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미제(未濟) 재판’으로 남겨진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 국가의 직무유기
[특별기고] ‘미제(未濟) 재판’으로 남겨진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 국가의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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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2.10.26 11:36:14
  • 최종수정 2022.10.2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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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의 족쇄를 이제라도 풀어줄 때가 됐다

기소된 지 6년이 됐지만 아직도 재판이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구속기소된 이른바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2017년 1월 21일 김기춘 비서실장과 조윤전 장관을 각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열흘 전에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을 앞서 구속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발단은 2013년 10~11월에 시작됐는데, 당시 감사원에서 비영리단체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 발표가 있었고, 언론은 감사원 발표를 크게 보도했다. 언론의 보도 직후 김기춘 비서실장은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며 국고보조금 유용 실태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국고보조금 실태 조사 과정에서 일부 국고보조금이 반체제, 반정부 인사나 단체로 직접 또는 우회적 지원의 방식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도 제기됐다. 

국고보조금이 반체제, 반정부의 자금으로 유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대통령실 또는 문체부 실무자들이 국고보조금을 유용할 우려가 있는 단체 리스트를 만들었다. 실무자가 인터넷 정보를 기초로 조악스럽게 만든 리스트는 2016년 11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가 의결된 이후 '문체부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의 대형 사건으로 변질됐다. 

박영수 특검은 국고보조금의 정상적인 관리와 반체제, 반정부 자금으로 유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대통령실의 본래 목적은 빼버리고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할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며 편파적인 여론을 조성했고, 박영수 특검의 이런 장난에 협조한 언론은 여기에 불을 붙여 국민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그런 여론을 등에 업고 박영수 특검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관계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이 사건은 지난한 1심, 2심을 거쳐 지난 2018년 7월 대법원에 올라갔다. 대법원은 애초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 배당됐는데 갑작스레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겨져 11차례에 걸쳐 심리를 진행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작동하는 전원합의체로 넘어가면서 이 사건의 결론은 유죄로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1년 6개월 만에 대법원은 지난 2020년 1월 30일 이 사건을 일부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으로 파기환송 조치했다. 선고 당시 조희대 대법관과 박상옥 대법관은 각각 별개의견을 통해 무죄 취지의 의견을 제출했다.

조희대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비서실 직원들이 청와대 문건을 박영수 특별검사에게 제공하고 특별검사가 원심에 증거로 제출한 행위는 특별검사의 직무상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을 침해하여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한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무죄라는 의견을 냈다. 

앞서 문재인 청와대는 2017년 7월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 국가안보실 등에 있는 캐비닛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작성된 문건 수천 개를 ‘우연히’ 발견했다며 그 중 일부를 공개하고, 자료 사본을 박영수 특검에 제출했다. 2017년 초반기에 정무수석실에서 문건을 어떻게 관리, 처리했는지를 지켜본 나로서는 문재인 청와대의 뻔뻔함과 사악함에 조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캐비닛에서 발견된 것도 우연도 아니다. 그 문서를 가질만한 지위에 있는 협조자가 문재인 정부에서 출세하려고 그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이다.

대통령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거나, 관할 고등법원장 영장이 제시된 경우에만 열람(사본 제작) 및 자료 제출 등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청와대는 이런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캐비닛에서 우연히 발견했다며 박영수 특검에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도록 문건을 제출했다. 이런점을 조희대 대법관은 법관으로서 적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박상옥 대법관도 김기춘 비서실장의 등의 행위 자체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박 대법관은 “국가정책에 따른 한정된 재원의 분배 과정에서 이뤄진 결정을 두고 사후적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됐다며 해당 정책의 시행에 관여한 공무원들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한다면, 정책에 관여하는 공무원들은 언제든지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며 "피고인들의 지원 배제 지시 행위가 헌법상 문화국가의 원리에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며 또 "공무원의 행위가 위헌적으로 평가된다는 이유만으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인 '직권을 남용했다'고 인정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국가보조금을 국가가 모든 문화활동 단체나 개인에게 기계적으로 똑같이 지원할 의무가 없고, 국가보조금은 문화활동 단체 누구나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도 아니다. 보조금 지원에서 배제된 단체나 개인들이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도 아니다. 공직자들이 해당 사업에 적합한 대상을 선정할 재량권을 행사하는 것, 즉 보조금을 지원할 단체나 지원하지 않을 단체를 선별하는 재량권 행사가 불법은 아니다. 보조금이 반정부, 반체제 단체의 활동 자금으로 유용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공직자의 직무유기 아닌가.

