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발생 당일 경찰 지휘부 공백에 대한 의혹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당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대통령실의 전화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8일 대통령실이 국정감사에 앞서 국회 운영위원들에게 제출한 보고 내용에 따른 것이다.

미스터리 1= 왜 국정상황실 전화를 받지 않았나

국정상황실은 사고 당일 오후 11시 20분에 당시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상황실은 이후에도 용산경찰서장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오후 11시 26분 가까스로 통화에 성공했지만, “상황 파악 중”이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4분 뒤인 오후 11시 30분 용산경찰서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도 "상황 파악 중"이라는 답변뿐이었다.

8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 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정상황실은 이임재 용산서장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사진=채널A 캡처]
8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 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실은 참사 당일 경찰과의 통화 내역을 공개했다. [사진=채널A 캡처]

국정상황실은 오후 11시 32분 용산경찰서 112 상황실장과 통화에 성공, "수십 명이 심정지 상태에 있고, 추가 피해 발생 등 심각한 상황"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오후 11시 20분부터 11시 32분까지, 무려 12분 동안 용산경찰서 측에 다섯 차례나 전화를 걸었던 셈이다.

용산경찰서의 지휘 계통이 얼마나 마비됐는지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용산경찰서장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최초 보고를 한 시간은, 사고 발생 1시간21분 뒤인 오후 11시36분이다. 현장 최고 책임자인 용산서장의 현장 상황 인지와 파악이 늦어지면서 현장 대응이 늦어졌고, 그 결과 서울청과 경찰청으로의 보고도 줄줄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참사 대응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단초가 이임재 전 용산서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실정이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 “이 전 서장은 세월호 선장보다 더해, 긴급체포해야”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현안 질의에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 전 서장에 대해 “긴급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이 전 서장의 행적에 대해 ‘미스터리 수준’이라며, “참사를 고의로 방치한 거 아닌가”라고 직격했다. 연이어 장 의원은 “언론에 드러난 상황을 보면 업무상 과실치사인데, 과실치사를 넘어 참사 방조, 구경꾼, 살인방조, 세월호 선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서, 이 전 서장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주장했다.

장 의원은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일 뒷짐을 진 채 이태원파출소로 걸어가는 사진과 옥상에서 현장을 바라보는 사진을 회의실 화면에 띄웠다. 이 전 서장이 이태원파출소를 가기 위해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에 대해서는 ‘경찰의 기강해이, 무사안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지적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임재 용산서장이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옥상에서 현장을 바라보는 사진을 회의실 화면에 띄웠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임재 전 용산서장이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옥상에서 현장을 바라보는 사진을 회의실 화면에 띄웠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이 전 서장이 이태원파출소에 올라가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장 의원은 “아비규환 현장을 보고 있는 이임재”라며 재차 이 전 서장의 수사를 촉구했다.

미스터리 2=이 전 서장, 왜 사고현장에 달려가지 않았나

장 의원의 지적대로 이 전 서장의 수상한 행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수본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사고 당일 이태원 인근에서 집회 관련 지휘를 하다 오후 9시24분쯤 용산서 주변 설렁탕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 9시30분쯤 이태원 관련 상황보고를 받았다.

그후 9시47분쯤 식사를 마친 뒤 관용차를 이용해 이태원으로 출발했다. 당시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진 설렁탕집 주인은 ‘이 전 서장이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아니었다’라고 발언해, 의혹을 키웠다.

이 전 서장은 오후 10시쯤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인근에 도착했다. 이곳은 사고 현장에서 직선거리 740m, 도보로 13분이 걸리는 지점이다. 따라서 이 전 서장이 곧장 차에서 내려 현장으로 갔다면, 사고 전에 도착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전 서장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약 55분 동안 근방을 맴돈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10시55분쯤 현장에서 도보로 10분 떨어진 이태원 앤틱가구거리에서 내린 다음, 10분을 걸어 오후 11시5분에 현장 앞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50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특히 당시 인근 한 가게 CCTV에는 이 전 총경이 뒷짐을 진 채 여유 있게 현장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포착돼, 논란을 키웠다. 이 사진은 장제원 의원이 공개한 바로 그 사진과 동일하다.

이태원 참사 당시 CCTV에 찍힌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모습. 이 전 서장은 뒷짐을 진 채 어슬러거리며 이태원파출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당시 CCTV에 찍힌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모습. CCTV 화면에는 다수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밤 10시55분 경, 이 전 서장이 이태원앤틱가구거리에서 뒷짐을 진 채 이태원파출소로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연합뉴스]

미스터리 3=이 전 서장, 왜 30분간 사고 대응을 지시하지 않았나

이 전 서장이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한 이후에도 3층 높이의 이태원파출소 옥상에서 현장을 바라보며 사고 대응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옥상에서 약 30분간 머물며 아무런 대응지시를 하지 않다가, 11시 36분에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첫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 서장의 이런 행동에 대해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시민을 옥상에서 뒷짐지고 물끄러머 바라보는 저 한 사람에게 국민은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이태원 사고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이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태원파출소의 옥상이라는 데는 바로 길 건너면 그 사고 현장이 바로 있는 곳”이라며 “경찰관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도 도저히 이해 못 할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미스터리 4=이 전 서장, 왜 30일 행안부장관 보고에도 불참했나

뿐만 아니라 현장 도착 이후 이 전 서장의 행적도 묘연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이 30일 오전 1시5분 이태원을 찾아 남화영 소방청장직무대리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도 이 전 서장은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브리핑을 맡았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현장에서 (이 전 서장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전 서장이 처음으로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30일 오전 10시쯤 윤석열 대통령이 사고 현장을 찾았을 때였다.

경찰청은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의 112신고 부실 대응과 관련해 지난 2일 이 전 서장을 대기발령했다. 신임 용산경찰서장엔 임현규 경찰청 재정담당관을 발령했다.

이 전 서장, 문재인 정부 총리실 파견 근무 등 ‘친민주당’ 성향

이 전 서장의 미스터리한 행적에 대해 비판이 가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서장이 설렁탕집에서 나와 현장에 바로 가서 교통통제만 했더라도, 골목길 인파의 압력을 덜어줄 수 있었고, 그랬더라면 압사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베테랑 서장 같으면 차도가 좀 막히는 한이 있더라도 밀집한 인파의 압력을 덜어주기 위해서, 바로 차량 통제를 했을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전 서장이 이런 쪽에 경력이 많은 서장이 아니라는 점을 꼽았다. 이 전 서장은 경찰대 9기로 전남 함평 출신이다. 지난 1월에 용산경찰서장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구례서장직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실에 파견 근무도 했고, 민주당 쪽 인사들과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경찰 보직 중 요직에 해당하는 용산서장으로 발령받아 친문계 경찰로 꼽히는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용산 대통령실 이전이 결정됨에 따라 경비나 치안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그쪽 방면의 전문가를 용산서장으로 발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상황에서도 이 전 서장은 자리를 지켰다. 통상 1년 단위로 경찰 인사가 있다는 점에서, 1년이 되기도 전에 인사를 할 경우 ‘야당과 경찰 내부의 반발을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중 인파에 대한 통제 경험이 부족한 서장을 교체하지 않았던 점이 ‘이태원 참사를 부른 근본 원인이 아니냐?’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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