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시장이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의 정치행보를 연거푸 비판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을 얕보고 정치 모른다고 깔보는 사람이 당(국민의힘) 대표가 되면 이 당은 풍비박산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홍준표 대구시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을 얕보고 정치 모른다고 깔보는 사람이 당(국민의힘) 대표가 되면 이 당은 풍비박산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권 주자 중 1위로 부상한 김기현 의원이 지난 19일 홍 시장과 만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홍 시장이 당대표 경선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관측도 대두되고 있다.

홍준표, “나경원은 출마해도, 출마 안해도 수양버들 정치인”

홍준표 시장은 23일 페이스북에 “수양버들 리더십보다는 목표를 세우면 좌고우면(결정을 빨리 못하고 망설임)하지 않는 굳건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그 동안 나 전 의원을 정치적 소신 없이 권력의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수양버들’에 빗대 비판해왔다. 이번에는 전당대회 출마여부를 두고 한 달 고민해온 나 전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의 고민은 대통령실과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당내에서 사실상 불출마 압력이 거세진 데 따른 결과이다. 이 과정을 통해 국민의힘 지지층 대상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였던 나 전 의원은 3위권으로 하락했다.

그 사이에 5위 안팎이었던 김기현 의원이 1위 자리를 굳혔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인사들이 나 전 의원을 겨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김 의원이 ‘윤심’ 후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지지율도 급등해왔다.

홍 시장 스스로도 지난 9일엔 “친이(친이명박계)에 붙었다가 잔박(잔류한 친박계)에 붙었다가 이제는 또 친윤(친윤석열계)에 붙으려고 하는 걸 보니 참 딱하다”면서 “여기저기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수양버들로 국민들을 더 현혹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나 전 의원이 대통령실의 환심을 사서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려는 것을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수양버들’로 비유한 셈이다.

그러나 23일에는 나 전 의원이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불출마 압력으로 인해 장고를 거듭하는 행태를 ‘좌고우면하는 수양버들’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나 전 의원이 당 대표에 출마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듯한 행태를 보인다고 ‘수양버들’이라고 했다가, 당내 역풍을 맞아 출마를 고심하는 태도를 겨냥해서도 ‘수양버들’이라고 폄하한 셈이다.

한마디로 나 전 의원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도 ‘수양버들’이라는 게 홍 시장의 입장인 셈이다.

나경원 전 의원이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25일 밝히겠다고 한 가운데, 홍준표 대구시장은 나 전 의원에 대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도 '수양버들'이라고 비난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나경원 전 의원이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25일 밝히겠다고 한 가운데, 홍준표 대구시장은 나 전 의원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도 '수양버들'이라고 비난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나경원 측근이 ‘간신’이라고 비난하자, “일부 금수저 출신들의 탐욕과 위선”이라고 역공

홍 시장이 이처럼 나 전 의원을 거듭 공격하면서 ‘태생적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즉 자신은 ‘흙수저’ 출신인데 ‘금수저’ 출신인 나 전 의원이 탐욕을 위해 ‘수양버들’ 정치를 해왔다는 논리이다. 홍 시장은 23일 페이스북에서 “가진 자를 증오하지 않고 못 가진 자를 홀대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진영으로 쫘악 갈라져 옳고 그름이 진영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비정상적인 세상은 이제 종지부를 찍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홍 시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나 전 의원을 겨냥해 “대통령실 참모들까지 비난하면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처럼 역겨워 손절한 분에게 매달리는 것은 대통령 측과 결별만 더욱더 빨리 오게 만들 뿐”이라며 “검증과정에서 건물 투기 문제가 나왔다는데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것부터 해명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홍 시장은 다음날인 18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부부가 좋은 의미로 부창부수(夫唱婦隨)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출세 욕망으로 부창부수한다면 그건 참 곤란하다”면서 “헛된 욕망을 향한 부창부수, 자중했으면 한다”고 적었다.

나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및 기후환경대사직을 그만두고 당대표를 노리고 있고, 나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대법관 내정설’이 나오는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가급적 맞대응을 자제해온 나 전 의원은 ‘부창부수’ 발언에 대해서는 정면대응했다. 19일 ‘나경원 전 원내대표’ 명의의 보도자료를 내고 “홍 시장의 부창부수 발언은 전혀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이라며 “가족까지 공격하는 무자비함에 상당히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나 전 의원의 측근인 박종희 전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홍 시장의 건물 투기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박 전 의원은 “신당동의 상가 건물을 샀다 파는 과정에서 있었던 걸 얘기하는 것 같은데 그게 이제 취·등록세라든가 양도세 같은 비용을 빼면 1천600만원 이득이 있었던 것인데, 이걸 투기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전 의원은 “이런 근거 없는 마타도어(흑색선전)를 계속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간신”이라고 홍 시장을 직격했다.