요즘 대학이나 한국장학재단에서는 농어촌 학생에게 등록금 전액을 무이자로 대출해 주거나 장학금을 지급한다. 농어촌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정하여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대학의 재량이다. B나 C학점을 받은 농어촌 학생에게 대학에서 장학금을 지급(적절한가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한다고 하여 그 대학의 총장이나 사무처장이 직권남용이라 할 수 있는가. 

이 사건의 1심, 2심은 물론이고 대법원의 심리도 길어지면서 김기춘 비서실장 등 피고인들이 겪는 고통은 가중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특별한 사유도 없이 재판 기일이 늦어지는가 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재판이 지연되어 그 피해는 온전히 피고인의 몫으로 넘겨졌다. 판결의 선고가 늦어지면서 그로 인한 직업의 제한을 받는 기간도 연장됐다. 조윤선 장관이나 정관주 차관의 경우 변호사가 직업인데, 유죄가 확정되면 선고 이후 5년이 지나야 다시 변호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 그런데 재판이 끝나지 않으니 일을 못하는 기간만 늘고 있다. 그 피해도 고스란히 이분들에게 전가된다.

이런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영수 특검이 사퇴하는 황당한 일까지 발생했다. 가짜 수산업자 김태우로부터 포르쉐 차량 등 금품수수 의혹 등이 제기되자 박영수는 2021년 7월 7일 사표를 냈다. 박영수의 추천으로 임명된 특별검사보 2명도 함께 사퇴(특검 궐위 시 특검보가 재판 등 소송 행위를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했다. 박영수는 사의를 표하며 특검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고, 향후 후임으로 임명될 특검에게 인수인계를 잘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영수 특검의 말은 공염불이 되었다. 특검이 사표를 냈으면 대통령이 사건의 공소 유지를 담당할 새 특검을 바로 임명해야 한다. 이른바 최순실 특검법(제14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특검이 사망하거나 사퇴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를 국회에 통보하여야 하고 임명 절차에 따라 후임 특검을 임명하게 돼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새 특검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김기춘 비서실장 등 피고인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재판이 지연되도록 방치했다. 대통령이 법을 집행하지 않고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형사소송에서 검사가 없으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는데, 그런 황당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한 것이다. 결국 작년 7월 이후 특검이 사라지면서 이 사건의 재판은 아직도 열리고 있지 않다.

최순실 특검법 제3조에는 특별검사의 임명 조항이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및 국민의당의 합의로 특검 후보자를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이 법을 만들 당시 국회는 야당에만 특검 후보자를 추천할 권한을 주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안철수 등을 중심으로 2016년 2월 창당한 국민의당은 2018년 2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 바른미래당이 창당되면서 해산되었다.

2020년 1월 바른미래당 지도체제를 둘러싸고 손학규 대표와 갈등을 하던 안철수는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고 그해 2월 국민의당을 다시 창당했다. 2022년 5월에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당하면서 국민의당이 또 해산되었다. 결국, 특검 후보 추천 권한을 가진 국민의당은 아예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 등을 감안할 때 대통령이나 국회가 지금 특검을 다시 임명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가장 적절한 방법은 최순실 특검법을 폐기하고, 미결로 된 이 사건을 관할 지방검찰청(또는 고등검찰청)에 이관되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또는 특별법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 방안이 이 사건의 재판을 가장 신속하게 종결할 수 있고,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에도 이 개정된 법률 조항을 적용하면 된다. 계속되는 국고손실도 막을 수 있다. 

