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기로 함에 따라, 예산안 처리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둘러싼 여야간 기류가 초강경 대치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거부할 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안 발의도 지체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내일(30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내일(30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오늘 오후 의원총회를 거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내일(30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30일 이상민 해임건의안 제출, 거부하면 탄핵소추안 발의”

박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국민과 유가족의 뜻을 받들어 참사 한 달이 되기 전까지로 시한 정해 (파면을) 요청했지만, 대통령은 끝내 민심과 맞섰다"며 "이번 해임건의안은 이상민 장관의 이태원 참사 부실·무능 대응, 책임회피, 축소·은폐와 거짓말까지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유가족의 절규를 대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 때처럼 또 다시 국민과 국회의 뜻을 무시한다면 지체없이 탄핵소추안까지 추진해서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서 준비 과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해임건의안마저도 거부할 시 지체없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임건의안과 달리 탄핵소추안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경우 발의가 가능한데, 이에 대해 오 원내대변인은 "탄핵소추안도 얼마든지 (발의)가능하다는 내부적 검토결과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상민 해임건의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다. 전날 국민의힘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은 ‘이상민 장관 파면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사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정조사를 합의한 상황에서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을 들고 나온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인 셈이다.

국회 이태원 참사 국조특위 이만희 국민의힘 간사(오른쪽) 등 국민의힘 소속 특위 위원들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산안의 정상적 처리 협조, 행안부 장관의 파면 요구 철회 등을 민주당에 요구하며 이러한 조치가 수반되지 않는 정략적 국정조사에 결코 동의할 수 없고 '국조위원 사퇴'도 고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 이태원 참사 국조특위 이만희 국민의힘 간사(오른쪽) 등 국민의힘 소속 특위 위원들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산안의 정상적 처리 협조, 행안부 장관의 파면 요구 철회 등을 민주당에 요구하며 이러한 조치가 수반되지 않는 정략적 국정조사에 결코 동의할 수 없고 '국조위원 사퇴'도 고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속내는 무엇일까?

① 유가족 등에 업고 ‘제2의 세월호 사건’ 프레임 만들기

민주당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등에 업고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 사건’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은 이 같은 전략의 출발점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이 장관을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 책임자로 규정함으로써, 향후 윤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포석인 셈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 같은 계산법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 장관 해임이나 파면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당 내 이 장관 해임의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서는 과정에서 이 장관의 등을 토닥여주던 모습으로 이 장관에 대한 신임을 드러냈고, 이후 TF장으로 임명하면서 해임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강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서는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과 관련해 국정조사 불참 얘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조사가 파행할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유가족들이 정부에 진실규명을 위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강하게 밀고 나가도 불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박원석 전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29일 CBS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은 이 장관 절대 해임 안 시킨다”며 가장 신임하는 측근 중의 한 명인 이 장관을 불명예스럽게 해임시키면 ‘총선 카드’로 못 쓴다고 짚었다. 이 장관이 2024년 총선에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박 의장은 “퇴임을 시키더라도 자연스럽게 개각이라는 형식을 띄워서 할 것”이라며 “야당 입장에서는 가만히 그걸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 장관에 대한 해임이나 파면을 가장 먼저 취했어야 하는 조치인데, 덜컥 국정조사부터 먼저 합의한 게 민주당의 원내 전략에서 놓친 부분이라는 것이 박 전 의장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박홍근 원내대표는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28일) 국민의힘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은 이상민 장관 파면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사퇴할 수 있다며 국민을 겁박하고 나섰다"며 "국정조사를 수용한 속내가 당초 이상민 장관 보호용이었음을 자백하려고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② ‘이상민 해임 정국’ 조성해 ‘이재명 비리 의혹’ 물타기 시도?

박 전 의장과 함께 CBS라디오에 출연한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수사의 강도가 좀 높아진 것도 하나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김의겸 대변인의 부적절한 말과 사과‧ 해명에 대해서 민주당이 수세적인 분위기로 몰려가는 데다, 장경태 의원의 발언과 여러 가지 대처 부분도 상당히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강경대응을 함으로써, 주도권을 잡고 공격으로 태세 전환을 노린다는 것이 장 소장의 설명이다.

이상민 해임 정국으로 여야가 충돌할 경우 ‘이재명 비리 의혹’ 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계산법이라는 해석인 것이다.

하지만 장 소장은 민주당의 이런 전략이 좋은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정조사를 통해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하자는 것인데, “원인 규명을 하기도 전에 이 장관을 파면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 포인트냐”라는 지적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따른 중대본 구성과 운영 부처별 대응 상황 및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따른 중대본 구성과 운영 부처별 대응 상황 및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 소장은 “이미 이 장관은 장관으로서의 권위와 리더십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 갑자기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이라는 카드를 꺼내줌으로써, 오히려 국민의힘에게 국정조사에 참여하지 않을 명분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국조 위원이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 이후 12월 2일 통과까지 된다면, 국정조사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이 바라고 유족들이 희망하고 있는 국조에 대해서 양당이 파토내는 분위기는 부적절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장 소장의 분석에 대해 박 의장은 “국정조사는 파토나지 않을 것이고 국민의힘이 안 들어오면, 민주당과 야당이 단독으로 한다”며, “(그렇게 되면) 예산안은 날아간다”고 전망했다. 준예산을 상정하지 않고, 민주당의 수정안만 통과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정조사와 예산안 처리까지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양당의 복잡한 속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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