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밤 이태원에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하면서, 한국에서의 핼러윈 문화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성 세대에게는 익숙치 않은 문화이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핼러윈은 일종의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세대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젊은층의 문화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핼러윈의 본질은 한국에서 변질된 현재의 문화와 크게 다르므로 ‘개선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인 핼러윈이 되면 어린이들은 다양한 분장을 하고 축제를 즐긴다. [사진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인 핼러윈이 되면 어린이들은 다양한 분장을 하고 축제를 즐긴다. [사진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10월 31일 핼러윈은 켈트족의 축제에서 유래

핼러윈(Halloween)은 매년 10월 31일, 지역민과 사랑을 나누는 영미권의 축제이다. 아이들은 괴물이나 마녀, 유령으로 분장한 채 이웃집을 찾아다니면서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는데, 이때 외치는 말이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야!’라는 의미의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다. 핼러윈의 대표적인 놀이인 트릭 오어 트릿은 중세에 특별한 날이 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아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풍습에서 기원한 것이다. 본래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였던 것이 한국에서는 본래 취지와 다르게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켈트족은 이날 사후 세계 경계가 흐릿해지며, 악마나 망령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죽은 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내놨다. 귀신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분장까지 했다.

이후 8세기 유럽에서 카톨릭교회가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정함에 따라, 축제는 전날인 10월 31일이 됐다. 핼러윈이라는 명칭은 ‘신성한(hallow) 전날 밤(eve)’이라는 의미이다. 유령이나 괴물로 분장한 아이들이 이웃집 초인종을 누르고 다니며 간식을 얻는 오늘날의 모습은,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원주민 문화와 융합된 후 정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0년대 영어 유치원 등을 중심으로 본격 유입돼

미국의 핼러윈이 아이들의 놀이 문화인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2000년대를 기준으로 원어민 학원과 영어 유치원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뒤, 핼러윈 문화가 본격 유입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유입 초기만 해도 영어학원이나 영어 유치원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호박을 깎던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였다고 볼 수 있다. 핼러윈 데이에 호박에 눈 · 코 · 입을 파서 잭오랜턴(Jack-O’-Lantern)이라는 등을 만들고, 검은 고양이나 거미 같이 핼러윈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장식물로 집을 꾸민 문화를 경험한다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최근 10여년을 전후로, 서양의 본래 풍습과 달리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미권 어린이들이 호박에 눈 · 코 · 입을 파서 잭오랜턴을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영미권 어린이들이 호박에 눈 · 코 · 입을 파서 잭오랜턴을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이런 지적은 29일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후 외신을 중심으로 ‘한국 내 핼러윈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는 보도를 통해서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한국에선 아이들이 사탕 얻으러 가는 날 아냐, 20대 클럽 행사로 정착”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 시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벌어진 참사를 자세히 전한 뒤 “한국에서 핼러윈은 아이들이 사탕을 얻으러가는 날이 아니다”라며 “최근 몇 년 간 20대를 중심으로 코스튬을 차려입고 클럽에 가는 행사로 정착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태원 지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바, 클럽, 레스토랑이 즐비한 장소”라며 “사고 전 서울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 약 10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고 했다.

또 “영업시간 제한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코로나 관련 규제가 해제된 이후 첫 핼러윈이라는 점 때문에 참여율이 더 높았다”며 “한국의 핼러윈 악몽은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핼러윈, 술과 춤 등 유흥과 지나치게 결부돼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가 ‘클럽가는 날’로 변질된 한국의 핼러윈에 대한 뼈아픈 지적에 해당되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의 핼러윈은 술과 춤 등 유흥과 지나치게 결부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핼러윈 기간 서울 지역 편의점 매출을 분석한 결과, 맥주와 양주 판매량이 이태원동에서 가장 높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숙취 해소제 판매량은 또다른 유흥가인 홍대 주변 서교동으로 조사됐다.

영미권 어린이들의 놀이문화인 핼러윈은 '트릭 오어 트릿'을 즐기는 반면, 한국에서는 '클럽가는 날'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영미권 어린이들의 놀이문화인 핼러윈은 '트릭 오어 트릿'을 즐기는 반면, 한국에서는 '클럽가는 날'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한국에서의 핼러윈 광풍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태원의 클럽 문화를 넘어, 테마파크에서도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대학생은 물론 중고생까지 놀이공원의 핼로윈 파티를 즐겨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하게 자리잡았다.

일반적으로 10월과 11월은 테마파크의 비수기에 해당하지만, 핼러윈 이벤트를 하게 되면 매출이 3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놀이공원들이 핼러윈 축제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이 사실이다.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인 핼러윈을 상업적인 기획으로 거대한 ‘이벤트’로 변모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소박하게 치러지는 그런 이벤트였다가 젊은이들의 열정이 표출되는 거기에 상업적인 기획까지 맞물리는 거대한 유흥 이벤트처럼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놀이공원의 이벤트 행사로 자리잡은 이후에는 핼러윈 파티가 전 국민의 행사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어디를 가든 10월 31일에는 핼러윈 행사가 당연시되었다.

가전업계, 핼러윈 관련 행사 일제히 중단

이번 참사를 계기로 왜곡된 핼러윈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먼저 가전업계가 계획돼 있던 핼러윈 관련 제품 행사를 중단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8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서울 성수동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핼러윈 미식파티' 행사를 취소했다. 이와 함께 '스마트싱스 일상도감' 광고 캠페인 중 고스트(유령)편 노출도 중단했다.

LG전자는 서울 강남구 인근에서 운영 중인 '씽큐 방탈출 카페 시즌2'에서 진행해온 핼러윈 관련 행사를 중단했다.

다른 업체들도 매장에서 핼러윈 관련 이미지가 있는지 살펴보고 철거한다는 방침이다.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 테마파크도 핼러윈 축제 전면 중단

상업적인 기획으로 핼러윈을 적극 활용해온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등 국내 테마파크들도 핼러윈 축제를 전면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에버랜드는 30일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핼러윈 축제와 퍼레이드 등을 일체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버랜드는 당초 10월 2일부터 개막한 핼러윈 축제를 11월 20일까지 80일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이태원동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하자 수시간만에 전격적으로 축제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30일부터 해골, 마녀, 호박 등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퍼레이드를 중단한다. 여기에 거리공연과 불꽃축제 등 핼러윈과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다.

롯데월드도 핼러윈 행사 중단에 나섰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이태원 핼러윈 사고 여파로 현재 행사 취소에 관해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며 "상황이 엄중한 만큼 퍼레이드 등을 전면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핼러윈 축제는 롯데월드가 연간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행사다. 에버랜드보다 1개월 빠른 지난 9월 2일부터 개막해 11월 3일까지 개최 예정이었다. 현재 롯데월드 홈페이지에서는 핼러윈 행사 관련 사이트 정보가 전부 내려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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