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롯데를 제외한 국내 주요 그룹이 연말 인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경영 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이번 인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 복합 위기 속에 안정을 꾀하면서도 미래 먹거리 창출 등을 위한 준비에 방점이 찍혔다.

내년 경영 환경도 '안갯속'인 만큼 각 그룹의 사업 계획은 미래 준비를 위한 투자와 불필요한 경비 절감 등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 인사 앞당겨 '미래 대비' 속도…'재무통' 역할 강화

4일 재계에 따르면 통상 4대 그룹 중 가장 마지막인 12월 중순에 인사를 해오던 현대차그룹은 올해는 2주가량 앞당긴 지난달 30일 대표이사·사장단 인사를 먼저 단행했다. 임원 인사는 이달 중순에 할 예정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선제적으로 전략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화그룹은 이미 10월에 인사를 모두 마무리하고 사업 구조 재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CJ그룹도 예년보다 두달 가량 앞당겨 인사를 단행했다.

연말 인사의 키워드는 '미래 준비'로 정리된다.

주요 그룹은 최고 경영진 대부분을 유임시키며 조직의 안정을 꾀하는 한편 미래 사업에 힘을 싣고 그룹 내 '재무통'에 요직을 맡겼다.

SK그룹에서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4연임했고, 장동현 SK㈜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도 유임됐다.

LG그룹도 용퇴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CEO가 재신임을 얻었다.

대신 미래 준비에 초점을 맞췄다. 그룹 주력인 배터리 사업을 하는 LG에너지솔루션에서 작년(15명)의 2배에 달하는 29명의 승진자가 나왔다. 젊은 임원도 대거 발탁했다.

유동성 위기 등의 리스크에 대비할 재무통의 약진도 눈에 띈다.

LG화학[051910]의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인 차동석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고, 재무·해외판매 기반 전략 기획 전문가인 이규복 현대차[005380]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현대글로비스[086280]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SK㈜는 이성형 CFO를 사장 승진시키며 CFO의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GS[078930]의 CFO인 이태형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 오너가(家) 3∼4세 약진…승진 규모는 줄어

30∼40대의 젊은 오너가 3∼4세의 약진도 눈에 띈다.

GS그룹에서는 허명수 전 GS건설[006360] 부회장의 아들 허태홍 GS퓨처스 대표와 허진수 GS칼텍스 상임고문의 아들 허진홍 GS건설 투자개발사업그룹장이 신규 임원에 이름을 올렸다.

구본준 LX홀딩스[383800]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홀딩스 경영기획부문장은 올해 초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데 이어 이번에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내 입지를 한층 더 강화했다.

이에 앞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무는 한화솔루션[009830] 갤러리아 부문 전략본부장을 맡았고,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이규호 사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097950] 식품성장추진실장도 미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중책을 맡았다.

반면 전반적인 승진 규모는 줄었다.

현대차그룹은 사장 3명이 일선에서 물러난 반면 사장 승진자는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 1명에 불과했고, LG그룹의 전체 승진자는 160명으로, 작년(179명)보다 다소 줄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부회장 승진자가 아직 1명도 없다.

◇ 내년도 비상 상황…"허리띠 졸라매야"

삼성전자는 이번주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 조직개편을 순차적으로 한 뒤 이달 중순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사업계획을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회의는 매년 6월과 12월 열리는데 통상 12월 회의는 연말 인사 이후 새 경영진과 임원 뿐 아니라 해외 법인장까지 모두 귀국해 참석했다.

한동안 코로나로 해외 법인장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화상 회의로 진행했으나 올해는 대면 회의로 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TV·가전 등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 경험) 부문과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은 별도 회의를 열고 내년 매출과 이익 목표 등을 수립할 예정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주력인 반도체 시장이 내년에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계획했던 투자를 이어가며 시장 상황에 대처하는 방안 등에 대해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를 역점 미래사업으로 삼는 SK는 넷제로(탄소중립) 관련 사업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친환경 사업 분야를 담당해 온 이들을 이번 인사에서 중용하고, 넷제로 관련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쪽으로 주요 관계사 조직을 개편한 데서 방향성이 드러난다.

최태원 회장의 화두인 '파이낸셜 스토리'가 실행 단계로 본격 진입하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위기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신사업 분야 경쟁력 확보에 주력할 전망이다.

전동화 전환과 자율주행,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등 분야에서 미래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는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사업 분야를 총괄할 '글로벌 전략 오피스'를 콘트롤타워로 신설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LG그룹은 지난 한달간 계열사별 사업보고회를 열어 올해 경영 성과를 검토하고 내년 사업계획을 논의한 만큼 이를 토대로 내년 사업을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주력 사업인 배터리와 전장에 투자를 확대하는 등 미래 설계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 분야마다 환경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비상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는 이어 나간다는 입장"이라며 "다만 미래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경비 절감 등 경영 효율화에도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이미 자체적으로 경비 절감 지침을 내린 상태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내년은 올해보다 경영 환경이 더 안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계획했던 투자는 계속 이어가야겠지만 다른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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