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하자 난데 없이 한국에서는 외국어 표기법을 확 바꿨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는 키이우, 르보프는 리비우, 하리코프는 하리키우로 바꿔 부르지 않으면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도록 분위기를 몰고 있다. 그런데 키예프Kiev의 경우 우크라이나식 영문표기는 Kyiv. 당연히 우크라이나어로도 키이브에 가깝다. 현지인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키이우는 어디서 유래됐는지도 미스테리하다.

수십년동안 관행적으로 통용되던 러시아식 표기법을 한국에서 우크라이나와 무슨 인연이 있다고 바꾸는지 어리둥절하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은 NATO의 정책기구인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가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구상이다.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한 문화공정의 일환으로 치밀하게 준비해온 작업이다. 유로마이단 폭동이 발생한 2014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갈라치기 위한 것으로 우크라이나 문화재현Ukrainian Cultural Revival을 정체성 정치 차원에서 장려해 온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원이나 공유하는 문화유산이 많아 고의로 분쟁을 야기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굳이 구분해서 다름을 부각시킬 필요가 없는데도 공연한 문화전쟁을 일으킨 것인데 여기에 젤렌스키는 적극 호응하고 있다.

남동 노르웨이 대학의 슬라브 전문가 글렌 디센 교수는 보르쉬Borsch와 불가코프Bulgakov는 우크라이나의 것, 브레즈네프와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유산이란 식으로 미국과 서구가 우크라이나를 조종해 우스꽝스런 문화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보르쉬는 슬라브, 중앙아시아권에서 유명한 비트와 토마토를 주재료로 한 수프요리다. 불가코프는 키예프 출신의 볼셰비키 예술가겸 의사다. 보르쉬는 러시아어로는 보르쉬Borsch 우크라이나어로는 보르쉿Borscht이다. 우크라이나는 보르쉬가 러시아의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무형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문화부장 알렉산드르 트카첸코는 지난 7월 유네스코가 보르쉬를 보르쉿이란 표기와 함끼 우크라이나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면서 문화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축했다. 그러자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뭘 그런 것 가지고 표준을 정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느냐? 슬라브권 각국주부들이 알아서 조리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조롱했다.

글렌 디센 교수의 기고문(RT).
글렌 디센 교수의 기고문(RT).

 

음식을 둘러싼 웃기는 문화전쟁은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2년전인 2020년에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는 러시아가 약탈해간 음식문화 유산이라면서 8가지 요리를 열거했다. 첫 번째가 보르쉬, 그리고 그 다음으로 리투아니아, 폴란드, 벨라루시에서 먹는 차가운 보르쉬인 홀로드닉, 벨라루시의 포테이토 팬케이크 드라니키, 그리고 슬라브 중앙아시아식 양꼬치 샤슐릭. 중앙아시아 각국의 볶음밥 플롭, 치킨 필레로 만드는 치킨 키이프, 밥과 고기로 채워진 쌈음식 돌마, 폴란드 우크라이나식 크레페 날리스니키를 들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는 러시아가 하이브리드 전쟁차원에서 이 음식들을 강탈해갔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을 보면 러시아는 이 음식들이 러시아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슬라브와 중앙아시아권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면서 원조를 따지지 않고 먹는 음식일 뿐이다.

보르쉬.
보르쉬.

 

음식의 경우처럼 문화전쟁을 한다는 자체가 칼로 물베기다. 우크라이나는 브레즈네프와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브레즈네프는 소련의 국력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의 지도자로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키예프는 그를 부정한다. 또 볼셰비키의 강경파 레온 트로츠키, KGB 수장이었던 블라디미르 세미챠스트니 역시 우크라이나인이지만 마치 아닌것처럼 거리를 두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는 크림을 우크라이나에 떼어준 니키타 흐루쇼프도 부정하고 있다. 흐루쇼프는 정확히는 러시아 국경 쿠르스크 출신이지만 삶의 대부분을 돈바스에서 보내 흔히 돈바스의 아들이라고 불린다.

우크라이나는 또 대문호 고골Gogol 역시 러시아가 빼앗아 갔다고 주장한다. 고골은 우크라이나 출신이기는 하지만 러시아를 사랑했고 작품도 러시아어로 써서 전세계가 러시아의 문학가로 알고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그의 이름도 호홀Hohol로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

 

이처럼 쓸데없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갈라치기하는데는 의도적인 분열을 일으켜 급기아 전쟁까지 몰고 가려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 문화 민족적 정체성의 공통점보다는 무의미하지만 굳이 다른 점을 찾아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러시아 우크라이나 관계를 정의하고 규정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뿐더러 무의미하다. 저 유명한 솔제니친도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태생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키예프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또 드네프르강 피안의 사람들을 러시아인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쓸데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가 주장한 러시아의 음식문화약탈.
우크라이나 문화부가 주장한 러시아의 음식문화약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긴밀한 유대가 있다는 점은 우크라이나에는 존재이유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슬라브의 요람에서 발생한 문화전쟁은 실제전쟁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2014년 마이단 폭동, 그리고 2019년 젤렌스키가 민족간 화해를 내세운 덕에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 약속을 저버리고 러시아계를 탄압한 흐름은 러시아 언어 문화말살의 기복과 일치한다.

경기도 출신인 필자는 유년시절 추어탕의 재료를 미꾸리로 알고 지냈다. 하지만 서울이 표준이란 이유로 미꾸리를 미꾸라지라는 이름으로 약탈해 갔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키예프를 키이우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이치다. 미꾸라지는 틀린 표현이니 미꾸리로 바꾸자고 우긴다는게 말이 되는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것이라면서 캔슬한 볼셰비키 예술가 불가코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것이라면서 캔슬한 볼셰비키 예술가 불가코프.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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