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21세기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정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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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3.01.21 13:34:54
  • 최종수정 2023.01.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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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전망.(사진=연합뉴스)
2023년 전망.(사진=연합뉴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말해야 하는 이유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정의를 말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통해 정의에 대한 생각은 계속 변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서도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해 이견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것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그것을 정의를 추구한다는 공통분모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왜 그럴까?

정의라는 말 속에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욕구,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올바른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와 자신을 정의롭다고 인정하고 싶은 자기정당화의 욕구가 혼재되어 있다. 나아가 정의를 내세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전략적 태도, 즉 정의를 설득의 수단으로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른 정의에 대한 인식 변화가 확인되기도 하고, 힘있는 자의 정의와 힘없는 자의 정의가 구별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서는 정의에 대한 공감대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의 기초 자체가 쉽게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유교가 지배적 사상체계가 되고, 그 바탕 위에서 국가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유교를 대신하여 민주주의 사상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가치관과의 충돌로 인해 많은 혼란이 있었다. 그러면 1987년 민주화로부터 30년 이상 지났고, 나름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정의는 무엇이며,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이 문제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발전방향을 정립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화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전경.(사진=서울관광재단)
서울 전경.(사진=서울관광재단)

대한민국의 압축성장과 정의의 혼란

대한민국에서 정의의 혼란을 말하려면, 1960~70대를 통한 압축성장의 시대에 겪었던 가치관의 혼란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가치관의 혼란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는 개발독재와 압축성장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개발독재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국가(정책)에 대해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뒤섞인 상황이 가치관의 혼란을 증폭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속한 사회의 변화가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독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충효사상을 앞세워 국민의 인권보다 국가의 발전을 우선시하는 논리, 서구화 및 근대화 과정에서 도입된 자본주의와 사농공상의 신분을 따지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충돌, 그리고 서구적 민주주의의 도입과 독재정권에 의한 왜곡 등이 혼재된 시대상황에서 가치관의 혼란 및 이로 인한 각종 부작용은 불가피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교육의 대중화 및 그 영향력이다. 1960년대 이후 교육의 대중화는 새로운 민주적 정의관념이 국민들 속에 확산되고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정권의 영향력 하에서 교육 내용의 정치적 중립성 및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국민들이 민주주의 사상으로 인한 변화를 수용하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데 교육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교육의 대중화와 더불어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도 크게 확산되었으며, 1970~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중심이 대학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국민들이 생각한 정의는 곧 민주화였으며, 이는 1987년 제9차 개헌을 통한 민주화의 성취를 통해 상당 부분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었으며, 정의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1997년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로 인한 급격한 변화, 수많은 기업들의 도산과 대량실업, 노숙자들의 대규모 발생 등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은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부의 양극화를 초래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무엇이 정의이냐에 대해 보다 날카로운 대립이 뚜렷해졌으며, 부유한 사람들의 정의와 가난한 사람들의 정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때를 계기로 계층 간의 갈등이 더욱 심해지면서 정의관의 분화가 뚜렷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 전경 모습.(사진=서울관광재단)
서울 전경 모습.(사진=서울관광재단)

극단화된 진영 갈등과 정의에 대한 믿음의 약화

그러나 빈부의 양극화로 인한 정의관의 분화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극단적인 진영갈등으로 인한 정의관의 분화, 심지어 정의에 대한 믿음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승만과 김구를 대한민국 보수와 진보의 원조처럼 지칭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이 형성된 것은 민주화 이후, 그것도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정권교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개인으로서 보수와 진보는 있어도, 이들이 하나의 진영으로 결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수십 년 민주화 투쟁의 동지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보수와 진보 진영의 시작이 되었던 것은 최초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 이후, 양대 정당의 자기정체성을 규정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오해와 왜곡이 있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보수와 진보의 본래 의미, 즉 변화와 안정 중에서 안정에 무게를 조금 더 두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하는 보수와 변화에 무게를 조금 더 두면서 빠른 속도의 변화를 선호하는 진보가 오늘날에는 보수=우꼴, 진보=좌빨로 인식되는 예가 적지 않다. 더욱이 이러한 보수와 진보가 지역과 연계되어 보수는 영남, 진보는 호남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로 인하여 진영갈등이 과거의 망국적 지역갈등을 재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 자체를 외면하면서 자기 논리에만 빠져 있는 각 진영의 강성 지지층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과거 영호남 갈등에 못지않다. 보수와 진보의 양 진영에서 자기만의 정의를 주장하고, 진영을 뛰어넘는 진정한 정의에 대한 공감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영갈등이 심화되면 될수록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른바 남남갈등으로 인해 북한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접어 두더라도, 글로벌 무한경쟁의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일출 전경. 2022.01.28.(사진 = 서울관광재단,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일출 전경. 2022.01.28.(사진 = 서울관광재단,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의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존립은 주권자인 국민 대다수가 대한민국의 존립을 원한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것이 깨질 경우에는 인도에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스리랑카가 분리⋅독립한 것처럼 국가가 쪼개질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은 왜 대한민국의 존립을 원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 그런 국민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을까?

우리 국민들은 일제강점기의 경험, 6⋅25전쟁의 기억 등을 통해 국가의 존립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보면서 “이게 나라냐?”라고 강한 불신과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불신과 불만이 계속 커질 경우에는 국가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만일 임계점을 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존립까지 위태로워질 것이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기초로서 정의에 대한 공감대가 확고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정의는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가 있다. 전자는 인류 역사를 통해 충분히 검증되어 보편적 정의로 인정된 것이고, 후자는 입법절차, 사법절차 등 합리적 절차를 통해 내려진 결론을 잠정적으로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는 설령 개인의 의견은 다르더라도 국가질서를 존중하고, 국가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실체적 정의는 인류의 근본가치라 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이러한 근본가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류의 보편가치인 인권, 그리고 인권보장을 위한 국가질서의 핵심원리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본질적 요소들과 같이 인류 역사를 통해 검증된 가치들이 이러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이다.

이러한 근본가치는 민주국가의 존립 요건이다. 만일 이것이 무너질 경우에는 국가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구심력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공산당 해산판결, 우리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결정에서 확인되듯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려는 정당이 해산되어야 할 정도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확실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권자인 국민들이 이를 실체적 정의로 인정하는 공감대 없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물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제외한 다른 쟁점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실체적 정의를 대신하여- 합리적 절차를 통해 무엇이 정의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즉 절차적 정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입법절차에 대한 존중, 사법절차에 대한 신뢰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절차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고, 통제하는 장치들도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양 측면에서 모두- 대한민국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점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및 신뢰가 21세기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정의의 핵심이며, 진영갈등으로 인하여 이를 외면할 경우에는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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