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사진=박준규]

지난 11일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양국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열리고 있는 빈미술사박물관 대표 소장품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합스부르크 가문 혹은 왕가는 프랑스의 부르봉 가문과 더불어 유럽 대륙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과 힘을 투사했던 양대 가문으로, 최전성기인 카를 5세(1500-1558) 때는 스페인, 플랑드르,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의 주요 지역과 중남미 식민지를 보유해 대영제국에 앞서 원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불렸다. 

재밌는 점은 합스부르크 가문은 막시밀리안 1세(1459-1519) 때부터 이뤄졌던 결혼 동맹을 통해 유럽의 영토와 아메리카 식민지를 확보했단 것이다. 그 결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모토는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두어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라틴어 Bella gerant alii. Tu, felix Austria, nube)"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다만 이후엔 순혈을 보존하려는 의도 하에 이뤄진 지나친 근친혼으로 정신과 신체가 온전치 못한 후손들이 대를 잇는 경우도 다반사라 '결혼으로 흥했다 결혼으로 망한' 예를 보여주기도 했다.

결혼동맹을 주도해 합스부르크 가문을 일약 유럽의 주요 왕가로 성장시킨 막시밀리안 1세. [사진=박준규]

다만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한국 서양사학계에서는 많이 연구되고 있지 않은데, 가장 큰 이유는 여러 언어에 통달해야 한다는 난관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전체적인 면모를 보기 위해선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헝가리어 등 여러 유럽어를 포함해 튀르키예어, 아랍어 등으로 기록된 문서까지 봐야 하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이러한 언어들을 습득하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교수가 된 한 서양사학자가 시간강사인 시절 말해준 것이기도 하다.

이 전시엔 막시밀리안 1세(1459-1519)에서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까지의 유물 96점이 전시됐다. 여기엔 합스부르크 가문이 직접 제작에 참여했거나 혹은 수집한 회화, 공예, 갑옷, 태피스트리 등이 포함된다.

특히 회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루벤스, 벨라스케스, 틴토레토, 안토니 반 다이크, 얀 슈타인 등 서양화 거장들의 명화를 직접 볼 수도 있다.

그중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막시밀리안 1세 등의 갑옷 4점,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 마리아 테레지아 여황후와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왕비의 초상화였다. 화려함 속에서 합스부르크 가문 일원들의 기품이 느껴졌다.

대공 페르디난트 2세의 독수리 갑옷. 당시 유럽 장인들이 얼마나 많은 품을 들였을지 짐작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함을 자랑한다. [사진=박준규]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테레사 공주는 어릴 땐 여느 아이와 같은 얼굴이었지만 점차 크면서 합스부르크 근친혼의 폐해였던 주걱턱 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해 7번째 임신 도중 2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박준규]
오스트리아 제국의 실질적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그녀는 여성이 왕이 될 수 없음을 명시한 게르만족의 관습법 살리카 법(Salica Law)에 의해 황제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 프란츠 1세를 대신해 실질적인 황제 역할을 했다. [사진=박준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자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1789년 발생한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사진=박준규]

그 외에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민족주의로 천천히 무너져 가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오로지 개인의 카리스마로 지탱했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초상화도 인상적이었다. 노황제의 초상화 속에서 강인함과 불굴의 의지가 읽혔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기둥이었던 프란츠 요제프 1세. 그의 초상화에서 제국을 민족주의·공산주의 등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결의와 강인한 의지가 읽힌다. [사진=박준규]

전시회 마지막엔 조선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로 보낸 조선의 투구와 갑옷도 있다. 이는 조선이 189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수교하면서 보낸 것이다.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인연이 예상보다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교 기념으로 조선이 선물한 갑옷과 투구. [사진=박준규]

관람은 어떤 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됐다. 다만 관람객이 많아 한 작품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입장은 오전 10시부터 30분 단위로 이뤄지는데, 관람 시간엔 제한이 없으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관람장 안에 인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미리 예매를 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현장에서 당일 입장권을 구매하려면 아침 일찍 가야 한다. 사실 전날인 10일에 갔다가 발권에 실패해 다시 방문한 것이다. 11일의 경우 오전 8시 즈음에 도착했을 때에도 앞에 열팀이 넘는 인원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입장권 판매는 입장 20분 전인 오전 9시 40분 경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현상은 이번 전시회가 지난해 10월에 열린 후 3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오는 3월 1일까지였던 특별전 기한이 15일로 2주 연장됐다. 보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발품을 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한편 입장권 현장 구매와 관련해 박물관 관계자는 "출근을 여덟시 반에 하는데, 그 전부터 와서 줄을 서는 분들이 이미 있다"며 "주말에는 그 수가 배에 이른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방학이 끝나가고 해서 그 전에 전시회를 보려는 분들이 점점 몰리고 있는 것 같다"며 "보통 하루 발권하는 현장 표가 900매 정도 된다. 다만 정확한 수는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고도 했다.

11일 오전 9시 50분 경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의 모습. [사진=박준규]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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