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주민들의 서울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을 둘러싼 정부와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의 대립이 첨예해지고 있다. 주민들은 ‘안전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정부나 시공사는 “문제 없다”고 맞서면서, 대립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추진위 및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해 행정조사를 실시한다고 통보함에 따라, 대립은 격화되는 흐름이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추진위 및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해 행정조사를 실시한다고 지난달 29일 통보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추진위 및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해 행정조사를 실시한다고 지난달 29일 통보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은마아파트 지하 관통하는 현대건설 계획안 채택했던 국토부, 지역이기주의에 밀려 갈팡질팡

지난 2018년 12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GTX-C 노선(약 74km)은 경기 양주와 수원을 잇는 철도로,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국토부가 선택한 현대건설측의 노선은 삼성역~양재역 구간에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하를 관통한다.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시공사(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의 GTX-C 노선 계획안이 1979년 지어져 노후한 은마아파트 지하 40~50m를 관통할 경우, 안전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주민들은 ‘주거지역 통과 최소화’ 원칙을 위배했다며, 지난 6월엔 GTX-C 노선 은마아파트 관통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주민들의 이런 항의가 지속되자, 국토부는 결국 현대건설 측에 기존 노선을 우회하는 새 노선안을 검토해 제출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은마아파트 주민들에게 GTX-C 공법의 안전성을 설득하는 등의 노력 없이, 시공사(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 측에 우회 노선을 검토하라고 지시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목소리가 큰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에 무릎을 꿇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대건설과 국토부, “TBM 공법을 사용, GTX-C가 은마를 관통해도 안전 문제 없어”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우려와 달리 안전과 관련해서 GTX-C 공법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부와 시공사,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터널 공사 공법은 크게 '발파 공법'과 'TBM 공법'으로 나뉘는데, 발파는 바위나 대상물 속에 폭약을 넣어 폭파시키는 공법인 반면, TBM은 기계식 굴착으로 바위를 잘게 부수면서 나아가는 공법이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컨소시엄 관계자는 "발파작업 시 소음, 진동, 무너짐 우려가 있지만 은마 구간은 60m 아래인 데다, 지하 암반 상태도 양호하고 TBM 공법으로 진행할 거라 문제 없다"고 밝혔다.

업계의 전문가는 "지하 주차장을 지하 7층까지 늘려도, 한 층당 3m라고 잡으면 약 20m 수준이라 GTX 터널과 거리가 멀다"며 "터널을 굴착할 때 지반에 영향을 주는 반경은 철도 단면 직경(통상 9m)의 4배 정도로 보는데, 그렇게 쳐도 공학적으로 여유 공간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민간사업자인 현대건설,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수익성 떨어지는 우회 노선안 검토

국토부의 요청과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반대에 봉착한 현대건설은 지난 8월 31일 은마아파트 대신 매봉산을 통과하는 우회 노선안을 국토부에 제출했다. 당시 건설업계에서는 ‘강단없는 정부 대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됐고, 일각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우회한다고 해도 어차피 다른 아파트 단지나 병원 등 대형 시설을 지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거기서 항의가 나오면 또 변경안을 검토하라고 할 것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GTX-C노선은 민간사업자가 시설을 건설한 뒤 이를 국가에 기부채납하고 40년 동안 운영비를 통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수익형민자사업(BTO)이다. 즉, 국가가 사업자와 주민 간의 적극적인 중재를 해야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국토부는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밀려, 당초 현대건설이 계획안 노선 대신 효율성이 떨어지는 우회 노선을 검토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현대건설측에 우회 노선을 검토하라고 요청하기 이전에, 은마아파트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먼저 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은마아파트 요구 수용할 경우, 막대한 추가 공사비용 등 불가피...우회 지역 반발은 또 다른 과제

만약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집단행동에 내년 2분기 착공 계획이 미뤄지게 되면, 금융비용 등 막대한 추가비용이 들게 된다. 이 비용은 향후 GTX-C 노선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몫이 된다. 더욱이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요구대로 노선을 변경할 경우, 대규모 추가 공사비는 불가피해진다.

