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조합원들이 16일 정부대전청사 남문광장에서 집회를 갖고 중리네거리로 이동, 대한통운 대전지사까지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2009.5.16(사진=연합뉴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16일 정부대전청사 남문광장에서 집회를 갖고 중리네거리로 이동, 대한통운 대전지사까지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2009.5.16(사진=연합뉴스)

문제상황

민주화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좋은 것도 변화도 있고, 유감스럽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 크게 확대된 자유의 활용에서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혼재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늘 염두에 두고 적절하게 자유를 활용하는 것은 민주화의 큰 성과라고 볼 수 있지만, 자유의 오남용으로 인하여 방종과 일탈이라는 문제를 낳게 되면, 그에 대한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겪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수많은 갈등 사안들이 자유의 적정선이 어디인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던 탓이라 할 수 있다. 불법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과격한 집회⋅시위의 문제, 상생을 내세우면서도 불신과 불만 속에 곪아가는 노사 간의 갈등, 협치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협치가 안 되는 것은 상대방 탓이라고 미루는 정치권….

그런데 최근에는 일부 시민단체 행사에서 대통령 인형에 활쏘기, 때리기까지 등장했다. 이 문제가 다른 문제들에 비해서 더욱 충격적인 것은 비판과 풍자의 한계를 넘어서 그냥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의 윤석열차 카툰은 비판과 풍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활쏘기, 때리기는 도대체 무엇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인가?

민주화 이후 다른 여러 기본권들과 함께 표현의 자유도 권위주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과거에는 터부시되었던 대통령에 대한 풍자도 많아졌고, 김영삼 대통령을 빗대어 영삼스럽다고 표현한 것은 오히려 애교스러운 정도이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노개구리,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쥐박이 등의 거친 표현들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을 성역시하는 권위주의 시절로 회귀하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누드화 사건이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활쏘기, 때리기 사건은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극단적 표현은 사실상 진영 간의 갈등이 심화됨에 따른 –이성보다 감정에서 분출되며, 사회적 갈등을 심각하게 증폭시키는- 심각한 혐오의 표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표현의 자유는 왜, 그리고 어디까지 보호되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 제한될 수 있는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원로 공동선언'에 참석한 리영희 한양대 대우교수의 모습.(사진=연합뉴스)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원로 공동선언'에 참석한 2004년 9월16일 당시 생전의 리영희 한양대 대우교수의 모습.(사진=연합뉴스)

표현의 자유의 의미와 역사적 발전

표현의 자유는 근대 시민혁명 및 이와 결부된 인권선언의 시대부터 핵심적 기본권의 하나로 널리 자리매김되었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사상의 자유와 맞물려서 근대 민주주의 사상이 대중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어서 근대 시민혁명이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구체제를 붕괴시키고, 근대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되면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기초의 하나로 인정되었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호는 다른 기본권에 비해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전 억제 금지의 원칙, 진리생존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등 수많은 법리들이 만들어졌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엄격한 요건과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렇다고 표현의 자유가 절대 불가침이라고 보았던 것은 아니다. 허위의 표현으로 남을 해치는 경우, 설령 허위가 아니더라도 국가기밀이나 기업비밀 등을 누설하는 표현, 타인의 사생활을 노출시키는 표현 등은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되었다. 다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이른바 정신적 자유의 우월적 지위를 염두에 두면서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동일시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언론의 자유 안에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알권리, 대중매체의 자유 등도 포함하는 전체적 의사소통과정의 보호로 인정된다. 미국에서도 표현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 대신에 의사소통의 자유(freedom of communication)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며, 우리 헌법에서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묶어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최근 가장 문제되는 사안이 언론의 자유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초점을 맞춰서 검토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대응하는 권위주의 정권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매우 강력했다. 박정희 시절의 동아일보 광고 탄압, 전두환 시절의 언론통폐합 및 언론기본법 등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랬기에 민주화 이후에는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허용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억눌렸던 표현의 욕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면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른바 관제 언론에 의한 조작이 어려워진 반면에서 온갖 종류의 루머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가짜뉴스들이 범람하면서 혼란스러운 모습도 적지 않았다. 더욱이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각종 SNS 등이 활성화되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함께 확장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한때 인터넷 실명제가 입법화되기도 했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무효가 되었고, 이후 ‘익명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악성 댓글과 가짜뉴스의 범람, 표현의 자유의 오남용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2008.06.08(사진=연합뉴스)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2008.06.08(사진=연합뉴스)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긋는 요소들

