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디어연대 제공

우리 사회는 질적 성숙을 위해 높은 수준의 사회적 소통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디어의 공정성 결여는 사회적 소통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나아가 미디어의 공정성 갈등은 미디어 영역을 넘어 사회체제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여 민주주의적 과정을 원활하게 하는 공론장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미디어 공정성을 저해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전문법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난 5월 2일자 칼럼에서 미디어 공정성 관련 분쟁을 총괄하는 독자적인 전문법원, 가칭 ‘미디어공정재판소(MFC: Media Fairness Court)’를 제안한 바 있다. 이제 그 제안을 국회 입법을 통해 법원 체계를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미디어연대가 지난 15일 프레스센터에서 “공정성 제고를 위한 ‘미디어공정재판소’ 설립 제안”을 주제로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미디어공정재판소 설립을 위한 정책포럼에 참여한 법학자, 법조인, 철학자, 언론학자, 언론인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했다. 미디어 공정성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디어공정재판소가 설립되면 미디어 공정성 분쟁에 대해 법 원리, 저널리즘 원칙, 철학적 논리가 사법적 재판기능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미디어 공정성 수준을 높게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사실과 가치의 영역을 구분하면 공정성 논의가 선명하게 될 것

‘미디어는 사사롭지 않고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는 미디어 공정성의 정의는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 미국 순방외교 중 발생한 ‘MBC 자막조작 보도’, MBC <PD수첩>의 ‘논문저자 김건희’ 편의 ‘영상재연 자막 미고지 사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지속적인 불공정 보도 사례, 데스킹 과정에서 특정 정파를 옹호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KBS판 검언유착 사건’ 등 미디어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일반적으로 공정성은 방송내용이 정확하고 다양한 관점들을 균형감 있게 보도할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사실성(factuality)ㆍ불편부당성(impartiality)ㆍ균형성(balance)을 종합적으로 적용하여 구현된다고 보아왔다. 그런데 신중식 강원대 명예교수는 공정성의 하위개념 중에서 “참과 거짓으로 구별되는 ‘사실’과 그렇지 않는 ‘의견(가치)’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보고, “공정성은 가치(의견)의 영역이기 때문에 공정성을 ‘불편부당성(균형성, 중립성 포함)’으로 제한하여 사용하면 미디어 공정성과 관련된 논의가 보다 선명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완 교수도 “공정성은 일방적인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러한 보도에 대해서는 반대되는 내용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보고, “사실성은 공정성 개념에 포함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흔히 가짜뉴스(fake news)로 불리는 허위보도는 공정성과 무관한 사실의 영역이다. 따라서 사실은 참과 거짓으로 구분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거짓인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지만, 고영주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뉴스가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추어 필자는 사실에 위배되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강제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언론의 신뢰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미디어공정재판소, 축적된 지식은 공정성을 체계적으로 제고

미디어공정재판소를 설립하려는 목적은 현재 운영 중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일반법원이 미디어 관련 분쟁을 해결하는데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디어 전문법원을 통해 공정성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자는 구상이다. 필자는 법학회ㆍ법조계, 철학회, 언론인ㆍ언론학회 등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공정성 심의 시 법 원리, 저널리즘 원칙, 철학적 논리 등을 통합적으로 조망하여 미디어 분쟁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결하면서 축적된 지식은 미디어 공정성을 체계적으로 제고하는 기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디어공정재판소 설립에 대한 법적 검토” 발제문에서 미디어공정재판소의 실현 가능성을 법적인 관점에서 검토했다. 이교수는 “현재의 방송심의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직 구성방식은 기형적인 비민주적인 방식이어서 민주적 정당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분쟁조정위원회, 명예훼손분쟁조정부,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합 혹은 조정하여 준사법기관의 독립성을 갖춘 언론분쟁기구를 구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문재완 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디어공정재판소를 법원으로 상정한다면 법원은 신속한 권리구제가 어렵고, 자칫 잘못하면 공정성 판단에 관한 행정권 확대를 전제로 하게 되어 언론의 자유를 더욱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제기했다. 또한 문교수는 “미디어공정재판소가 법원이 아닌 행정기관이라고 하더라도 구성 방식과 심사자의 중립성 담보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다”고 주장했다.

미디어 공정성 저해 시스템 개선이 언론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길

이번 정책포럼에서 이기남 원암문화재단 이사장은 “미디어 공정성 문제를 국가기관이 해결하도록 의존하지 말고, 시민단체가 스스로가 공정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대해 문재완 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디어공정재판소를 ‘시민법정’ 형식으로 운영하여 배심제처럼 일반 시민이 특정 보도의 공정성을 판단하도록 하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장 타당하다”고 보았다.

미디어연대는 공정성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법기관이나 준사법기관 등의 특정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만, 공정성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기구의 형식은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정책포럼에서 많은 참여자들이 공감한 ‘시민법정’ 방식은 미디어연대 차원에서 추진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미디어 공정성을 분쟁을 해결한다는 것은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의 수준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법학회ㆍ법조계, 철학회, 언론학회ㆍ언론계 전문가들이 함께 정책포럼을 통해 협의해보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공정성을 엄정하게 검증하고 그 원칙을 바로 세울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필자는 이러한 통섭적인 논의로 지혜를 모아 설립된 미디어 분쟁 전문법원 ‘미디어공정재판소’가 공정성을 저해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여 언론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미디어연대 상임대표, 전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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