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도울 것이란 생각은 순진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으로부터 나왔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지난 2017년 이전 수준으로 대북 제재 공조를 복원하는 길은 미중 패권 경쟁 격화로 더욱 요원해진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햄리 소장은 5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미들버그에서 최종현학술원이 개최한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rans-Pacific Dialogue) 포럼에 참석해 "중국도 북한의 비핵화를 원하지만, 북한 정권이 붕괴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는 아니다"라며 "중국이 정말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순진했다"고 했다.

햄리 소장은 대북 전략을 세울 때 중국의 비협조를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확장억지를 재확인하는 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중국에 '너 때문에 확장억지를 재확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햄리 소장은 미국의 확장억지에 대한 회의론이 한국 내에서 급증하는 현상은 정말 우려할 만한 일이라면서 확장억지의 신뢰성을 재확인하는 게 주요 과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이 한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미중 간 양자택일로 몰아가는 것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했다. 햄리 소장은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미국과 함께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중국에 대항할 수는 없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엄청난 실책"이라고 했다.

"아시아에서는 무역정책이 외교정책"이라고 말한 햄리 소장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도 비판했다. 그는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그런 것을 보호주의라고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이 정부 성향과는 별개로 미중 경쟁 가운데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란 진단은 수차례 나온 바 있다. 마커스 갈로스카스 전 미 국가정보국장(DNI)실 북한담당관은 지난해 3월 미 조지타운대학 주최로 열린 화상 토론에서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더 많이 협력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2017년과 같은 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중국과 상호 이해관계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중국이 북한 정권을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제재나 압박으로 북한을 위협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보니 글레이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미중 간 대북 제재 공조는 2018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며 "중국의 제재 공조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갈로스카스 전 북한담당관은 지난 7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서도 "베이징(중국)에 아무리 잘하고 친절해봤자 북한에 비핵화 압박을 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중국과 협업하는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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