인터넷에 기반한 정보화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부작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대다수 국가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대한 가짜뉴스들 때문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왜곡된 표현들이 파장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가짜뉴스를 정부가 직접 규제한다는 등의 방식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언론개입의 빌미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반대한다. 오히려 가짜뉴스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구별해내고, 그 뿌리를 밝히는 기술의 개발에 더 큰 기대가 모이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전통적인 제한 법리들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금 현재도 표현의 자유 제한에 관한 사법적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사전 억제 금지의 원칙, 사실과 의견의 구별, 공인의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사전 억제의 금지는 표현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현행헌법도 제21조 제2항에서 이를 명시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원칙이다. 사후적 규제는 엄격하게 할 수 있지만, 사전적 억제는 표현의 싹을 밟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금지함으로써 공개된 상태에서 대중적 판단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의 구별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던 발언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 적시되었듯이, 사실의 왜곡은 명백한 표현의 자유의 오남용으로서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사실과 구별되는 개인의 의견은 –그것이 의도적인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아니라면- 규제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인(공적 인물)의 이론은 고위공직자, 대중적 스타, 재벌총수 등 사회적 영향력으로 인하여 공적 인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사생활의 제한 등에서 일반 시민들과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의 오남용이 될 수 있는 것도 공인에 대한 표현의 경우에는 정당한 표현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한의 기준이 완화된다는 것이지, 공인의 경우에는 명예권도 없고, 사생활도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윤석열차 카툰이 공인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에 대한 경우와는 달리 허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 풍자 등이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등의 사진이나 인형을 놓고 활쏘기, 때리기 등의 행사를 하는 것도 그렇게 볼 수 있을까?

TVchosun아고라의 2023년 2월14일자 썸네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 내용 일부. 2023.02.14.(사진=tvchosun아고라 캡처)
TVchosun아고라의 2023년 2월14일자 썸네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 내용 일부. 2023.02.14.(사진=tvchosun아고라 캡처)

대통령 등 공인에 대한 표현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공인에 대한 과도한 표현의 사례는 많지 않다. 한편으로는 표현자의 입장에서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는 공인의 입장에서도 이를 일일이 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대범하게 넘기는 것이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누드화 사건에서도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심각하게 문제 삼아서 법정 공방으로 갔을 경우에는 승소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법정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확대하는 것에 따른 개인적 및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목 잘린 만화 사건도 유사하다. 이를 법적으로 다퉜다면, 승소 여부에 상관없이 국민들의 지지율은 오히려 낮아졌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더욱 심각하고 자극적인 표현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형에 대한 활쏘기와 때리기가 묵인되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까? 칼로 찌르기? 아니면 불태우기? 목매달아 걸어 놓기? 도대체 어떤 일들이 계속 벌어질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제는 이러한 극단적인 혐오 표현의 확대재생산을 막아야 한다.

독일에서는 정치인들에 대한 캐리커처가 매우 자극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명한 정치인을 교미 중인 돼지로 표현한 캐리커처에 대해서 독일 사법부는 정상적인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판시한 바 있다. 이제 우리도 이런 법적 판단의 선례를 만들어야 할 때다. 이를 통해 무엇이 한계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표현이라도, 그 안에 비판과 풍자의 의미가 담겨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해보려 시도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오로지 극단적 혐오를 표출하는 것뿐이라면, 이를 어디까지 관용해야 하는가?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키워드
#표현의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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