최순실 특검법에는 특검의 부재 시 새 특검 임명 절차만 있을 뿐, 특검 부재 시 재판 중인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참조할만한 것은 특검법 제9조(수사기간 등)에, '특검이 기간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지 못하거나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경우 수사기간 만료일부터 3일 이내에 사건을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인계하여야 한다. 사건을 인계받은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은 신속하게 수사를 완료하여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고 공소제기된 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한다'라고 돼 있다. 이것을 준용하여 특검의 부재 시 관할 검찰에 이관되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 또는 특별법을 신설하면 된다. 이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 임시방편이지만 최순실 특검법이라도 신속하게 개정해야 한다(사실은 폐기해야 하지만). 

박영수 특검이 사퇴한 후 수사도 재판도 진행하지 않으면서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 특검팀에 현재 남아있는 업무는 '문체부 블랙리스트' 파기환송심뿐이다. 지난해 대법원의 하급심 파기환송 선고 이후로는 1년 10개월, 박영수가 사퇴한 후로는 1년 4개월 가까이 아무 일도 안하면서 임대료와 수사관 등 직원 월급은 계속 지출하고 있다. 직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등을 합하면 1년간 수억원의 세금이 빠져나간다. 국회는 물론이고 법무부나 대검찰청,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들도 특검팀의 인건비 규모와 임대료로 얼마나 쓰여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특검법에 직무수행에 필요한 경비를 예비비에서 지급한다는 규정이 있을뿐 예비비의 집행을 정부 부처(부서) 중 어느 곳에서 담당하는지 규정도 없는 상황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국민 세금만 줄줄이 새고, 각 부처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개탄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돼 있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권리이다. 최순실 특검법의 제10조에는 '특별검사가 공소제기한 사건의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제기일부터 3개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선고일부터 각각 2개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라고 명확히 적시하고 있다. 박영수 특검이나 김명수 대법원은 전 정권 관련자들은 국민으로 보지 않은 것인지 헌법과 특검법도 아예 무시하였다. 이 사건보다 늦게 기소된 사건도 다 재판이 끝났다. 이 사건만 아직 '미제(未濟) 재판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데는 그간 재판을 지연시켜 온 법원의 잘못이 크다. 두번째는 박영수 특검이다. 금품수수 의혹으로 박영수 특검이 사임하여 재판 자체가 중단된 것이다. 세번째는 신속하게 후임 특검을 임명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네번째는 특검 부재에 따른 입법 조치 등을 하지 않은 국회이다. 국가기관의 태만과 직무유기의 결과이다.

국가기관의 태만과 직무유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회 법사위는 시급하게 법률 개정에 나서야 한다. 특히나 국민의힘 법사위원장과 위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법무부도 특검은 자기 영역이 아니라며 비껴가서는 안 된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갖가지 수모와 위협도 당했다. 2018년 8월 6일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최장 구속 기간 1년 6개월(562일 구속)을 모두 채우고 출소했다. 당시 민중당 당원 등 좌파단체 시위대들은 김기춘 비서실장 탑승 차량을 공격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차량 위에 올라 뛰는가 하면 자동차에 탄 김기춘 비서실장을 끌어내리려 했다. 물병을 던지고 삿대질과 욕설도 쏟아냈다. 차를 막아서고 차량을 부수는 등 폭력 행사로 차량의 앞유리가 깨지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경수 경남지사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너무 달랐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댓글조작 사건으로 특검 조사 후 귀가 도중 천모씨로부터 뒷덜미 등 신체를 잡아끌렸는데 당시 경찰은 천모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 출소 당시 차량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한 시위자를 경찰은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의 경찰은 그렇게 대조적이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장남이 불의의 사고로 의식불명의 위중(危重)한 상태로 병원 중환자실에 있은지도 9년이 되었다. 하나 뿐인 아들의 위중한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고 힘들텐데 그 시간 김 실장은 자식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 차가운 감옥 그늘에서 고뇌와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늦었지만 김기춘 비서실장 등의 족쇄를 이제라도 풀어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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