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새벽에 2023년 예산과 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선진화법에 정한 시한을 넘긴 것도 문제이지만, 내용면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깊이 성찰했다기보다는 통과부터 시켜보자는 조바심에서 합의한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율 개정이다. 모든 과세구간에서 1%씩 인하한 것이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법인세를 단일세율로 과세한다. 왜냐하면 법인(法人)은 자연인이 아니고, 일정한 목적으로 결합한 사람 또는 재산에 대하여 법률상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은 존재다. 법인은 다양한 주주로 구성되며 부자도 있지만, 가난한 소액주주도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업은 주주뿐만 아니라, 고용자와 피고용자 등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층적 세율구조를 두고 있다. 그 결과 과세표준이 작으면 낮은 세율을, 과세표준이 큰 대기업은 높은 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이는 ‘대기업(법인)은 부자, 중소기업은 가난한자’라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대기업이 바로 부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세수확보와 부자 증세를 위해 법인세에 25% 최고세율 구간을 추가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 최고세율로 인해 이웃국가들에 비해 우리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으니, 이 구간을 없애서 법인세 부담을 완화하고 과세체계를 단순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에 막혀 모든 법인세 구간의 세율을 1%씩 낮추는 희한한 합의를 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포퓰리즘의 발현으로 보인다. 

  최고세율은 높지만 여러 과세구간을 가진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반드시 높다고 말할 수 없다. 중소기업 등 하위구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래서 국제 기준이나 경쟁국에 비해 높은 최고세율을 낮추는 것은 우리기업의 부담을 덜고 세율체계를 단순화한다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세수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기준에 비해 낮은 구간의 세율까지 낮춰준 것은 타당하지 않다. 모든 기업에게 1%씩 낮춰주는 것은 생색내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위구간의 세율을 인하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호기로 돈을 나눠준 것과 진배없다. 
  세금을 깎아줌으로써 재정이 악화되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그러나 한번 내린 세율을 다시 올리려면 거센 조세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실효성 없는 세율인하는 정작 필요할 때는 올리지도 못해 재정을 더욱 망가뜨리게 된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께서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산업의 핵심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여당이 반도체 특위를 구성하고 산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대기업 20%, 중견·중소기업은 25~30%씩 세액 공제 해주자는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야당은 대기업 특혜라는 이유로, 정부는 경쟁국에 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고 추가지원은 세수부족을 이유로 반대했다. 

  결국 대기업만 공제율을 6%에서 8%로 올리고 중견·중소기업은 현행대로 각각8%와 16%를 유지했다. 미국은 반도체 투자의 25%를 세금에서 공제하는 법을 지난 8월에 통과시켰고, ‘반도체 독자개발’을 외치고 있는 중국의 공제율은 100%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사실상 먹여 살리고 있는 상황에서 8% 공제로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반도체 지원이 대기업 특혜라는 야당의 주장은  미국·중국간 반도체 전쟁이나 반도체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하고, 둘째 코로나위기 속에서도 반도체 덕분에 우리경제가 약진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외면하고 있다. 야당의 주장이니 반대를 위한 궁색한 변명이라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도 반대했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첫째 대만이 R&D 투자세액 공제를 25%로 올리려한다는 여당의 주장에 R&D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40%라는 주장을 했고, 8% 합의안이 야당의 10%공제율 보다 낮다는 주장에는 내년에 한시적으로 적용될 투자증가분 세액공제율을 더하면 18%까지 되니 충분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당이 특위까지 구성하고 제출한 반도체법안이 행정부와 사전 조율이 되지 않았다니,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법안을 제출한 것 아닌가. 

  둘째 세수 감소를 이유로 반도체 지원을 늘릴 수 없다는 논리도 그간의 주장과 모순된다. 정부는 법인세율 3%포인트 인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법인세를 인하해야 투자가 살아난다고 했다. 그런 정부가 반도체 투자세액 감면에는 세수부족을 주장하며, 굳이 낮출 필요가 없는 하위구간까지 법인세율을 인하하니 앞뒤가 맞질 않는다.
  이럴 거면 법인세율을 인하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부분은 야당에게 양보하고 반도체라도 제대로 지원했어야 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법인세율의 무차별적 인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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