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태원 참사 이후 '재난관리 개선 TF', 소리 없는 아우성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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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2.11.28 11:44:06
  • 최종수정 2022.11.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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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권(숭실대 대학원 겸임교수·前국가위기관리학회장)

지난달 핼러윈 전야 이태원 참사는 다중인파 위험 경시, 공직사회 기강해이, 고장난 재난대응체계 등이 어우러진 인재였다. 안전 불감증과 인간존엄을 지켜주는 안전가치는 내팽개치고 입만 열면 국민안전을 읊조리는 정치권도 한몫을 더했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대구지하철 화재·세월호 침몰 등 대형재난 이후 당시 정부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을 내놓았으나, 성과는 별로 없고 재난은 반복되고 있다. 현 정부도 ‘범정부 재난관리 개편 TF’를 발족했고, 여야 또한 국정조사까지 합의했다. 시민들은 학습효과 때문인지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듯하다.

우리의 재난관리 법·제도는 타국에 비해 뒤지지 않는데 왜 재난대응 실패를 반복할까? 안전가치와 철학은 경시한 채 피조물만 잔뜩 만들고 덧대온 후폭풍으로 추정된다. 감재(減災)가 정답인데 방재(防災)에 매달린 재난관리는 시지프스(Sisyphos) 형벌이 된지 오래다. 재난개선TF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될까 우려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재난대응체계와 운영기반을 우선 보완하고 안전가치와 정체성 정립을 장기과제로 추진하는 것은 당위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재난관리체계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국가재난대응 컨트롤 타워 역할 재조정이다. 중앙재난안전대본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의 역할 중복, 재난시 중수본 역할기능 혼란과 중대본의 보좌기구화 문제 등은 코로나19대응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따라서 중대본은 가칭 “중앙수습지원대책본부”로, 중수본은 가칭 “중앙재난사고대책본부”로 개칭하고 역할을 재조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외교부·원자력안전위원회·행안부장관이 중대본부장과 중수본부장 겸직으로 초래되는 업무 중복·혼란도 방지할 수 있다. 국정상황실의 재난상황업무는 국가위기관리센터로 이관하고 비상안전비서관 신설해야 한다. 그리고 서울청사 재난상황실을 국무조정실로 넘겨 국무총리의 재난정보접촉유지와 의사결정을 지원토록 해야 한다.

둘째, 재난발생 기관(업체)의 상황보고 대상 기관을 축소해야 한다. 재난발생 기관(기업)의 상황보고 대상 과다는 신속한 현장대응·복구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관할 시·군·구와 광역시·도, 유관기관, 업무소관 부처, 행안부, 대통령실 등 10여 개 이상의 상급기관에 보고하느라 늑장대응이 불가피한 구조다. 향후 상황보고는 1차 상급기관과 지자체·소방·경찰 등 필수기관으로 한정하고, 지대본의 중대본 보고도 폐지(필요시 보고)해야 한다. 또한 중앙정부의 조직기능과 권한을 지자체로 대폭 위임해 이들이 재난대응 1차 책임기관으로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도록 법·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구·서울시 지대본 가동과 역할수행이 부각되지 못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셋째, 안전문화와 민관협력 분위기 확산이다. 안전문화는 단기간 내 형성이 어려우므로 장기 프로젝트 전략이 요구된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생애주기에 맞춰 안전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현행 TV·동영상 시청이나 사이버 중심교육은 성과달성이 제한되므로 실제훈련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위기대응 매뉴얼을 활용한 체득훈련(Learning by doing) 반복 없이 성공적인 위기대응과 안전문화 확산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또한 오늘날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상호 의존성이 높고 시민사회의 급성장과 영향력 확대로 과거처럼 국가가 일방적 정책결정과 집행을 선도(先導)하던 관행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재난의 직접적 이해상관자(stakeholder)인 시민사회(NGO), 자원봉사자, 기업 등과 쌍방향 의사소통 기반의 민관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된 포괄적 법·제도를 개정해 무늬만 민관협력을 해소해야 한다.

넷째, 기업의 자율적 재해경감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현 기업재해경감법은 재해경감 우수기업에 재해경감설비 자금과 세제지원, 보험료 할인, 정부입찰에 가산점 부여 등 인센티브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이용하거나 체감한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처벌중심의 규제와 재난의 정치화로 재난 본질이 왜곡되고 확대·재생산함으로써 기업의 자율예방노력을 구축(驅逐)한 현상으로 본다. 기업의 자율적인 재난예방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기업과 개인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재난은 고액의 손해배상을 부과해야 한다. 기업의 자율적 재해경감활동 유도는 물론 불법행위 억제와 재발방지 등 순기능이 크므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관장의 위기 상상력과 리더십 배양이다. 이태원 참사에서 드러난 기관장 유고시 대행체제 미작동, 민방위사태 미선포는 물론 기관장의 위기 상상력과 리더십 실패는 처참한 수준 그 자체였다. 무너진 공직자 윤리와 선사후공(先私後公)이 활개 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다. 위기 상상력과 리더십 발휘는 말처럼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다양한 위기상황을 상정한 대응·복구절차를 두고 치열한 토론과 피나는 훈련을 통해 습득·계발되는 것이다. 기관장의 위기대응 의사결정 훈련 과정을 신설해 교육하고, 공공·행정기관의 재난관리 업무평가 결과를 언론에 공개해 경각심을 고취하고 경쟁심도 유발해야 한다. 스스로 위기대응 능력 배양을 외면·소홀한 기관장을 강제할 수단은 필요악이다.

우리는 지금 예측 불가능한 미래 재난과 마주하고 있다. 재난은 개인 삶의 피륙이 찢어지고 사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암과 같다. 안전은 반드시 지켜야할 핵심가치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정립과 정부와 국가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협업을 통해 달성해야 한다. 그간 재난관리체계 개선에 실패한 것은 재난은 늘 정부의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번 재난체계개편TF는 보여주기식 조직개편, 첨단장비구축, K-재난정책 같은 카드를 더 이상 흔들지 말라. 재난을 이용한 정치 쇼는 문재인 정권 한 번으로 족하다.

정찬권(숭실대 대학원 겸임교수·前국가위기관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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