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증한 ‘빌라왕 사기’ 등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전세사기 방지 대책이 공개됐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대책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대책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심전세앱’을 통해 전월세 시세, 악성 임대인 정보 등을 임차인이 임대인 동의 없이 자유롭게 확인하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이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전세 사기 피해 방지 방안의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임차인이 악성 임대인 정보 자유롭게 확인하려면 ‘국회 입법’ 필요해...민주당 협조가 절실

하지만 임차인이 악성 임대인 명단과 계약 전 체납정보를 자유롭게 조회하기 위해서는 국회 입법이 필요하다.

1.0버전에서는 임대인이 앱에서 본인 정보를 조회한 후 현장에서 휴대전화 화면을 임차인에게 보여 주는 방식이다. 임대인이 거부하면 임차인은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다. 2.0버전에서는 임대인이 동의 버튼을 누르면 임차인 앱 화면에 나온다. 다소 편리하지만 임대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1.0버전과 동일하다. 3.0버전은 임대인 동의 없이 임차인이 체납정보 등을 자신의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법규가 개정돼야 하므로 170석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입법 협조를 해야 한다. 민주당은 현재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 대표의 정치적 생명을 지키기 위해 민생입법을 협상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전세 사기 대책’은 당초 일정대로 추진되지 못하게 된다.

원희룡, “청년과 신혼부부 울리는 전세사기 뿌리뽑기 총력 다할 것”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2일 "전세사기는 청년과 신혼부부 같은 사회초년생이 대응하기 어려운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범죄"라면서 "이번 대책을 통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노리는 악질 사기가 뿌리 뽑힐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대책 중에서 핵심은 ‘안심전세앱’을 통해 신축 빌라 등의 시세, 악성 임대인 정보, 임대인의 세금체납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입자는 적정한 전셋값이나 집주인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신축빌라와 나홀로아파트처럼 거래가 없어 시세 파악이 불가능한 주택은 분양대행업체나 공인중개사들이 시세를 부풀려 과도한 보증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안심전세앱 1.0, 수도권 다세대 및 50가구 미만 소형 아파트 정보 제공...지방 주택 정보는 2.0에서 제공

지난 2일 공개된 안심전세앱 1.0 버전에서는 수도권 연립·다세대 주택 및 50가구 미만 소형 아파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주거용 오피스텔, 지방광역시 다세대·연립 주택에 대한 정보는 7월 출시 예정인 2.0 버전에서 확인 가능하다.

안심전세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그동안 전세사기의 표적이 된 ‘신축빌라 시세’까지 제공된다는 점이다. 신축빌라는 준공 전 전세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많아 적정 시세를 알기 어렵다. 2.0 버전부터는 한국감정평가사협회·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협업한 준공 1개월 전 ‘잠정 시세’까지 확인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안심전세앱’을 통해 신축 빌라 등의 시세, 악성 임대인 정보, 임대인의 세금체납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사진=YTN사이언스 캡처]
국토교통부는 ‘안심전세앱’을 통해 신축 빌라 등의 시세, 악성 임대인 정보, 임대인의 세금체납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사진=YTN사이언스 캡처]

임차인이 안심전세앱에서 주택 정보를 검색하면, 해당 주택의 시세와 인근 지역 평균 전세가율·평균 경매낙찰가율을 종합적으로 계산해 적정 전세보증금이 자동으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입주를 원하는 물건의 주소를 입력하면 ‘시세 3억원, 인근 지역 전세가율 70%, 경매낙찰가율 60%’라는 기본 정보가 뜨고 ‘위 주택은 2.1억원 이하로 전세 계약을 권유합니다, 경매낙찰 금액은 1.8억원, 3억원으로 계약할 시 손실 가능 금액은 1.2억원’ 등의 상세 내용을 안내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부동산 앱에서 제공되는 정보만 늘렸을 뿐, 강제력이 없다는 점이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윤지해 부동산R114팀장은 “앱에서 ‘이 주택은 얼마 이하로 계약해야 한다’는 정보를 준다고 하는데, 임차인은 당장 집을 찾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중개인을 상대로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축 빌라 시세 확인, 등기부등본 열람 가능 등은 장점

분양업계의 관계자는 “전세 사기의 타깃이었던 신축빌라 시세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점과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임대인을 일차적으로 거르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시세 조회만으로 지능화·조직화되고 있는 전세 사기를 막을 수는 없기에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세 계약 시 필요하지만 기관마다 흩어져 있는 행정정보도 한 번에 검색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꼽힌다.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도 열람이 가능하다. 특히 등기부등본을 앱에서 한 번이라도 다운로드하면 이후 2년 6개월간 등기 내용이 변경될 때마다 임차인의 카카오톡으로 알림을 보낸다. 임차인이 입력한 전세금과 매매가를 고려해 이 집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지도 파악이 가능하다.

‘안심전세앱’을 통해 전세 계약 시 필요하지만 기관마다 흩어져 있는 행정정보도 한 번에 검색할 수 있다. [사진=YTN사이언스 캡처]
‘안심전세앱’을 통해 전세 계약 시 필요하지만 기관마다 흩어져 있는 행정정보도 한 번에 검색할 수 있다. [사진=YTN사이언스 캡처]

하지만 출시일 기준으로 조회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빌라왕’ 김모씨 피해자 A씨의 주소를 앱에서 검색하면, “매매시세 공개 대상이 아니거나 시세 검토 중”이라는 안내문을 확인할 수 있다.

임대인 동의 없는 세금 체납과 보증사고 이력 조회는 7월부터 가능?...국회가 법개정 안하면 불가능

세금 체납이나 보증사고 이력이 있는 ‘악성 임대인’ 조회 기능도 완전하지 않다. 당분간은 집주인이 안심전세앱에서 자신의 정보를 조회한 후, 해당 화면을 같은 공간에 있는 세입자에게 보여주는 방식만 가능하다.

빌라왕 사태를 겪었던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주인이 세입자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시켜 주는 방식이라 불편함이 예상되고 가짜 앱을 이용한 신종 사기가 등장할까 봐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4월부터는 임대인 동의를 받은 보증사고 이력 등의 정보를 조회에 대해, 임차인의 휴대 전화로 송출된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정보 조회 요청을 푸시 형태로 보내고, 임대인이 동의 버튼을 누른다면 임차인의 앱 화면에 데이터가 표시되는 방식이다.

오는 7월부터는 법을 개정해 임대인 동의 없이 임차인이 보증사고 및 국세 체납 이력을 조회할 수 있도록 국세청 서버와 연계한다. 더욱이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버전 3.0 7월 공개도 물건너간다.

악성 임대인에 대한 정보 확인이 4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세입자의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시스템 개선보다는, 당장 시스템 공개에 우선순위를 둔,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에 대해 “일부 제도개선은 다가올 봄 이사철 이후로 예정됐고, 나쁜 임대인 명단 공개 등은 국회 입법 개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전세사기는 앞으로 벌어질 문제가 아니라 이미 벌어진 문제인 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인데 일부 제도를 7월부터 시행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현재로서는 세입자가 잘 알아보고 조심하는 방법 외에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특히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매매를 해 소유권 이전을 하는 상황을 막아야 하는데, 안심전세앱에서는 그런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시장 안정화 노력이 엿보이고 공신력 있는 시세 파악으로 정보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면서도, 핵심이었던 악성 임대인의 신상과 세금 체납 내역을 알 수 없어 시세 확인이 불과한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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