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외계인들이 지구탐방을 마치고 돌아갔다. 예전에는 백 년 단위로 방문하던 행사였는데(19세기까지는 백 년 전이나 이후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20세기 들어서면서 30년, 20년으로 간격이 줄었다가 21세기에는 10년 단위로 일정이 조정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워낙 빨라져 달에도 사람을 보내고 목성인지 금성인지까지 넘보고 있는 탓에 관찰을 게을리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까지 외계인들이 가장 많이 가져간 자료는 전쟁 기록과 포르노였다. 학문이나 과학은 너무 유치해서 쳐다볼 가치도 없었고 지구인들은 어떻게 번식을 하는지, 그리고 그 번식한 것을 어떻게 까먹는지만 궁금했을 따름이다. 이는 우리가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볼 때 야생의 혈투나 짝짓기 같은 것을 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외계인들은 방문과 탐사를 통해 보고서를 남기는데 최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 혹은 ‘인류’로 통칭해서 부르던 것을 이제는 나름의 강역을 지닌 국가 단위로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 인류의 핵을 주시하다

외계인들이 보기에 지구의 미래는 매우 불안정하다. 과학기술의 발달에서 변곡점을 이루는 핵 개발에서 처음에는 두 나라가 경쟁을 하다가 그게 순간적으로 다섯 나라로 불더니 20세기 말에는 모두 일곱 나라가 되었다. 여기에 보유했다가 포기한 나라가 하나(남아공),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렇다 저렇다 도대체 말을 안 하는 나라가 하나(이스라엘) 그리고 이와 반대로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인해달라고 난리치는 나라가 하나 있다. 문제는 이 핵에 대한 억제력이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 contact를 보면 여자 주인공 과학자가 외계인을 만나면 무엇을 묻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너희들은 어떻게 과학기술의 위험을 통제해서 위기를 넘기고 문명을 발전시켰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그러나 외계인들이 보기에 지구인들의 이성과 지성은 그 고비를 쉽게 넘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어느 날 방문했더니 생명체가 거의 사라진 지구를 볼지 모른다는 의견이 항상 보고서 끝자락에 붙는다. 그러니까 외계인들이 볼 때 지구인들은 문명의 붕괴를 넘어 종의 동반 자살이라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외계인들이 부쩍 주목하는 나라가 있다. 동경 127도, 북위 37도에 위치한 나라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너무 존재감이 없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20세가 말 갑자기 물산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여러 이유로 세계의 주요 관심 국가로 떠올랐다. 외계인들의 지구 탐사 보고서 중 이 나라를 관찰한 부분을 일부 옮긴다.

그들이 보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개체 수는 7천 5백만 개 정도인데 나라의 중간에 금을 긋고 대립하는 중이다. 남쪽 종자들이 잘 살고 북쪽 종자들은 여전히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지구에서 이 나라가 주목받은 이유는 북쪽이 세기에 뒤쳐진 경제생활을 하는 것과 달리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북쪽 나라는 여전히 왕이 다스리고 있으며 현재의 왕조는 3대 째다. 그 외 특이사항 없음. 남쪽은 흥미롭고 복잡하다. 나라 이름은 대한민국인데 자기들은 헬 조선이라고 부른다. 국호가 둘인 모양이다. 국호가 둘인 것처럼 이 나라는 두 개의 세력이 대치하고 있다. 북쪽을 좋아하는 종자들과 싫어하는 종자들로 이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여기도 왕이 있지만 북쪽처럼 왕조는 아니고 몇 년 단위로 새로 뽑는다. 정치 시스템은 자기들이 입법, 사법, 행정으로 부르는 조직으로 나뉘어 있는데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나라의 특징은 국가가 돈을 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동체가 스스로 이익을 도모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자기들은 하나도 안 이상한 모양이다. 국가가 돈을 버는 대신 이 나라는 소속 종자들로부터 물품과 화폐를 걷어 나라 살림을 한다. 해괴한 일이다. 그러나 피지배층은 이에 대한 불만이 별로 없어 보이는 까닭에 그냥 넘어가도록 한다. (중략) 세 개의 조직 중 특히 입법은 낙후되어 있고 수준이 저렴하다. 입법부 대표들은 사방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은 별로 하지 않는다. 북쪽에 대한 호오好惡를 두고 싸우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이들은 여의도라고 부르는 섬에 모여 다툼을 벌이는 데 이때 물리적인 자극 한 번이면 소탕이 가능한데도 남쪽 종자들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그 특권계층을 날리더라도 새로 선출된 것들이 동일한 전철을 밟을 것이기에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 나라는 정치적인 행정 구역이 종자의 개체 수의 비해 지나치게 적어 딱 하나다. 바다 건너 길쭉한 대륙 위쪽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3억 4천만 개의 종자를 50개 단위 강역으로 나누어 운영하는 것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져 보인다. 세 권역 정도로 분리하여 연방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만 이들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관찰 결과 이들은 집요할 정도의 단일 종족 개념을 가지고 있어 분할을 극도로 기피하는 병리적인 중세를 보이는데 우리가 보기에 이는 미숙함 혹은 미개함의 증거일 따름이다. 우리라면 망설이지 않고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으로 강역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러면 소모적인 분쟁을 벌일 일이 없을 것이고 강역 간에 경쟁이 붙을 테니 이게 자연스럽다. 경쟁에서 밀리면 해당 강역의 종자들이 우세 강역으로 이주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도태된 강역이 우세 강역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방안을 이들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도태되었으나 이주가 싫고 자존심이 강한 종자들은 내부에서 서로 뜯어먹으면서 열악하게 살면 되니 이 또한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종족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중략) 북쪽에서는 가끔 핵으로 남쪽을 위협하는데 남쪽 종자들의 의식은 태평하고 한가롭고 낙관적이며 낙천적이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 또한 우리가 보기에 기이한 현상인데 종의 절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이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하여간 매우 특이한 종족이라 볼 수 있겠다. (하략)

2023년 전망도 여전히 암울해 보이는 대한민국

경제를 망치고 정신 건강을 파괴하는 나라에 살다보니 이런 유치한 칼럼까지 쓰게 됐다. 정치를 멀리하고 경시하면 나보다 못한 자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해 쓰긴 했는데 재미있고 유익한 결론을 내지 못해 죄송하다. 2년 후 총선도 또 그들의 판이 되고 그 판이 다시 4년을 말아먹고 후퇴시킬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대체 언제까지 진단은 나왔는데 치료를 못하고 우리는 살아야 하나.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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