‘간신’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 홍 시장도 다시 발끈했다. 19일 SNS를 통해 “일부 금수저 출신들이 또다시 위선과 내부 흔들기로 자기 입지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보고 더이상 이들의 탐욕과 위선을 참고 볼 수가 없어서 이들과는 더이상 같이 정치를 논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최근 내 생각을 가감없이 내비친 것”이라면서 “나는 그들이 지극히 싫다”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출했다.

홍준표의 ‘나경원 때리기’, 윤심 및 대통령실과 호흡 맞춰?

홍 시장의 이 같은 ‘나경원 때리기’는 ‘윤심’ 후보인 김기현 의원의 지지율 급등과정과 무관치 않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 원내인사들 중 가장 먼저 당권도전을 선언했지만,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서 5위권 지지율에 그쳤다. 지난 1일 뉴시스 여론조사에서 3위로 치고 올라왔다.

김 의원이 ‘윤심’ 후보로 급부상한 것은 지난 5일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승기를 잡은 지난 5일을 기점으로 본다. 이날은 친윤(親尹) 후보로 분류되던 '권성동·김기현·나경원' 세 사람의 당권도전 운명을 가르는 날이기도 했다. 그동안 오리무중이었던 '윤심'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날 김 의원은 배현진 의원 지역구(서울 송파을) 신년행사에 단독연사로 나섰고, 윤핵관인 장제원·이철규 의원 그리고 친윤계 공부모임 ‘국민공감’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윤핵관 맏형 격인 권성동 의원은 당권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기현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송파을 신년인사회에서 장제원 의원, 배현진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기현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송파을 신년인사회에서 장제원 의원, 배현진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5일이 나 전 의원에게는 ‘반윤 프레임’에 갇히게 되는 정치적 불운의 시발점이 된다.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년간담회에서 취재진과 질답과정에서 ‘출산시 대출금 탕감’이라는 헝가리식 출산 장려책을 언급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즉각 “대통령의 뜻과 다르다”는 취지로 반박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저출산고령사회위의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이후 나 전 의원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지난 10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다. 차기 당대표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셈이다. 그러나 소위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 등을 중심으로 “당대표 출마할 것이면 부위원장을 왜 맡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윤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의 사직서를 수리하는 대신에 해임조치했다. 윤 대통령이 ‘격노’한 것이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은 17일 윤 대통령의 진의는 대통령실 발표와 다를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이는 윤 대통령이 윤핵관과 대통령실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됨으로써, 나 전 의원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나 전 의원은 결국 20일 윤 대통령에게 공개 사과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중에서 1위였던 지지율은 3위권으로 급락했다.

홍 시장의 나경원 때리기는 이처럼 나 전 의원이 윤핵관과 대통령실에 의해 ‘정치적 매장’이 집행되는 시기에 이루어졌다. 즉 홍 시장은 ‘윤심’ 및 대통령실과 정치적으로 호흡을 맞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홍준표, 19일 김기현 만나 ‘당내 화합’ 주문...김기현, 24일 기자들과 만나 ‘연포탕’ 강조

더욱이 김기현 의원이 지난 19일 대구 모처에서 홍준표 시장과 대구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졌던 사실이 복수언론을 통해 24일 확인됐다.

홍 시장은 이 자리에서 김 의원에게 차기 총선을 위해서는 ‘당내 화합’이 중요하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시장은 24일 영남일보와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김 의원 측에서) 연락이 와서 비공개로 만났고, 대통령실과 협력해서 정권의 안정을 기해달라고 했다”고 언급, 회동 사실을 확인했다.

홍 시장이 김 의원을 만나 ‘당내 화합’을 당부 한 다음날인 20일 공교롭게도 김 의원측에서는 선거 프레임을 ‘김장연대’ 대신에 ‘연포탕(연대·포용·탕평)’으로 변경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김 의원은 24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연포탕’을 메뉴로 식사를 했다. 또 “윤석열 정부의 성공, 국민의힘 성공을 위해 연대와 포용, 탕평을 통해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연포탕'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연포탕'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흙수저 연대’와 ‘금수저’ 간의 대결의식 반영?

홍 시장은 나 전 의원을 ‘금수저’ 출신이라고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흙수저’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 같은 ‘흙수저 대 금수저’ 간 대결 프레임은 홍 시장과 나 전 의원 간의 오랜 갈등 구도 속에서 작동해왔다.

홍 시장의 이번 나경원 때리기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측면도 있다. 공교롭게도 김기현 의원은 ‘흙수저’ 출신이다.

김 의원은 지난 23일 보수 성향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실 흙수저 출신이지 않나”라며 “우리 당대표도 흙수저 출신인 제가 되어야 맞상대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의원과 공유한 ‘흙수저’라는 공감대도 홍 시장이 금수저인 나 전 의원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유로 꼽힌다. 만약에 ‘김홍연대(김기현-홍준표 연대)’가 성사된다면 금수저를 비판하는 흙수저 연대로 자리매김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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