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MBC 사옥.(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서울 마포구 MBC 사옥.(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공영(公營)’이란 말은 ‘공공기관이나 공익적 단체가 경영’한다는 의미다. 영어로 표기하면 ‘public managed’이다. 공영의 존립 근거는 ‘공익(public interest) 즉,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있어 개인이나 민간이 소유하는 것보다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런 명분으로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많은 공기업, 공공기관, 공공기구들이 존재하고 있다.

방송 역시 비슷하다. 사람들이 공영방송이라고 생각하는 KBS, MBC, EBS는 물론이고 자칭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하는 미디어들이 난립하고 있다. 몇 일 전 국정감사장에서 오세훈 서울시장도 ‘교통방송도 공영방송으로서~’라고 당연하다는 듯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부나 공공기관 혹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소유·운영하는 방송들도 공영방송을 표방하고 있다. 심지어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상업방송들까지 공익성 구현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공영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이런 주장들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 머릿속에는 여전히 오랜 전제 왕정국가 유산인 ‘공영=관영/국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공익을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수많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난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방송법에도 이러한 ‘공영=관영’의 유산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현행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법 어디에도 공영방송이라는 용어조차 없다.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공영방송은 관념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거나 오랜 기간 강요된 선전의 결과일 수도 있다. 오직 방송법 제8조 2항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는 방송’과 ‘방송문화진흥회가 소유하는 방송’을 지분 제한 규정 예외 사업자로 지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근거로 KBS, EBS는 물론이고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방송들이 전부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YTN이나 교통방송, KTV, 국회방송이 모두 공영방송이라 주장해도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모름지기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공영방송을 가진 나라로 기네스북에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공영방송 과대성장국가’인 것이다.

이처럼 ‘공영=공익’이라는 등식에 바탕을 둔 제도라 하더라도 목적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을 보면 이 등식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물론 공익이라는 용어가 다의적이고 추상적이어서 명확히 구체적으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추상적 목표가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영방송들이 기득권을 누리면서 생존해 올 수 있었던 이유일 수도 있다.

흔히 공영방송은 ‘정치와 시장으로부터 독립해 공익을 목표로 하는 방송’이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이 정의는 잘못된 표현이다. 전제조건이 곧 목적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과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이 공익인 것이다. 정치로부터의 독립이란 정치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그것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이란 상업적 영리 추구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유익한 정보와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편파·왜곡 보도로 특정 정권의 호위병 역할을 했던 우리 공영방송은 공익적 책무에 미비했던 것이 아니라 반공익적(反公益的)이었던 것이다. 시청률 경쟁에 매몰되어 상업방송 빰치는 저질방송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반공익적이다. 물론 공영방송의 절대 가치를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업방송과 분명히 차별화된 방송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바뀔 수 없다.

지금 우리 공영방송은 다른 공기업이나 공공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공영을 위한 공영방송’이 되어 버렸다. 정부의 법적·제도적·재정적 지원 아래 방송사와 종사자들의 안위를 목적으로 하는 허울 좋은 공적 소유구조만 남은 것이다. 또 이런 공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권력에 충성하는 반공익적 행태들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이제는 “공적으로 경영되는 방송이 왜 필요한가”를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동의받아야만 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 부역자들의 행태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보지도 믿지도 않는 존재감 없는 일개 채널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상업방송이 아무리 극성을 떨어도 인터넷 매체들이 창궐해도 괜찮은 공영방송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마저 언제 한계에 온 것이 아닌가 싶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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