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역점을 두고 있는 LH의 매입임대주택 정책이 시험대 위에 오르고 있다. LH가 최근 매입한 미분양 아파트가 ‘고가 매입’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청년·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4차 입주자 모집이 시작됐다. 국토교통부는 전국 13개 시·도에서 청년 1천265호, 신혼부부 1천359호 등 총 2천624호의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입주를 신청한 청년·신혼부부는 자격 검증을 거쳐 이르면 2023년 4월 초부터 입주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의 한 매입임대주택.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청년·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4차 입주자 모집이 시작됐다. 국토교통부는 전국 13개 시·도에서 청년 1천265호, 신혼부부 1천359호 등 총 2천624호의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입주를 신청한 청년·신혼부부는 자격 검증을 거쳐 이르면 2023년 4월 초부터 입주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의 한 매입임대주택.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김병기 의원, LH 고가 매입 논란 단초 제기

논란의 발단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공했다. 김 의원은 최근 LH가 악성 미분양 아파트를 고가매입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LH는 지난 12월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 전용면적 가구를 2억1000만~2억6000만원대에 매입했다. 총 매입 가구는 36가구, 금액은 79억4950만원이다. 김 의원측은 “LH가 최초 분양가와 비슷한 수준의 가격으로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LH는 “공사가 매입한 소형 평형은 당초부터 분양가 할인 대상이 아니었다”면서 “감정평가 결과 평균 분양가 대비 12%가량 낮은 금액으로 매입하게 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의원측은 “전용 24㎡의 경우 최초 분양가의 95.9% 가격으로 매입했다”고 밝혔다. LH가 매입가격 산정의 근거로 삼은 감정평가보고서가 미분양주택의 분양가를 시세자료로 삼아 가격을 산정했다는 것이다. 즉 주변 아파트의 실거래가격을 비교해서 적정 아파트 매입가격을 산출해야 했는데 건설사측에 유리한 분양가를 기준으로 삼아 제대로 된 할인율을 적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LH강력 비판... “세금 아닌 내 돈이라면 이 가격에 샀을까”

양측 간의 논란과 관련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0일 LH를 강도높게 비판함으로써 패자가 가려졌다. 원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LH가 악성 미분양 상태인 강북의 어느 아파트를 평균 분양가 대비 12%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했다는 기사를 읽고 내부 보고를 통해 사실 확인을 했다”며 “세금이 아닌 내 돈이었다면 과연 지금 이 가격에 샀을까 이해할 수 없다”고 LH를 정면으로 질책했다. “국민 혈세로 건설사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원희룡 장관은 30일 페이스북에서 "세금 아닌 내 돈이라면 이 가격에 샀을까"라며 LH를 강력 비판했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원희룡 장관은 30일 페이스북에서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에는 안 삽니다"라며 LH를 강력 비판했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실제로 문제가 된 ‘칸타빌 수유팰리스’ 소형평형은 지난해 2월 본청약에서 6대 1의 경쟁률로 청약을 마감했지만 미계약이 발생했다. 건설사는 지난해 7월 시세보다 15%나 할인했지만, 미분양이 발생했다. 이런 아파트를 LH가 12% 할인가에 매입한 것과 관련해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다.

원 장관은 “매입임대제도는 기존 주택을 매입해 주거취약계층에게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임대하는 주거복지제도”라면서 “어떤 기준으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철저히 검토하고 매입임대 제도 전반에 대해 국민적 눈높이에 맞도록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장관, LH 이한준 사장에게 매입임대사업 전반에 대한 ‘감찰’ 요구

원 장관은 이어 30일 국토부 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매입임대 제도의 취지와 무관하게 업무 관행대로 한 것은 무책임하고 무감각하다”며, “LH 신임 사장에게 그간 진행된 매입임대사업 전반을 감찰하도록 지시하고 제도 개선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날에 즉각 해당 사항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이다.

LH 이한준 사장은 이번에 문제가 된 매입건 뿐만 아니라 매입임대사업 전반에 대해 감찰을 실시해야 하는 책무를 떠안게 됐다는 평가이다. LH는 지난 2021년 일부 직원의 땅투기 사건으로 인해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조직 축소 등과 같은 개혁작업을 통해 조직이 정상화되고 있는 시점에 또 다시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이다.

원 장관이 LH 고가매입이 ‘관행’에 의한 것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건설사와 유착의혹 등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찰 결과에서 의외의 악재가 돌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악성 미분양’ 털기 위한 건설사업들의 LH 로비설도 제기돼

문제의 아파트는 지난해 2월 청약에서 6.4대 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인해 주변 시세보다 30%가량 비싼 가격에, 미계약이 발생했다. 분양가 15% 할인 혜택 조건을 내걸고 7차례 무순위 청약을 벌였으나, 잔여 물량을 해소하지 못했다. 할인 가격이 시세보다 15% 정도 비싼 아파트를 구입할 소비자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H가 추가 할인 조치 없이 악성 미분양 아파트를 국민혈세를 들여 매입해준 것이다. 참여연대는 “최초 분양가보다 15%를 할인해도 수차례 미분양된 주택을 LH공사가 추가 할인없이 매입하는 것은 건설사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LH 로비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30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신축 빌라 등도 미분양이 속출하는데, 사업자들이 LH 관계자들에게 로비해 ‘좋은 값’에 매입임대로 넘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망할 사업이었는데 LH에 넘겨 ‘탈출’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LH 의혹 커지면 국토부 직접 조사할 수도 있어... 원 장관에 국민적 평판 주목돼

LH의 감찰조사에서 이 같은 의혹이 충분히 해명될지 아니면 오히려 증폭되는 결과가 빚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의혹이 커지면, LH의 매입임대 구매 비리와 관련해 국토부가 직접 조사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2021년 LH 땅투기 의혹 당시에도 국토부가 전수 조사에 나선 바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20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교통부가 ‘미분양 위험선’으로 보는 수치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원 장관은 “일반 미분양이 늘어난다고 해서 모두 주택시장 위기로 볼 필요는 없다”며 “미분양 물량을 정부가 떠안을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0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기자실을 방문해 간담회를 하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0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기자실을 방문해 간담회를 하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미분양 물량이 늘어난다고 해도 고가에 매입하기보다는 건설사의 책임을 분명히하는 한편 충분히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임대 아파트를 구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원 장관은 일단 강경한 태도를 취했지만, 이번 사태를 어떻게 조사하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국민적 평판이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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