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튜브를 진원지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한동훈 찬가는 한동훈의 중도확장성에 조종을 울리는 것과 진배없다

영원히 고통 받는 유시민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

참여정부의 황태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정치적 미래를 사실상 끝장내는 효과를 두고두고 빚어낼 벼락같은 일갈이었다. 최근에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한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2005년 3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유시민에 관한 문제의 유명한 인물평은 그즈음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당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당의장 경선 준비에 여념이 없던 유시민을 ‘싸가지 프레임’ 안에 완전히 가둬버리는 운명의 전환점으로 기록됐다.

저명한 인지언어학자이자 미국 민주당의 견결한 옹호자이기도 한 조지 레이코프 UC 버클리 대학교 교수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원제 : Don't think of an elephant」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정치비평서에서 공화당에게 유리한 구도로부터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민주당이 그와 같은 덫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을 ‘프레임 이론’에 입각해 실증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레이코프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ㆍ소개되어 현역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여의도 정치권 관계자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은 특히 유시민과 김영춘이 나란히 몸담은 열린우리당 인사들 사이에서는 복음서처럼 숭배되었다. 유시민 역시 조지 레이코프가 주창한 담론의 충실한 추종자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많이 아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인 법이다. 김영춘에게 일격을 당한 이후의 현실정치인 유시민의 삶은 싸가지 있어 보이는 모습을 연출하려는 고단한 노력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머리모양도 ‘2 : 8’ 가르마로 바꿔봤고, 양복도 중후한 색상을 입어봤으며, 심지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그가 종전에 마치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기세로 공격하던 거대 야당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하는 성의 표시도 해봤다. 나중에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의 압권을 이룬 중앙위원회 개최 현장에서는 단상을 점거하려 시도하는 이석기 전 의원 계열 당원들의 침탈(?)로부터 심상정 의원을 온몸으로 감싸 보호하는 기사도적인 면모도 과시했다.

허나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코끼리의 육중한 몸체가 머릿속에 자꾸 선연하게 떠오르듯, 유시민이 싸가지 있음을 증명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국민들은 싸가지 없음의 한 가지 잣대로만 유시민을 더더욱 비토하게 되었다. 이 악순환은 유시민이 작가 겸 방송인 겸 유튜버로 전업한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걸 유시민 혼자만의 잘못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유시민을 옳은 말-이는 당연히 유시민 우호세력의 관점에서의 옳은 말임-도 싸가지 없이 하는 정치인으로 일반 대중에게 깊이 인식되게끔 만든 데에는 그의 극렬 지지자들의 역할과 활약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시민이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반감과 거부감을 크게 불러일으키는 언행을 일삼을 경우조차 ‘사이다 발언’이라고 무조건 두둔하고 응원하기 일쑤였다. 유시민이 나름 예의와 점잔을 갖춰서 했던 정제된 말과 품격 있는 행동마저 팬들의 그러한 열광과 환호로 말미암아 철저히 가려지고 말았다.

사이다는 알고 보면 집토끼 가출방지용 마취제일 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다투던 시기에 스스로를 속이 확 뚫리는 사이다에 빗대고, 반면에 문 전 대통령을 목에 자꾸만 답답하게 걸리는 찐 고구마에 비유하며 두 사람 간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과 경찰의 전방위적 수사망에 포위되어 소인국에 표류한 걸리버 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꽁꽁 묶여 있는 현재는 윤석열 정부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이다 독점판매권을 확보한 모양새이다. 그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 답변자로 출석할 적마다 야당 국회의원들과의 화끈한 말싸움에 주저하지 않는다. 여태까지의 승패를 종합하면 초선과 중진을 가리지 않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한동훈 앞에서 추풍낙엽으로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양상이다.

그런데 한동훈의 검투사적 면모에는 노인 세대와 영남권 유권자들만 달랑 남은 형상으로 위축된 윤석열 정권 고정지지층만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분위기이다. 이준석을 국힘의힘 당대표직에서 무리하게 찍어내는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프로 안팎으로 주저앉아 반등될 기미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한동훈의 거침없는 육박전을 쌍수를 들고서 환영하는 국민들의 숫자 또한 그만큼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을 치를 무렵만 해도 한동훈 장관은 수도 서울을 예로 들면 강북구와 관악구와 금천구 등의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을 뺀 다른 지역구들에서 내후년 봄에 치러질 예정인 총선에 출마하면 무난히 당선될 걸로 전망됐다. 그렇지만 지금은 강남 3구 정도에서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형편이다. 오죽하면 배현진 의원이 이준석 제거 작전에 돌격대로 앞장섰던 이유가 한동훈에게 지역구를 뺏길 게 두려워 용산 대통령실에 미리 알아서 긴 것이라는 풍문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파다하게 퍼졌겠는가?

윤석열과 한동훈은 바늘과 실의 관계에 버금갈 공동운명체로 평가돼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급속도로 보수우경화하며 중도층의 지지를 상실하니 한동훈 장관이 직격탄을 맞는 양상이다. 이른바 틀튜브를 진원지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한동훈 찬가는 한동훈의 중도확장성에 조종을 울리는 것과 진배없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보수 정당의 공천만 받은 후보면 막대기를 꽂아놔도 당선되는 강남권에서 입후보해 무난하게 승리하는 게 한동훈에게 금배지 한번 달아보는 것 말고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동훈이 비례대표 상위순번에 배치돼 낙하산 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편안히 입성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국민의힘의 정권재창출에 어떤 긍정적이고 순기능적 영향을 미치겠는가?

편협하고 망국적인 진영논리에 중독된 집토끼들로부터 사이다 발언 통쾌하고 속 시원하게 잘한다고 칭찬받는 인물들의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걸어간 길이 있다. 대다수 국민들, 무엇보다 평범한 서민대중의 절박하고 실질적인 삶과 직결된 일들에서 별다른 존재감과 효능감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섭게 치솟는 살인적 대출금리 때문에 수많은 국민들 입에서 “못살겠다!”는 아우성과 비명소리가 쉬지 않고 쏟아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직전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 가운데 심각하고 진지한 태도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여권은 수십억 현금부자인 현직 대통령 부부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고, 야권은 한 달에 수천만 원의 국민세금을 연금 명목으로 꼬박꼬박 악착같이 챙겨가는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민생경제의 회생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되레 해악만 끼쳐온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거대 양당 모두를 필자가 ‘경제테러 단체’로 단호하게 규정하는 싶은 까닭이다.

박근혜과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의 비리를 낱낱이 수사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시한 재벌그룹 총수들의 불법행위를 매섭게 추궁하며, 살아 있는 권력인 문재인 정권 핵심 실세들의 음습한 치부를 성역과 금기 없이 파헤치던 유능한 엘리트 검사 한동훈은 시나브로 옛날얘기가 돼가는 중이다. 그 빈자리에는 자기편만 좋아할 이야기들만 골라서 옳은 소리도 싸가지 없게 해대는 제2의 유시민이 바야흐로 슬금슬금 들어설 태세다.

그럼에도 유시민은 전여옥 전 의원 유형 인물들의 헛발질이 선사하는 반사이익에 기대어 정치권에서 10년 넘게 용케 버틸 수 있었다. 한동훈도 김의겸 의원과 김남국 의원 같은 이들의 잇따른 본헤드 플레이에 힘입어 공인으로서의 수명을 그럭저럭 연정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감연히 묻는 바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