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윤리성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AI라는 기술적 혁신이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가 된다면 AI는 그 효용보다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는 AI 전투용 로봇을 개발하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AI 전투용 로봇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는 AI 전투용 로봇을 개발하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AI 전투용 로봇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미 개봉 첫날인 지난 6일 ‘아바타: 물의 길’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메간’, 지난 20일 개봉된 넷플릭스 공상과학(SF) 영화 ‘정이’, 우크라이나의 킬러 로봇 등이 공통적으로 던지고 있는 하나의 메시지는 바로 ‘AI의 윤리성’ 에 대한 고민이다. 세밀한 AI 윤리 기준 마련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상황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정이’, ‘인간 뇌 대량복제’는 인간성 공격이라는 메시지 던져

‘정이’는 AI 휴머노이드(인간 로봇)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이다. 공개 이후 정이는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위를 차지했고, 공개 1주일이 지난 뒤에도 2위에 머무는 등 높은 순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네이버 평점도 6.17점(31일 기준)에 그치고, 영화 커뮤니티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AI 킬러 로봇의 등장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AI 윤리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점에서는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정이’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AI 휴머노이드(인공지능 인간 로봇)이다. 전설적인 용병 ‘윤정이’(김현주 분)는 단 한번의 실수로 식물인간이 되지만, 군수회사 크로노이드는 그녀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로봇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35년 후 정이의 딸 윤서현(강수연 분)이 연구팀장이 되어 개발을 이어가지만, 연구에 진전이 없자 크로노이드는 ‘정이’를 두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이를 알게 된 서현이 정이의 탈출을 계획한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이다.

비슷한 느낌의 SF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진 데다, 캐릭터의 매력이 떨어지고, 스토리 전개도 엉성하고 개연성도 부족해 혹평이 이어졌다. 다만 주인공 서현을 진료하며 폐암 진단을 내리는 의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시청자들이 주목했다.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의사가 진료를 마치는 순간 전원이 꺼지면서, 그가 AI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그 의사가 복제 뇌를 이식한 휴머노이드(사람을 닮은 로봇)인지, AI 딥 러닝을 통해 의술을 익힌 휴머노이드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정이는 인간의 뇌를 복제한 AI 휴머노이드를 대량복제하는 것이 ‘인간성에 대한 공격’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정이'는 전투용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사진은 ‘정이’ 포스터. [사진 출처=넷플릭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정이'는 전투용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사진은 ‘정이’ 포스터. [사진 출처=넷플릭스]

아바타2 제친 ‘메간’, ‘AI의 자율성’에 내포된 윤리적 공포를 암시해

국내에서도 지난 25일 개봉된 호러영화 ‘메간’도 AI 로봇이 주인공이다. 지난 23일까지 전 세계에서 제작비(1200만 달러)의 10배가 넘는 1억2500만 달러(약 1540억 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메간은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케이디에게 완구 개발 회사에서 일하는 이모가 준 선물이다. 메간은 케이디를 지키도록 프로그래밍됐다. 그 프로그램이 스스로 딥러닝을 하면서, 케이디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메간은 결국 자신을 킬러 로봇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더 이상 케이디의 말도 듣지 않는 수준으로 자율진화하게 된다. 메간은 당초 케이디를 지키도록 프로그래밍됐지만, ‘자율성’을 부여받은 존재였다. 그 자율성은 입력된 목적을 이뤄내기 위해 ‘무차별 살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는 셈이다.

영화 '메간'.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영화 '메간'.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율 전투 로봇이 등장한다면...‘민간인 대량 살상’ 배제 못해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완전 자율 전투 로봇'의 등장은 시간 문제라고 관측한다. 두 정부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디지털혁신부 장관은 완전 자율 킬러 무인기 개발에 대해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다음 단계"라며 "우크라이나는 이 방향으로 많은 연구개발을 해 왔다. 앞으로 6개월 안에 완전 자율 전투 로봇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후방에서 사람이 조종하거나 사격 명령을 내리는 자율 무기 체계(Autonomous Weapon System·AWS)로 러시아군을 상대했는데, 앞으로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지난 2017년 AI 기술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연설에서는 "가장 효과적 무기 시스템은 자동 모드로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며, 러시아 무기 산업이 전쟁 기계에 AI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어느 한 국가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적군을 죽이는 전투 로봇을 투입한 사례는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또는 양국 모두 이러한 전투 로봇을 배치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AI 킬러 로봇이 전장에 나선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적으로 간주해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아직 AI 기술이 군인과 민간인을 스스로 판별할 만큼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자율 전투 로봇이 등장한다면 ‘민간인 대량살상’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인간의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오는 '챗GPT', 활용목적 변경에 따라 ‘치명적 무기’ 될 수도

AI 대화형 챗봇 서비스 '챗GPT'의 등장으로, AI가 우리 일상으로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챗GPT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대통령실 수석과 비서관들에게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과 툴(Tool)에 대해 공부하라는 지시를 했다.

정부는 '챗GPT' 등의 출현으로 새 경쟁 국면에 진입한 AI 분야 발전을 위해 우리 사회가 보유한 모든 데이터의 개방·공유 및 혁신적 생산을 추진한다. 행정·입법·사법 공공 영역과 전 산업 분야를 망라한 일상생활에서 AI 기술을 전면 활용해 AI 산업 성장을 견인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올해에만 7천129억 원을 투입하는 'AI 10대 프로젝트'를 통해 AI 일상화 속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챗GPT'는 인간에 대한 위협요소가 없는 AI 서비스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벽한 AI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이를 산업 논리에 따라 악용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AI 기술은 어떤 용도로 활용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산업이 된다. 노벨이 안전한 산업용 폭약으로 개발한 다이너마이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지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쓰일 수 있다. 영화 '정이'에서도 AI 휴머노이드가 처음엔 군수용으로 개발됐다가, 나중에 가정용과 성인용으로 활용 목적 변경을 검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AI는 거의 모든 산업에 적용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성·효율성 증가, 비용 절감 등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그 이면엔 사회·윤리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적 논리에 따라 AI 기술이 부정적인 용도로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나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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