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규명의 방법과 절차가 잘못되었다 [유태선 시민기자]
진상 규명의 방법과 절차가 잘못되었다 [유태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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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988년 제5공 비리 청문회가 피해자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밝혀 내려 하는 한국적 관행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수없이 많은 피해자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들의 국회 증언에 반론을 제기했던 정부 관계자들은 독재 정권의 하수인으로 몰리는 등 여론의 몰매를 맞으며 갖은 수모를 당했다.

당시 연희동 자택에서 칩거하다가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의 발언에 분노한 국회의원 노무현은 단상을 향하여 자신의 명패를 집어 던졌다. 잠시 후 노무현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청문회 진행이 어렵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신상발언을 통하여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깊이 사과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8년 3월 1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언론인 손석희 체제 하의 JTBC의 김지아 기자는 자사의 한 방송에서 '대부분의 미투 운동에 객관적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시청자들의 비판에 대하여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입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가해자도 그 일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어요"라는 법리에는 어긋나지만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멘트로 반박한다.

강산이 세 차례 변할 정도의 긴 세월이 흐르면서 소위 시대정신 자체가 변해버린 것일까? 미투 운동의 이름 하에 행하여진 일부 여성들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하여 적지 않은 남성들의 명예가 훼손되었지만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사과했던 노무현과 달리 JTBC 측은 자사가 널리 홍보했던 미투 운동의 폐해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했던 적이 없다.

* 미투 운동이란 여성들이 소셜미디어에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자신이 겪었던 직장 내 성폭행 및 성추행 사례를 적어 공유하는 사회운동으로 2017년 10월 미국의 여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을 트위터를 통하여 폭로했던 것을 계기로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 국내에서는 현직 검사 서지현이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자신이 직장 상사에게 당했던 성추행에 대하여 검찰청 내 웹사이트를 통하여 폭로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던 것을 시작으로 미투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기반하여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되어 경력에 큰 상처를 입게 되지만 훗날 진실이 밝혀진다면 뒤늦게나마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피해자가 사망해서 유가족들만 남아있는 경우이다. 피해자의 진술을 들어볼 수 없는 상황에서 경찰 등 수사기관의 현장 조사가 사실상 진상 규명의 유일한 방법이 된다. 가해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진술에만 의존해서는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의 경우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파악되고 난 후에야 해당 사건의 가해자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가해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있다. 정부는 사건 발생 다음날인 10월 30일 사망자 유가족들에게 장례비 최대 1,500만원과 위로금 2,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국회도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자체 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정부 및 국회의 진상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조사를 요구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의 사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경찰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우리는 돈이 아니라 세월호의 진실을 원한다"라고 하면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할 때마다 검찰, 특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등이 모두 9차례에 걸쳐 재조사를 했었다.

해당 사건을 재조사할 때마다 유가족 보상금의 액수가 올라갔을 뿐 '세월호 탑승 단원고 학생 325명 전원구조'라는 오보의 책임 소재, 세월호 선주 유병언의 의문사 등 세월호 관련 각종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이 끝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유가족들의 감정을 우선시하면서 진상 규명의 절차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에서 세월호 선주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되자 유가족들의 분노가 옮겨가는 방향에 따라 세월호 사건 재조사가 진행되면서 선박 침몰 사고 자체가 아닌 책임소재 규명 및 처벌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이 문제였다.

객관적 사실 관계의 조사를 위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의 영향력이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 만약 피해자 또는 유가족이 진상 규명에 참여하고 싶다면 그들 자신이 직접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정부 또는 국회에 제출하거나 자체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이를 이해관계 없는 제3자에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에 있어서 경찰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유가족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소리 높여 외치는 대신 직접 자료를 수집하여 제출하거나 자신들의 비용으로 직접 사실관계를 조사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여 검증 받으면 된다.

세월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의 조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유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재조사를 여러 차례 실시하더라도 동일한 증거에 기반한 사실 관계 확인의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혈세만 낭비하게 된다.

제5공 비리 청문회로부터 시작되었던 한국적 관행 - 피해자 및 유가족의 증언과 눈물이 사건의 진상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 이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도 적용된다면 향후 각종 인명사고에 대한 정부의 진상 조사 절차는 향후 유사한 사고의 재발 방지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달성하지 못 한 채 피해자 및 유가족 보상금 산정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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