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에서 당원들과 각자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4시간 넘게 정치와 정당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

김세연의 분노의 일갈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이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아왔을 분노를 작심하고 작렬시켰다. 김세연은 중앙일보에 기고한 기명 칼럼을 통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견인ㆍ표상해온 기성 정치권이 분노와 공포를 자극하는 극단적 주장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고 통렬히 질타했다.

기존 제도정치권을 향한 죽비소리를 내는 정도에서 머물렀다면 김세연의 글은 하나마나한 양비론으로 허망하게 결론을 맺곤 하는 여느 정치비평들과 별다른 차별성을 띠지 못했으리라. 필자는 김세연이 정치시장의 공급자 역할을 맡아온 정당들뿐만 아니라, 수요자 겸 풀뿌리 노릇을 담당해온 일반대중에게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는 점에 무척 놀랐다. 수요자를 겨냥한 비판은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거의 금기처럼 통해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의 마지막 보루 구실을 현재는 이런저런 극우 시사 유튜브 방송들과 그 열혈 시청자들이 수행하고 있다. 김세연은 청년세대로부터 ‘틀튜브’로 불리며 조롱받고 있는 극우 유튜브 운영자들에게 윤석열 대통령 지지층이 ‘경제적 기부’ 형태로 돈을 가져다 바침으로써 우파 극단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극우 유튜버들의 수지맞는 봉 신세가 돼버린 노년층 중심의 태극기 부대가 우파 극단주의를 끊임없이 증식ㆍ생장시키는 기름진 자양분이 되었다면, 필자는 별의별 희한한 명목을 앞세워 시도 때도 없이 도처에서 열리는 온갖 촛불집회들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키겠다며 늦가을 모기떼처럼 요란하게 몰려드는 중년의 개딸들이야말로 좌파 극단주의를 부지런히 확대재생산하는 산실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준석을 폭력적으로 축출하고서 집권여당의 당권을 장악한 한국의 기득권 보수우파 세력은 그들의 지지자들을 영혼 없는 경제적 노예, 즉 돈셔틀로 길들였다. 이재명의 지휘 아래 제1야당을 완벽히 접수한 철밥통 진보좌파 집단은 자신들의 지지층을 확증편향에 세뇌당한 홍위병들로 개조시켰다.

더불어민주당 극성 지지층을 홍위병에 빗대는 발상은 왕년의 홍위병들에 대한, 어쩌면 전폭적 모독일지 모른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걸쳐 중국 대륙을 문화혁명의 광기 가득한 아비규환으로 밀어 넣은 홍위병들은 그나마 나름 순수한 열정과 이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금의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은 그 성향과 행태를 고려하건대 오히려 여말선초 시기에 권문세족들의 친위대로 활동했던 가병(家兵)들 무리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더불어민주당에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은 필자와 달리 김세연 전 의원이 그가 평소 견지해온 절제된 화법에 어울리지 않게 거칠고 격렬한 표현들마저 불사하며 쏟아 부은 맹공의 무게중심은 국민의힘 방향으로 쏠린 것으로 보인다. 바른말을 할라치면 ‘내부총질’로 매도당하는 곳을, 출세하려면 권력자의 맹종분자가 돼야만 하는 조직을, 정치생명을 부지하자면 구석에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정당을 검색하면 대통령이 보낸 체리따봉 이모티콘 한 방에 젊은 30대 현직 당대표가 순식간에 요단강 건너편으로 날아가 버린 국민의힘의 요 몇 달 간의 살풍경한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는 연유에서이다.

‘일기토’로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

파워게임, 곧 권력투쟁이 정치의 전부는 당연히 아니다. 허나 권력투쟁에 패배한 정치가가 민중을 위해 당대에 구체적인 가시적 업적을 남겼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민주주의 체제는 전쟁 대신 정치로 권력투쟁을 전개하도록 게임의 규칙을 확실히 못 박아놓은 시스템이다. 이는 민주주의에서의 경쟁에서도 파워게임은 필연이라는 뜻이다. 단적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확립한 미합중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권력투쟁에서 이기는 데 필요하다면 매수와 담합 등의 음습한 권모술수를 기꺼이 동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칭하는 현대사회의 모든 파워게임은 단체전으로 진행되는 법이다. 이준석이 윤핵관들에게 결국에는 패퇴한 결정적 원인은 그가 개인전에서 단체적으로 진화할 시간과 에너지를 미처 확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일기토’로 세상을 정복하고 적들을 모조리 제압하는 상황은 오직 온라인 공간의 게임 속 세계에서나 가능한 시나리오일 뿐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준석은 물론 그의 지지자들에게 고전(?) 한 권을 일독할 것을 진심으로 권유하는 바이다. 당신들이 느끼기에 정말 생뚱맞은 책이다. 책의 제목은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이다. 저자가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게는 굉장히 뜨악하게 다가올 게다. 하필이면 블라디미르 레닌인 탓이다. 저 악명 높은 볼셰비키의 영수로서 러시아 10월 혁명의 수괴였던 바로 그 레닌 말이다.

필자가 이 책을 권유하는 동기는 간단명료하다. 대한민국 청년세대가 여간해서는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이너서클을 만들고 꾸리는 일이다. 그 작업이 지지부진하니 기성세대의 단체전에 늘 돈키호테 식으로 개인전으로 맞섰다가 번번이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이준석이 최근 그랬듯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단체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요구되는 필수적 조직원리의 ABC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이너서클이 꼭 무슨 부정한 음모를 꾸미는 공간은 아니다. 이너서클은 세 가지 역량을 구성원들에게 함양ㆍ축적시키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책임지고 있다. 문제의 3대 역량이란 다음과 같다.

① 독자적 정세분석 능력

② 자체적 의사결정 능력

③ 또 다른 이너서클을 조직해 운영해가는 확장 능력

오늘날 한국사회의 청년세대가 그리도 혐오해 마지않는 구태 586 기득권 세대의 강점은 그들이 젊었던 시절에 필자가 방금 강조한 세 가지 역량을 집중적으로 학습한 경험을 지녔다는 것이다. 한 명, 한 명만 따져보자면 형편없는 무능력자로 평가되는 586 세대가 뭉치는 즉시 최강의 권력집단으로 변신하는 비결이다. 그들이 오른쪽에 가면 극우 유튜버가 되어 돈을 뭉텅이로 쓸어 담고, 왼편에 가서는 시위대를 이끄는 선동가가 되어 무수한 인간들을 쥐락펴락한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임을 역설했다. 극우 유튜버들의 현금지급기가 된 태극기부대 어르신들의 삶도, 더불어민주당의 가병이 되고 만 40대 진보대학생들의 삶도 지금의 MZ 세대가 본받길 원하는 바람직한 인생의 귀감은 결코 아닐 터이다. 그렇지만 자기 세대의 지도부를 세우지 못하면 남의 세대가 옹립한 지도부에게 종속되고 지배받기 마련이다.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도, 40대 진보대학생들도 자기 세대의 이너서클을 만들어내는 데 종국에는 실패한 까닭에 좌파와 우파로 나눠서 기득권을 만끽하고 있는 586 세대의 먹잇감이 되고, 노리개가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세대는 칙칙하게 지도부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다른 세대의 식민지가 되기에 딱 알맞을 근시안적 단견이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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