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와의 신년인터뷰에서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이야기하자 김진표 국회의장이 ”3월 중순까지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위원회에 회부해서라도 선거제를 확정하겠다고 화답하는 등 중대선거구제 문제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에서 유승민 전 의원, 민주당 진영에서는 김동연 경기자사가 즉각 환영 입장을 드러내는 등 정치권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은 2일 공개된 조선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지역 특성에 따라 2, 3,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현재처럼 선거구당 국회의원 1명만 봅는)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며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거론했는데, 지난해 3월 대선을 앞둔 후보 시절에도 각종 토론회에서 이런 생각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의원총회를 총해 장단점을 살피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은 법 개정 시한이 석 달 밖에 남지 않은데다 영호남 현역 의원들이 반대도 심할 것으로 보여 성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거대 양당의 지역 할거주의와 대결정치를 해소하는 다당제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꾸준하게 도입 필요성이 주장돼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발언이 나온 뒤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중대한 착각내지 착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중대선거구제로는 윤석열 정권 국정성공의 가장 큰 조건인 국회 과반수 의석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윤 대통령이 최대 국정 과제로 꼽은 노동, 연금, 교육 3대 개혁은 결국 국회의 입법을 통해 완성될 수 밖에 없는데 중대선거구제는 민주당의 의석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국민의힘 의석은 줄게 돼 과반수의석 확보가 물건너 간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인 작년 6월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보면 이같은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당시 민주당의 기초단체장 후보들은 부산경남은 물론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성향이 가장 강한 대구 경북에서도 대부분 2위를 차지했다. 영남 전체에서 민주당 후보가 2위 밖으로 밀려난 곳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광주와 전남·북 등 호남지역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2위를 하지 못한 지역구가 수십군데에 달했다.

결국 한 선거구당 국회의원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로 내년 총선을 치르게 되면, 영남의 민주당 후보는 거의 대부분 당선되는 반면, 호남에 출마하는 국민의힘 후보는 무소속 후보에 밀려 낙선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6.1 지방선거때 전국 기초의원 선거 30개 선거구에서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실시한 결과 당선자 9명의 분포를 보면,광주 시범지역에서는 민주당 6명, 진보당 2명, 정의당 1명이 당선됐고, 대구 시범지역에서는 국민의힘 7명, 민주당 2명이 당선됐다.

선거구당 4명을 뽑는 대선거구제를 도입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 후보는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현재 정치지형상 정의당이나 기본소득당 같은 반보수 정당이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 역시 여당의 과반수의석 확보는 쉽지않다. 특히 대선거구제 선거에서 한 정당이 여러 명을 공천할 수 있는 복수공천이 허용되면 호남지역에서 국민의힘이 얻을 의석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중대선거구제가 가져올 이같은 문제점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발언의 진위와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부산 출신 한 국회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자신의 발목을 잡아온 민주당의 행태 때문에 주요 국정사안에 대해 다양한 연대가 이루어지는 유럽식 다당제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착각 내지 착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대 선거구제로 인해 국회가 양당구도가 아닌 다당구도로 전환된다고 해도 보수와 자칭 진보 내지 좌파로 양분된 진영대결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석이 줄어들면 윤석열 정권은 개혁은 커녕 예산은 같은 통상적 국정운영도 못하는 식물정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평론가인 홍경의 단국대 겸임교수는 문재인 정권의 위선과 내로남불, 무능과 적폐, 이재명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혐오등으로 국민의힘이라는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민주당 보다 현격히 높은 상황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지난 지방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내년 총선에서도 수도권 승리를 통해 과반수의석 확보 가능성이 높은데 왜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발언이 야당을 겨냥한 계산된 공세가 아니냐며 진정성에 의문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내홍을 겪는 민주당의 분열을 노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에 따른 분열 내지 분당(分黨) 가능성은 국민의힘에서도 유승민 전의원, 이준석 전 대표 등의 이탈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문제점 등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화두를 꺼내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화답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쉽지않아 보인다. 당장 영·호남의 여야 현역 국회의원 중 자신의 공천에 중대한 변수가 될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에 찬성하고 나설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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