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는 사람들만 치료받으란 소리' 주장...의료보험 붕괴되면 '돈 있는 사람'도 치료 받지 못해
보험료 12% 급증할 때 건보 보장률은 고작 2.6% 상승...의료비 절감 효과도 없어
건강보험 재정 고갈은 더 빨라지는데 보험료 더 올릴건가?...정치권의 의료 포퓰리즘 중단해야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공공정책 영역에서 반듯이 경계해야 할 부분은 ‘포퓰리즘과 선동’이다. 포퓰리즘은 별다른 비용 부담 없이 혜택을 사실상 거저 주겠다는 헛된 약속이다. 선동은 ‘개인을 비이성적으로 부추겨’ 특정한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행위이다. 포퓰리즘과 연결지으면, ‘개인의 국가에 대한 무상권리(無償權利) 주장’에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부추김이다. 국가에 무한책임을 부과하는 것이기에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에 이르게 된다.

O ‘문재인 케어’ 폐기는 좌파의 의제 선점을 위한 자가발전

지금까지 ‘문재인 케어’ 폐기는 공식적으로 거론된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2월 13일 국무회의 발언의 요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합니다. 지난 5년 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 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굳이 요약하자면 ‘의료보험을 합리적으로 운영해 보험재정을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특별히 문제 될 부분이 없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의 억측과 섣부른 반응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더불당 윤 모(某)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인 ‘문재인 케어’ 폐기 방침을 공식화한 것“으로, “돈 있는 사람들만 치료받으라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반대 질문을 던진다. 더불당은 갈라치기식 구태의연한 선동에서 언제 벗어날 것인가? 의료보험이 붕괴되면 ‘돈 있는 사람’도 치료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의료보험의 재정 건전성이 중요한 것이다. 의료보험은 ‘공보험’이지만 결코 무상이 아니다.

모의원은 계속해서, “문재인 케어는 MRI(자기공명영상) 검사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서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으로 “국민들의 의료비를 국가가 대주는 게 왜 혈세 낭비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국가가 국민들의 의료비를 대 주는게 혈세 낭비가 아니라면, 국가는 응당 무상의료를 시행해야 한다. 무상의료를 시행해 온 국가의 실패를 그렇게 목도하고도 현실인식이 저 정도 밖에 안 된다.

O ‘문재인 케어’는 거저가 아니다

민주당의 방어 논리는 이렇다. ‘문재인 케어’는 환자가 100% 부담하던 3800여개 진료 항목에 단계적으로 건보를 적용하는 정책이다. 이에 힘입어 2017년 62.7%였던 건보 보장률(총 진료비 대비 건보 부담 비율)이 2020년 65.3%로 높아졌다. 특히 의료비 부담이 큰 중증질환과 아동·노인·저소득층에 대한 보장성이 상대적으로 강화됐다. 보장성 강화(보장률 상승)는 곧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낮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면 ‘문재인 케어’는 거저 얻어졌는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문재인 케어에 지난 5년간 20조원이 투입됐다. 그 댓가로 건강보험 보장률이 2.6% 상승했지만, 지난 5년간 보험료는 12% 올랐다. 보험료가 12% 올랐다는 것은 보험료 폭탄을 국민에게 안겼다는 것이 된다. 민주당은 문재인 케어로 ‘9조원의 민간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민간 의료비가 절감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그만큼 공공부문이 ‘추가로’ 부담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민이 부담한 것이다. 이런 것을 쏙 빼고 보장률이 올랐다고 얘기하는 것은 극적으로 표현하면 ‘정책사기’인 것이다.

O 2019년 복지부 ‘건강보험 종합계획’에는 왜 시비 걸지 않는가?

복지부는 2019년 4월 10일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내놓았다. 배경은 ‘문재인 케어’ 시행 후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항목이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재정 고갈이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종합계획’은 ‘보장성 강화에서 지속가능성 중시’로의 방향 선회를 시사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7년까지 7년 연속 3조원 안팎의 흑자를 낸 건강보험 재정이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2018년에 177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시 예산정책처는 2027년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 적립금이 4조3000억원까지 떨어져 고갈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9년 종합계획’에는 ‘노인 외래진료비 정액제’ 시작 연령을 현재의 65세에서 70세로 높이고 연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에도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 등 재정안정을 위한 새로운 조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다수 담겼다.

‘종합계획’의 기본 취지는 국민들의 진료비 부담을 낮추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건강보험의 정책 방향을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고 재정안정 방안을 고려하는 쪽으로 틀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지금처럼 ‘부자만 치료를 받으라는 얘기냐’고 항의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을 우리는 위선(僞善)이라고 한다. 민주당의 행태는 기회주의적이다.

O 민주당과 한편이 된 좌파 언론

한겨레신문은 12월 14일 자 사설에서 “문재인 케어 폐기, 목욕물 버리다 아기 버리는 일 없어야한다”며 문재인 케어를 옹호하고 있다. 옹호의 논거는 ‘지출 효율화’만 강조하다가는 가뜩이나 취약한 건보 보장성을 더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아져 우려된다는 것이다. ‘지출 조정’만 내세우지 말라는 것은, ‘건보 국고지원’을 늘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건보의 국고지원 재원은 어디에서 오는 가? 결국은 국민의 세금이다. 세금에 의존하기 전에, 건보 운영에서 낭비 요소는 없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도 문재인케어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당위적 차원’에서 봤을 때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당위적 차원에서 문제가 있으면, 그것은 정책의 범주에도 들어오지 못한다.

초음파와 MRI는 문재인 케어 적용 첫 해인 2018년 1,800억원에서 2021년 1조8,000억원으로 3년 새 10배나 급증했다. 이것이 정상인가? 상급별실 급여화, 상급병실 손실보상 등 지출항목에는 문제가 있다. ‘중증 약제비’의 보장성 강화도 당위론적으로 볼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많게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희귀병 치료제를 건강보험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면, 4조원이 넘는 지출이 발병과 사망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효과가 있다/없다가 아닌 얼마만 한 효과가 있나를 따져야 정책 평가인 것이다.

O 건보재정 효율화와 지속가능성에 도모해야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성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며 오히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당위적 주장이다. 보험료를 올리면 된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이 여의치 못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의료재정의 적정화 그리고 정상화가 필요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건강보험의 재정 효율화와 지속 가능성 강화는 의료보장성 제고 만큼이나 중요한 정책목표가 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제도를 사용하는 ‘일부’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1년에 365회 이상 외래 진료를 받는 과다 의료 이용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은 통상 물리치료나 통증치료를 받는 활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 100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는 비용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 100만원을 훔치면 최가 되지만 1만원을 훔치면 죄가 안된다고 할 것인가?

의학적 필요가 불명확한 검사 시행 등 과잉 의료 이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급여 기준을 명확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초음파나 MRI 등에 대한 진료에 대해 필수 항목을 설정하고, 이 항목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건강보험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추계’ 전망을 보면 내년(2023) 건강보험 수지는 약 1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2028년엔 약 8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식으로 적자가 쌓이면 지난해까지 20조2000억원이었던 누적적립금도 감소세로 돌아서 2026년에는 53.5% 줄어든 9조4000억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9조4000억원은 한 달치의 요양급여비에 지나지 않는다. 고령화와 이에 따른 만성질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래준비가 정쟁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부자만 치료받으란 말이냐’는 식의 포퓰리즘에 기댄 질 낮은 선동으로 의료보험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의료보험 준비금 고갈 방지를 위해 국고보조 증액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전에 건보재정의 효율화와 정상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상식을 외면하면서 ‘협치 운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곱씹어야 한다. 더불당 모의원의 행태에 깊이 실망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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