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시각) 상하이의 한 거주지역에서 거주민들이 나오려는 것을 방역 요원들이 막고 있다. 이는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19 제로' 정책에 의한 조치로, 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분노·반대가 시위로 표출되고 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일단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달 26일(현지시각)부터 상하이를 필두로 중국 내 여러 도시들에서 '코로나19 제로'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이에 더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및 중국공산당의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까지 나오자 중국 당국이 코로나 방역 봉쇄 조치를 다소 완화하는 모양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이 전면적인 '위드코로나' 기조로 돌아설지 모른단 예측도 나온다.

중국의 '코로나19 제로' 정책의 핵심은 봉쇄·격리 등과 같은 강제적 물리 조치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시의 한 21층짜리 고층 아파트에서 화재가 일어나 최소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중국인들이 SNS를 통해 지켜보면서, '엄격한 봉쇄 정책 때문에 죄없는 사람이 죽었다'는 인식이 중국 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고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봉쇄 조치를 경험해본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마치 우루무치 화재가 자신의 '트라우마'처럼 느껴질 수 있다. 결국 중국 정부의 엄격하지만 효율적이었다고 평가되었던 '코로나19 제로' 정책이 민심 이반·여러 도시의 시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특히 화재 사건이 발생한 우루무치시는 민족·지역 등의 면에서 여느 중국 대도시와는 다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이 도시는 중국 내륙 서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며, 신장위구르에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이슬람이 종교인 위구르인들이 많다. 위구르인들은 중국 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수용소 문제의 피해자 민족이다. 여기에 더해 우루무치시는 100일 이상 봉쇄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소방 당국이 출동하더라도 사고 현장이 쉽게 진입하지 못했단 지적도 나왔다. 이러한 이유들로 중국 정부에 대한 우루무치시 주민들의 분노는 타 지역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가 이번 사건에 한해 중국 국민에 양보하는 듯한 완화 조치를 내놓은 것은 이러한 맥락이란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봉쇄·격리의 기준을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 제조업이 가장 강한 곳인 남부 광동성 광저우 시는 1일부터 바이윈, 하이주 등 도심 9개 구의 방역 봉쇄를 전면 완화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했다면, 이날부터는 감염자가 나온 아파트 동만 봉쇄하겠단 것이다. 또한 임의로 봉쇄 구역을 확대하지 않고, 봉쇄 해제 조건에 부합하기만 하면 즉시 풀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제로' 정책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유전자증폭(PCR) 전수 검사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서부의 대도시 충칭 시도 완화된 봉쇄 정책을 적용하기로 했다. 코로나 고위험 지역에서 저위험 지역으로의 인구 이동을 허용하고, 격리 대상을 더 엄격하게 판별하며, 국가 시설 격리 대신 자가 격리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외 허베이성 스좌좡, 랴오닝성 선양 등도 외식이 가능해지는 등 일부 조치를 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30일 한국 홍대거리에서도 한중 대학생들이 모여 시진핑 주석의 퇴진을 외치며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번 중국의 시위가 주변국을 넘어 점차 세계로 확산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중국 당국이 이번에 중국인들의 매운 '민심'을 맛봤다고 해서 위드코로나 정책 기조로 급격하게 선회할 것이란 예측은 섣부를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지난 1989년 4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의 '천안문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꿔 무력 진압할 가능성을 가진 집단이 중국공산당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특유의 폐쇄적 구조로 인해 이번 '백지 시위'에 동조하는 당간부가 몇 명인지, 반대하는 인사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설령 당내 시위 동조 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1인자 시 주석의 뜻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돌변할 수 있단 것이다.

'천안문 사태'에서도 시위 진압을 두고 공산당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있었다. 덩샤오핑 당시 국가 주석, 리펑 총리, 류화칭 중앙고문위원회 위원(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임명됨) 등이 강경파였으며, 온건파엔 자오쯔양 중앙위원회 총서기, 친지웨이 국방부장, 쉬친셴 베이징군구 38집단군 군장 등이 있었다. 하지만 '1인자' 덩 주석의 의지에 따라 '천안문 사태'는 유혈 학살극으로 끝나버렸다. 이번에도 시 주석이 마음만 바꾼다면, 중국공산당을 옹위하는 인민해방군의 총부리가 언제든 시위대를 겨눌 수 있다.

1984년 자오쯔양 국무원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레이건 대통령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 자오쯔양 총리는 중국공산당 내 개혁파였다.
1984년 자오쯔양 국무원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레이건 대통령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 자오쯔양 총리는 중국공산당 내 개혁파였다.

덩 주석의 뒤를 이어 차기 중국 국가주석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던 후계자 자오쯔양 총서기는 '천안문 사태' 관련 온건파였단 이유로 정치적 생명이 끝나버렸고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 신세가 됐다. 쉬친셴 군장은 "인민해방군은 인민에게 총부리를 돌릴 수 없다"며 진압 명령에 거부하다 마찬가지로 연금 상태가 됐다. 이번에도 시 주석은 일단 온건 정책을 내놓았다가 정국이 진정되거나 사태의 진전이 없으면 완화책을 내놓은 당내 인사 및 온건파를 숙청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김일성 이래 3대 부자가 보여온 민심 수습책과 동일하다. 만일 중국에서 당내 숙청 작업이 발생한다면, 이번 완화책은 시 주석 측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획한 기만전술이 되는 셈이다.

덩샤오핑의 후계자 자오쯔양 총서기는 '천안문 사태' 해결법에 있어 온건파에 섰단 이유로 정치적 생명을 모두 잃고 여생을 가택 연금 당하며 살았다. 이번 봉쇄조치 완화도 온건책으로 간주되는 만큼 차후 제2의 자오쯔양이 발생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5년 1월 17일(현지시각) 자오쯔양 총서기의 사망 10주기를 맞아 홍콩 6·4 기념관에서 열린 추모 사진전. [사진=연합뉴스]
덩샤오핑의 후계자 자오쯔양 총서기는 '천안문 사태' 해결법에 있어 온건파에 섰단 이유로 정치적 생명을 모두 잃고 여생을 가택 연금 당하며 살았다. 이번 봉쇄조치 완화도 온건책으로 간주되는 만큼 차후 제2의 자오쯔양이 발생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5년 1월 17일(현지시각) 자오쯔양 총서기의 사망 10주기를 맞아 홍콩 6·4 기념관에서 열린 추모 사진전.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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