리하게 찍어내려고 시도하면서 지지율이 대통령 선거 당시와 비교해 사실상 반 토막이 난 일은 이준석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유승민의 몸값을 한껏 올려주는 효과를 초래했다. 윤석열의 연이은 자충수와 용산 대통령실의 계속되는 헛발질이 다 죽어가던 유승민을 완벽하게 부활시켜준 셈이라고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세 가지 불편한 진실에 호되게 맞닥뜨리고 말았다.

첫 번째는 ‘윤석열 코드’로는 총선 승리는 물론이고 정권재창출 또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제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 자는 박근혜를 능가하는 지독한 불통과 독선의 상징이 되었다. 문재인에 버금갈 위선적 내로남불과 편협한 진영논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선거 승패를 좌우할 부동층 유권자의 반감과 거부감을 사기에 딱 좋은 브랜드가 윤석열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좁게는 검사, 범위를 넓히면 법조인 경력의 소유자가 당의 간판으로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 국민들은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의 3고 현상이 빚어낸 경제난 때문에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다. 그러나 여당을 살펴봐도, 야당을 둘러봐도 고소고발을 빼놓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유형의 법률 기술자들만이 활개를 치고 있다. 민생경제를 회생시킬 혜안과 역량을 겸비한 경제전문가가 한국정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여론이 급속하고 뚜렷이 고조된 배경이다.

세 번째는 앞 다르고 뒤 다른 양두구육의 정직하지 못한 정치인들은 더는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표는 당장의 사법리스크만 피하려는 목적에서 대장동 사건과의 무관함을 우악스럽게 고집하다가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무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약식 기자회견에서의 답변과는 정반대로 실제로는 스스로가 이준석 대표 제거 작업의 최종보스였음이 여실하게 드러남으로써 정직성에 치명적 하자가 있음이 밝혀졌다.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정치인이 나라의 미래를 주도하고 국민의 안녕을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가 갈수록 장마철 봇물처럼 거세지는 까닭이다.

윤석열 묻은 상태로는 총선 못 치러

현 시점을 기준으로 총화하면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물망에 오르내리는 주요한 당권주자들 가운데 누리꾼들 방식으로 표현하여 “윤석열 묻지 않은” 사람으로는 유승민 전 의원이 가히 독보적이다.

그는 김기현 의원, 권성동 전 원내대표, 나경원 전 의원 등과 달리 법률 기술자 출신도 아니다. 유승민은 수십 년의 공적 생활 내내 국내외 경제동향을 연구하고 다양한 경제정책을 개발하는 데 몰두해온 경제통으로 평가되어도 무방하다.

필자는 유승민이 안보와 외교,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해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편향ㆍ경사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유승민이 정직성의 측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와는 확연히 차별화된 인물임을 기꺼이 인정해주고 싶다. 유승민이 양고기를 개고기로 속여 파는 불성실한 인간은 아닐 터이다.

이준석이 부당하고 억울하게 당대표직에서 쫓겨나면서 국민의힘은 망국적 지역주의에 찌든 ‘영남 자민련’으로 돌아갔다. 개혁에 반대하고 혁신에 저항하는 낡고 부패한 구태 기득권 정당으로 돌아갔다. 청년들이 외면하고 여성들이 혐오하는 나이든 꼰대 남성들의 정당으로 돌아갔다. 한마디로, 제 발로 관에 걸어 들어간 형국이다.

이 와중에 윤석열 묻은 인사가, 법률 기술자 출신 인사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태연히 늘어놓는 인사가 당권을 쥔다고 가정해보자. 그 고루하고 구태의연한 당대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국민의힘이 누워 있는 관에다 두꺼운 관뚜껑을 덮은 다음 커다란 대못을 박는 게 전부이리라.

유승민은 윤석열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불구대천의 원수관계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바로 그러한 특이점과 변별력 덕분에 유승민은 국민의힘에 등 돌린 수도권의, 중도층의, 청년세대의 지지와 관심을 견인하고 추동해올 가능성과 잠재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 수도권 유권자의 호응 없이는, 중도층 민심의 지원 없이는, 청년들 사이에서의 우호적 여론 없이는 국민의힘은 내후년인 2024년 봄에 치러질 예정인 제22대 총선에서 객관적으로 100석조차 확보하기 힘들 전망이다. 그러면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박근헤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걸었던 불행한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할 게 뻔하다.

이쯤에서 안철수 의원 얘기를 첨언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유승민의 부활과 약진으로 말미암아 단연 꼴사납게 된 사람은 경기도지사를 대선 패배 후 비틀거리던 더불어민주당에게 보약으로 헌납해주면서까지 김은혜 현 용산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자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윤석열 대통령일 것이다.

한데 윤 대통령 못잖게 남우세스러운 처지로 내몰린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안철수 의원이다. 안철수는 정권을 잡으려면 당권부터 잡아야 한다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정치공학적 도식에만 매몰된 나머지 그의 본래 강점이던 중도층으로의 확장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내뱉은 비속어 파동 때문에 민심이 들끓는 상황에서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소심하고 유약한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철저하게 일관했다. 안철수가 대부분의 일반 대중의 인식에서 윤핵관 무리의 청부정치인 수준의 위상으로 전락하게 된 결정적 패착이었다.

안철수는 그 후과로 거대한 중도층의 바다 대신에 태극기부대로 표상되는 고령의 노인층 중심의 협소한 가두리 양식장을 놓고서 이런저런 집다한 구태 정치인들과 함께 도토리 키 재기스러운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

필자는 안철수 의원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진즉에 접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사회에서 안철수가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으로만 거론되는 모습을 보면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다. 청년들의 멘토로 과거 한때 화려하게 각광받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 안철수의 초라해도 너무나 초라한 현주소이다. 정치적으로 이미 효능감과 존재감이 모두 소진된 까닭에 오래전에 한물간 구상품이 되고 만 안철수 의원은 현실정치 이외의 공간에서 출로와 대안을 모색하는 모종의 결단을 이제 내려야만 하지 않을까?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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