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과 리설주 부부를 빼닮은 딸을 공개한 사실을 두고, ‘후계자 수업’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ICBM 발사 성공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이 크지만, 후계자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과 리설주 부부를 빼닮은 딸이 공개됐다. [사진=YTN 캡처]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과 리설주 부부를 빼닮은 딸이 공개됐다. [사진=YTN 캡처]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그들의 아들을 후계자로 공식 결정하고서도 한참 지난 후에 공개한 데 비해 김정은은 그의 딸을 어린 나이에 공개하는 파격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1984년생으로 아직 마흔도 안 된 김정은 위원장이 벌써 후계자를 공개할 리 없다는 차원에서다.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 “김정은 8살 때 후계자로 지명돼...김주애는 9세”

정보당국과 언론 등에 따르면 김정은과 리설주는 2009년 결혼해 2010년 아들을, 2013년 무렵 딸을 출산했다. 2017년에 출산한 셋째의 성별은 아직 미확인 상태이다. 이번에 공개된 딸은 둘째인 김주애로 추정된다. 앞서 미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은 김정은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한 후 “나는 그들의 딸 주애를 안았다”고 했다. 첫째는 ‘김주은’으로 추정되며, 평양에서 포착되지 않아 해외에서 유학 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김주애의 후계자설을 가장 강력하게 제기하는 정성장 센터장은 2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북한이 그동안 보여온 주도면밀한 태도를 봤을 때 면밀한 계산에 의해 공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노동신문에서 이번 ICBM 시험 발사한 날을 역사적인 날로 설명하고 있다”며 “그런 역사적인 날에 김정은이 자신의 세 아이 중 한 명을 데리고 등장한 건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정 센터장은 “만 9세 아이를 데리고 등장한 게 후계 수업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면 너무 빠르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도 김정은이 이미 8살때 후계자로 지명된 사실을 언급하며 어린 딸을 위한 후계 수업 가능성을 강조했다.

1992년 김정은 찬양가인 ‘발걸음’ 공연돼

정 센터장은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초까지 미국에 머물면서 김정은의 이모와 이모부를 만나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과정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김정은의 후계 과정을 소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모인 고영숙은 1998년 5월, 극비리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김정은의 이모와 이모부에 따르면, 김정은의 8살 생일이었던 1992년 1월 8일 최초 김정은 찬양가인 ‘발걸음’이 공연됐고, 당시 아버지 김정일은 “김정은이 내 후계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21일 MBC 라디오에서 '김정은이 8살에 후계자로 지명된 사실'을 언급하며, 어린 딸을 위한 후계 수업 가능성을 강조했다. [사진=MBC 유튜브 캡처]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21일 MBC 라디오에서 '김정은이 8살에 후계자로 지명된 사실'을 언급하며, 어린 딸을 위한 후계 수업 가능성을 강조했다. [사진=MBC 유튜브 캡처]

김정일은 자신을 닮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

이에 대해 김정은의 이모가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하자, 김정일은 “김정은이 나를 닮았다”는 말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당시에는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으면서 외부에서는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주목했다. 이것이 후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불러왔고, 결국 김정남이 암살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정 센터장은 설명했다.

정 센터장에 따르면, “김정일이 연회에 참석하는 측근들에게 김정은이 8살 때부터 후계자라고 밝혔는데, 김정은의 딸이 만 9세라면 그때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남 사례를 고려했을 때 “김정은은 후계 구도를 일찍 대외 공표하는 것이 외부의 오해나 내부적 혼란을 줄인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센터장은 또 “김정은도 장남, 차남이 아닌 삼남이지 않으냐”며 “김정은의 딸이 둘째라고 하더라도 첫째보다 확실하게 김정은을 닮은 모습,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면 (후계자로)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양무진 총장, “딸 공개는 오히려 후계자가 아님을 방증”

하지만 김주애 후계자설에 대해 장남이 있다는 점과, 너무 이른 나이라는 점에서 반대 의견도 제기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후계자의 조기 등판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딸을 공개한 것은 오히려 딸이 후계자가 아님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양 총장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도된 연출보다 딸의 보채기에 즉흥적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ICBM 발사 현장에서 공개된 딸은 2013년 생, 김주애로 추정된다. [사진=YTN 캡처]
ICBM 발사 현장에서 공개된 딸은 2013년 생, 김주애로 추정된다. [사진=YTN 캡처]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후계자 공개는 주민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인데,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서 여성이 후계자로 인식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위층 탈북자 출신인 김 연구위원의 지적은 북한 사회의 인식을 단면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용현 동국대학교 교수 역시 "30대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이 지금 후계자를 공개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다"며 "주민들이 모두 보는 노동신문에 이번 사진을 실은 건 '나에게는 여러 자녀가 있고 이들이 백두혈통을 잇고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려는 목적"이라고 해석했다.

발사 현장에 부인과 딸,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 등 이른바 북한이 주장하는 '백두 혈통'을 동원함으로써 북한이 선언한 '핵무력 완성'이 백투혈통의 업적임을 은근히 내세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는 설명이다.

블룸버그 통신, “딸은 학생인 듯, 정치적 지위를 갖기엔 너무 어려”

블룸버그 통신은 “북한 지도자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역할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 전에 공식 석상에 공개되는 경우는 거의 들어본 바 없다”며 “김 위원장 딸은 학생인 듯하고 정치적 지위를 갖기엔 너무 어려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향후 김정은이 중요한 현지 지도에 딸을 자주 동행한다면, 이는 김주애로 알려진 둘째딸이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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