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미디어는 정보를 제공하고 개인을 연결하여 개방된 세상을 만든다. 멀리 본다는 의미인 텔레비전은 다가가기 어려운 먼 곳의 정보를 가져와서 제공함으로써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세상을 연결한다. 인터넷 시대는 이러한 연결이 더욱 심화되면서 더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정보, 오락, 교육으로 구분되는 TV 프로그램의 전통적 분류를 보면 미디어는 종합적인 정보원으로서 오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근원임을 확인한다. 미디어의 영역이 확장되고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면서 소비자인 개인은 콘텐츠를 자유롭게 취사 선택함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는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번영의 시대의 한 편에는 가짜뉴스 논란이 보여주는 정보무질서 상황이 야기한 혼돈의 상황이 있다. 사실 확인 되지 아니한 정보들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유만으로 널리 유통됨으로써 진실을 호도하고 분쟁을 야기하며 피해를 입힌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게 됨으로써 정보 편향의 상황에 처함은 어디서나 발견되는 미디어 환경이 되었다. 소리가 잘 되울리도록 만든 방에 들어가 있으면 자기 목소리가 잘 들리는 현상에 비유한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는 정보이용자가 외부와 차단된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같은 정보만을 되풀이하여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자기 신념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가르킨다.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해서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는 환경은 조금만 수고하면 사실을 확인하고 잘못을 교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기존의 가치 체계를 고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찾아서 기존의 세계관을 고집한다. 정보 범람의 시대에 의도적으로 기존 인식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타인과의 교류를 어렵게 하고 같은 성향의 사람들만이 모여서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21세기 초 상업의 세계화 현상으로 세상은 평평해졌고, 평평해진 세상에서 미디어 기술 발전은 개인간에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완전히 개방된 사회가 되리라고 전망되었다. 그러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대표적인 SNS에서 확인되고 있는 바와 같이, 사람들은 선호하는 정보를 찾아서 취향으로 하나가 되면서 그들만이 모임이 되어서 부족화하고 적대적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은 닫힌 사회가 되고 사람들은 고립되면서 위험해진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디어 세상에서의 분열과 고립 현상은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민주정의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20세기말의 정치 상황을 역사의 종말로 주장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후에 21세기의 정체성 정치의 대두로 인해서 분열된 사회의 도래를 이야기하였다. 마누엘 카스텔은 세계화와 정보화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사회에서 국가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상실하였고 각종 사회운동을 통한 집단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정체성 정치의 시대를 맞이하여 국민국가 이후의 시대로 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정체성 정치의 시대는 국민국가 체제가 국민정체성으로는 담을 수 없는 다양성의 포화 현상을 말해준다. 연결된 미디어 세상은 정체성의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러한 경향을 가능하게 하고 심화하고 있다. 오늘의 민주정의 위기의 배경에 미디어 현실이 있다.

미디어의 발전이 세상을 평평하게 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고립된 지형을 만들어 오히려 바깥 세계로의 문을 닫고 있다.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디지털디바이드가 논의되는 것 이상으로 기술 활용으로 인하여 제공된 문화적 풍요가 사람들을 고립되게 한다. 대중사회의 미디어화의 진전으로 인한 취향 지향적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적 풍요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반향실 효과가 말해주듯이 미디어로 인하여 닫힌 사회는 사람들이 이를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기에 개선의 여지가 적다. 우리를 고립으로 몰아가는 원인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스스로를 만들어진 공동체인 상상속의 부족의 구성원으로 삼고 외부와 차단된 게토화된 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스스로를 자기 내면에 가두는 미디어가 만든 세계는 거대한 감옥이다.

벤담이 말한 소수의 감시자가 다수의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감옥인 파놉티콘은 오늘날의 닫힌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디어가 만든 오늘의 파놉티콘이 다른 점은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면서 동시에 수용자가 되는 모두를 위한 모두에 대한 거대한 감옥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연결된 사회가 가져온 닫힌 사회의 현실을 확인한다.

일찍이 열린 사회를 주장했던 칼 포퍼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텔레비전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면서 미디어가 변화시키는 사회에 대해서 주의를 요구하였다.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에서의 미디어의 영향과 사회 변화가 오늘날의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의 하나로서 주목받아야 한다. 열린 사회를 지향했던 미디어 기술이 분열과 고립으로 가게 하는 미디어 현실에서 열린 사회를 생각해 보자.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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