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 중인 나경원 전 의원이 18일 오후 참석이 예정됐던 대전시당 신년 인사회 일정 등을 전면 취소하면 잠행 모드에 들어갔다. 전날 "해임은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 생각한다"는 자신의 SNS글에 대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직격' 입장문 이후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그동안 나 전 의원은 친윤계의 불출마 압박 속에도 '1일 1건' 이상의 공개 일정·메시지를 이어오며 사실상의 당권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전날 김 실장의 직격에 일정을 전면 취소한 나 전 의원이 당대표 출마와 관련해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7일 대구 동구 팔공총림 동화사를 방문 후 관계자들에게 합장으로 인사하며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7일 대구 동구 팔공총림 동화사를 방문 후 관계자들에게 합장으로 인사하며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나 전 의원은 친윤계의 집중포화 속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분리하는 전략으로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에 호소해왔다. 그러나 김 실장의 입장문은 사실상 윤심이 그를 내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실장은 전날 입장문에서 "대통령께서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나경원)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직격했는데, 이는 사실상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윤심’과 ‘윤핵관’을 분리했던 나경원,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고 오판

일각에서는 김 실장의 공개 저격에 나 전 의원이 ‘멘붕 상태’에 빠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친윤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냐’는 장제원 의원의 공격에도 끄덕없던 나 전 의원이 김 실장의 저격에 사실상 무릎을 꿇은 것은 그만큼 김 실장의 저격이 충격적이었다는 반증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나 전 의원이 본인은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윤핵관이 대통령에게 본인 험담을 해서 ‘대통령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나 전 의원의 그런 인식에 대해 ‘대단한 착각’이라는 말이 나돌았지만, 나 전 의원은 “대통령이 귀국하면 (당대표 출마) 결심을 하겠다”며 대통령을 직접 설득하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김 실장의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의 뜻이 직접 확인된 만큼’ 나 전 의원으로서는 고립무원에 빠졌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나 전 의원으로서는 결과적으로 ‘반윤’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17일 "나경원 전 의원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17일 "나경원 전 의원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게다가 ‘대통령의 본심은 그게 아닌데, 참모들의 뜻에 따라 자신을 해임했다’는 나 전 의원의 발언은 결국 '대통령이 부족해 참모들의 손에 놀아난다'는 식으로 대통령실이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나 전 의원의 진의와는 상관없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모양새가 되었다는 점이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나경원 부위원장 해임 직후 당 대표 후보군 지지율 요동쳐

이처럼 나 전 의원이 윤 대통령에 대립각을 세운 모양새가 되면서, 나 전 의원에 대한 당심 지지도가 하락세로 전환되고 있다는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과 대립하는 나 전 의원에게 지지자들이 돌아섰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나 전 의원이 ‘불출마 압박’을 견딜 수 있을 것이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뉴시스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나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에서 해임한 13일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 전 의원의 압도적 1위 기세가 꺾였다. 2위였던 윤심 후보 김기현 의원이 1위로 부상하면서, 일부 여론조사에선 오차범위 밖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당 지지층 397명에게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를 물은 결과, 김 의원은 35.5%로 1위를 차지했다. 김 의원은 3주 전 조사 대비 20.3%포인트 급등했고, 심지어 나 전 의원과의 지지도 비교에서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차이를 보였다.

당권 도전을 두고 친윤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은 21.6%로 2위에 머물렀다. 안철수 의원은 19.9%로 3위, 유승민 전 의원은 7.4% 등 순이었다.

국민의힘 지지층 중 정치이념성향을 '보수층'이라고 응답한 233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김 의원이 36.9%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나경원 21.9%, 안철수 18.9%순으로 조사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2%)

김기현 의원의 상승세와 나 전 의원의 하락세를 보여주는 여론조사는 이외에도 더 있다. 여론조사들 간 규모와 기간은 차이가 있지만, 13일 윤 대통령의 나 부위원장 해임 직후 1위와 2위가 바뀐 것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8일 대전 중구 시당 사무실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8일 대전 중구 시당 사무실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핌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 15~16일 이틀 간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의힘 지지층 430명에게 차기 국민의힘 당대표로 적합한 인물을 물은 결과, 김기현 의원이 35%로 1위를 기록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23.3%로 2위, 안철수 의원은 18%로 3위로 나타났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7%포인트, 응답률은 2.8%)

여론조사 전문기관 '에브리씨앤알'이 폴리뉴스와 에브리뉴스 의뢰로 지난 14~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중 국민의힘 지지층 417명을 대상으로 당대표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김 의원이 29.2%를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는 나 전 의원이 23.5%, 안 의원이 22.6% 순이었다. 지난해 12월23~24일 이틀간 진행된 직전 조사에서 13.4%를 보였던 김 의원의 지지율은 무려 두 배 이상인 15.8%포인트 올랐으며, 3위인 안 의원 지지율도 13.8%에서 22.6%로 8.8%포인트 올랐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나경원, 버틸 동력 없어져?...이준석 시절 영입한 신규 당원 40만명의 성향이 최대 변수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를 나 전 의원이 무겁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간 주위의 말보다는 당심에서 선두를 달리는 여론조사만 믿고 있었던 나 전 의원이 더 이상 버틸 동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의 지지도가 계속 하락할 경우, 나 전 의원이 최종적으로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나 전 의원 측은 아직까지 신중한 입장이다.

게다가 ‘실제 전당대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나 전 의원이 잠행 끝에 어떤 선택을 할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상당수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나 전 의원이 2위를 지키고 있지만, 실제 당심은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 시절에 신규 입당한 40만여명의 당원들의 성향과 판단 등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17일 CBS라디오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신규 입당한 당원들의 성향은 무조건 윤석열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 윤핵관들이 잘하고 있다는 성향은 아닐 거다”라며 “‘아마 (투표 결과에) 윤핵관들이 까무러칠 거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반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나 전 의원이 신규 당원들의 선택을 얼마만큼 받느냐에 따라 전당대회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