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유럽에서 러시아가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북한이 핵사용을 위협하면서 핵전쟁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엄연한 주권국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빼앗은 땅을 러시아 영토로 합병하고는 그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하면 핵을 사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제20차 공산당 대회를 통해 3연임이 확정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대만에 대해 무력 불사용을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대만 통일을 위한 모든 옵션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유럽과 대만 그리고 한반도 중 한 곳에서 3차 대전의 불씨가 지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미국에게 ‘핵공유’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찍부터 저들의 불굴의 핵보유 의지를 알아채고 미 전술핵 재반입하거나 자체 핵무장을 통해 ‘남북 간 핵균형’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전문가들에게는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건은 미비하고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전술핵 공유’ 요청, 뒤늦지만 당연한 시도

지금까지 한국이 북한의 핵포기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골든타임을 놓쳐서가 아니다. 애초부터 북한 비핵화를 위한 골든타임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북한에게 있어 핵보유는 절대자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자 체제유지 수단이며 주체통일의 최대 장애물인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는 핵심수단이어서 어차피 포기할 수 없는 ‘보검(寶劍)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국 정부들은 ‘달래기나 퍼주기’ 또는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잃어버린 30년’을 보내면서 스스로 깊은 핵인질 구덩이로 빠져들었다. 미국도 이런 착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북핵은 양질적 증강을 거듭했고, 북한의 핵전략도 강대국형·공세형으로 강화되었다. 때문에 북한이 금년들어 보이고 있는 ‘미사일 광란’은 한·미 정부와 정치인들로 하여금 ‘핵착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 이후부터 ‘비핵국에 대한 핵사용 포기(NSA)’ 원칙과 핵보유국에 대해서도 먼저 핵을 사용하지는 않겠다는 ‘선제 핵사용 포기(NFU)’ 독트린을 표방하면서 ‘겸손 코스프레’를 벌였지만, 이미 옛날 얘기다. 지금은 2013년 ‘핵보유법’과 금년 9월 ‘핵무력정책법’ 제정을 통해 ‘강대국형 핵사용 전략’을 공개 천명했다. 이 법의 제5조는 한국이 핵보유 동맹국인 미국과 협력하여 대적하면 한국에게 핵을 사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핵무력의 사명은 전쟁 초기에 적의 전쟁 의지를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했던 5월 5일자 김여정 담화는 사실상의 ‘대남 선제핵사용 불사’ 선언이었다. 이런 북한이 자신들이 야기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실시되는 한·미·일 군사훈련을 시비하면서 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에 이르는 기간 동안 무려 아홉 차례에 걸쳐 15기의 미사일을 쏘고 전폭기들을 출격시켜 위협비행을 했다. 그리고는 “적들에게 명명백백한 경고를준 전술핵 훈련이었다”고 선언했다.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북한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가 미 전술핵 재배치를 전제로 하는 ‘한·미 핵공유’를 제안한 것은 당연한 조치였지만, 이는 더 많은 준비를 한 상태에서 더 일찍 발동을 걸었어야 하는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한·미 전술핵 공유’를 통해 ‘한반도 핵균형’ 체제를 구축하는 문제에 미국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가 관건이며, 그래서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전술핵 재배치 위해 넘어야 할 산들

현재 미국의 전문가들과 여론주도층은 ‘한미 핵공유’에 대해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2017년 10월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일행이 전술핵 재반입을 요구하기 위해 미국 의회를 방문하고 전문가들과 대화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미 외교협회(CFR)와의 간담회에서 홍 대표가 기조연설을 통해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독자 핵무장 요구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을 때 미 전문가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충분한 능력과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데 왜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한가,” “동맹을 불신하는 것이냐“ 등의 반론이 쏟아졌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이런 기류가 반전되었을 개연성은 희박하며, 지난 5년 동안 미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에 대한 지지자로 만들기 위한 로비가 왕성하게 펼쳐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렇듯 한국과의 핵공유에 대한 미국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은 가운데, 한국의 군사적·사회적·정치적 여건도 열악하다. 현재 한국 내 모든 군사기지들이 북한이 가진 다양한 미사일이나 대구경 방사포의 사거리 내에 들어 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사드 기지의 정상운영을 훼방하는 데모꾼들이 사라지지 않는 데서 보듯 전술핵 재배치 추진시 한국내 좌파들의 극성스러운 반대도 예상된다. 또한 대한민국은 정권이 바뀌면 외교안보 기조가 좌우를 오가며 바뀌는 나라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와 압박도 변수가 된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한국에 전술핵을 배비하고 한국 정부와 고급정보들을 공유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일 수 있으며, 이런 여건들이 하루 아침에 개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0월 11일 존 커비(John Kirby)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화상 브리핑을 통해 “한국이 입장과 바램을 밝히도록 두겠다”며 방향성을 가진 언급을 회피한 것은 이런 기류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실제로 핵공유 협의가 개시되는 때를 대비하여 핵무기와 운용방법에 있어 구체적이고 다양한 대안들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지하기지들을 파괴할 수 있는 관통핵탄두를 장착한 B61-12탄을 한국공군의 F-35에 탑재하여 운용하는 방안, B61-12를 탑재한 한국 공군기들을 괌에 주둔시켜 제2격(2nd Strike)을 준비하는 방안, 미 해상전력이나 잠수함 전력을 한국 인근에 상시 배비시키고 핵탑재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미국이 개발 중인 후속 단중거리 핵미사일을 운용하는 방안, 미 육군이나 해병대가 한국에서 토마호크나 신형 극초음속 핵미사일 다크 이글(Dark Eagle)을 운용하도록 한국이 인프라를 제공하는 방안, 괌에 주둔한 전략폭격기를 이용한 핵사용 훈련을 상시화하는 방안 등 여러가지 방안들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강한 의지가 선결 조건

한국의 ‘핵공유’ 요청이 어떻게 귀결될지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양국 간 합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글로벌 차원에서의 신냉전 대결구도가 심화되고 북핵의 질적 양적 증강이 지속된다고 가정한다면, 핵공유 이슈는 이번이 아니더라도 향후 언제든 재부상할 수 있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안보환경이 더욱 악화는 경우 한국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동맹을 꾸려나가는 ‘핵동맹’이 이슈화될 수 있고, 일본과 대만에서도 유사한 이슈가 부상할 수 있다. 이런 미래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한국 정부로서는 당장의 성사 여부를 넘어 ‘한·미 핵공유’에 강한 의지를 내보일 필요가 있다. 뒤늦지만 최악 사태 도래시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잠재력도 함양해 나가야 한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인사들과 전문가들이 요구해온 사안이기도 하다. 북한의 일방적·비대칭적 핵위협을 불식시키는 ‘남북 간 핵균형’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한국의 ‘죽고 사는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공감한다면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외 반대들을 버티어 내는 결단도 필요하고 국내 여건 개선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한국과의 핵공유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대중(對中) 전략에도 보탬이 되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며, 미국 여론을 선도하기 위한 정부 및 비정부 차원의 공공외교와 학술교류도 활발하게 전개해야 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지금은 미국이 한국방어와 관련해서 “동맹만 믿어라”는 식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 아닌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을 보여주어야 할 때임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본다면 정치적 안정을 정착시키고 그 위에서 흔들림 없는 안보의 정도(正道)를 지켜나가는 것이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부여된 최대 안보과제일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좌와 우를 오가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동맹을 유지하기도 우방국들의 협력을 구하기도 힘들고 국가생존을 담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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