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해 가장 논란인 '북미 최종 조립' 규정을 그대로 둔채 하위 규정 시행 시간표만 제시해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의 근본적인 해소는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미 재무부는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연말까지 하위 규정에 대한 '예상되는 방향(anticipated direction)'을 발표했다. 하위 규정 시행은 내년 3월까지 연기하겠다고 하는 IRA 관련 시간표를 공개한 것으로 '북미 최종 조립' 규정 관련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재무부는 전기차 세액공제 문제를 받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핵심 광물 및 배터리 부품 요건과 소비자와 제조사를 위한 청정 자동차에 대한 추가 안내 등 법에 따라 세부 기준을 만들도록 한 규정만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 정부와의 물밑 협의에서 법에 명시된 '북미 최종 조립' 규정 변경은 어렵다는 점을 전달해왔다. 특히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지난 10월 "한국과 유럽 측의 우려에 대해 많이 들었고 우리는 분명히 이를 고려할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법이 써진 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달 2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미국 정부의 일반적 입장과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옐런 장관의 발언의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IRA의 핵심 부분은 전기차 보조금 지급대상을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로 제한한 규정이다. 하위 규정이 완화돼도 이 규정이 변경되지 않으면 한국 기업의 전기차는 당분간 최대 7천500달러(약 1천만원)에 달하는 세액공제 혜택을 못 받게 된다. 현대차의 아이오닉 5, 기아차의 EV6 등은 보조금을 받지 못해 경쟁력 하락에 따른 판매 차질 문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미국 재무부의 하위 규정 발표 시한(연말)을 앞두고 '북미 최종 조립' 규정의 시행을 3년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다. 현대차의 조지아 전기차 공장이 완공되는 시점(2024년 하반기~2025년)까지 '시간 벌기'를 시도한 셈이다.

재무부가 하위 규정 시행을 내년 3월까지 연기한 것을 두고 제너럴모터스(GM)나 테슬라 등 미국 기업이 더 혜택을 보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부터는 자동차 제조사별로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한도(20만대)가 없어지는데 쉐보레 볼트, GMC 허머 EV, 모델3 등 테슬라 전기차 등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한도를 채운 상태다. 이들 전기차들은 북미 최종 조립 규정을 충족하면서도 배터리 등과 관련한 하위 규정에는 해당하지 않는 전기차다. 여기서 세액공제 한도 없이 혜택을 더 보게 된다는 것이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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