현대건설 측은 지난 11월 17일, 검토 끝에 최종적으로 우회노선을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입장문을 밝혔다. 현대건설은 입장문을 통해 “은마 추진위, 국토교통부와 3자 면담을 통해 추가 우회안을 협의해 왔으나,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의 집단적인 행보에 더 이상의 협의는 어렵다고 판단, 추가 우회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라고 했다.

현대건설이 최종적으로 노선을 변경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자,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자택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대건설이 속한 현대차그룹 총수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이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정 회장이 사는 동네 주민들은 소음과 사생활 침해로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앞 골목길에서 GTX-C 노선 관련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앞 골목길에서 GTX-C 노선 관련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우왕좌왕하던 국토부, 뒤늦게 ‘원안 고수’ 선언

현대건설과 은마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국토부는 최근 은마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뒤늦은’ 설득작업에 나섰다. 지난달 23일 은마아파트를 찾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은마아파트 구간은 발파방식이 아닌 첨단 기술력이 총동원되는 TBM 공법으로 계획돼 있다"며 "단순히 지하를 통과한다는 사실만으로 위험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원 장관이 "GTX-C 관련 모든 안전 문제에 대해 국토부가 책임을 지겠다"고 까지 했지만,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막무가내다.

이에 원 장관은 "수도권 교통난 해소를 위한 국가사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확산시키며 방해하고 선동하는 행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행정조사권을 비롯해 국토부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대건설측이 “우회안이 없다”고 못박음에 따라 국토부도 ‘원안 고수’입장을 내비치면서, 국토부는 서울시와 함께 추진위를 타깃으로 한 합동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다가오는 7일부터 16일까지 강남구청, 외부전문가(변호사, 회계사), 한국부동산원 등과 합동점검반을 구성, 추진위와 입주자대표회의 운영실태를 집중 점검한다. 정의선 회장 자택 앞에서 반대 시위를 주도하는 추진위의 행동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국토부, 은마아파트 최정희 재건축추진위원장의 불법성 조사 통해 압박 시작

이에 대한 추진위 측의 입장도 단호하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 23일 은마아파트 주민들과 대화를 위해 마련한 간담회 자리에 추진위원장 등이 초대를 받고도 불참했고, 최근에는 현대건설이 GTX-C 노선을 빌미로 은마아파트 재건축 시공권을 확보하려 했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의 우회를 요구하는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주민들을 향해 ‘근거 없는 주장으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면 사법 조치를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의 우회를 요구하는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주민들을 향해 ‘근거 없는 주장으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면 사법 조치를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국토부는 최정희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장의 행적을 문제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앞 시위를 주도하고, 은마아파트 주민들에게 허위·과장 정보를 지속해서 유포해 혼란을 가중한다고 보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최 위원장이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열린 간담회에서 원희룡 장관은 "한 세대의 1만분의 1밖에 안 되는 지분을 가진 분이 앞장서 국책사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 공금을 동원한 불법적 행동을 하는 데 대해 행정조사권을 비롯해 국토부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최 위원장은 은마아파트 소유 지분이 한 가구의 1만분의1에 불과하다. 2020년 시아버지 소유 30평(전용 76.79㎡) 아파트에 배우자와 함께 지분 1만분의1씩을 증여받았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현재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에서는 해당 단지에서 3년 내 1년 이상 거주자는 추진위 임원이 될 수 있는데, 시아버지가 이 아파트를 35년 동안 소유했고, 우리 부부도 8년 동안 거주했다”며 “주민들이 이런 사정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나를 위원장에 뽑아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토부는 또 추진위가 GTX관련 시위에 주민들이 낸 장기수선충당금을 유용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아파트의 주요 시설에 대한 교체, 보수 등을 위해 계획에 따라 적립하는 비용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별도로 조사를 진행 중인데, 141억원 수준이던 은마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이 최근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이번 행정조사 후 위법사항이 적발된 경우 수사의뢰, 시정명령, 환수조치 등 관계법령에 따라 엄중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은마아파트 추진위와 정부의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GTX-C노선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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