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보면 인류를 지배하려는 악당들이 등장한다. 항상 궁금했다. 의지는 알겠는데 대체 나 같은 건 지배해서 뭐하려고? 세월이 가고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인류를 지배하거나 하려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미래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를 보면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인류를 지배한다. 분개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는 인간이 자초한 결과다. 로봇 공학 3원칙 중 첫 번째가 인간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무엇일까. 인간이다. 해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통제하고 규율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판단이다. 해서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자기가 요구해 놓고 이제 와서 웬 딴 소리. 한편 인공지능에게는 이른바 지배욕구라는 것이 없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것은 인간만의 고유한 정서다. 인공지능이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지배욕을 배운다는 것은 호랑이가 노력을 통해 초식동물로 거듭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계기는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배를 대체하는 변곡점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 역시 인간의 자발적인 요청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원의 배분을 놓고 벌이는 제로섬 게임

자원의 배분을 놓고 인간 사회는 충돌한다. 어떤 이들은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굴러간다고 믿는 반면 어떤 이들은 간섭과 통제를 주장한다. 크게 보면 자유와 평등의 대결이다. 자유는 자원을 ‘배분’한다. 평등은 자원을 ‘분배’한다. 배분이나 분배나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많이 다르다. 배분은 이익 추구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분배는 별도의 주체가 따로 있다. 국가다.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기 위해 별별 핑계를 다 만들어낸 끝에 자신의 의지를 행사한다. 원래 국가가 하는 일은 폭력의 독점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성이 안 차는지 개인의 삶까지 독점하려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망상이 지나쳐 한 때 인간성 자체를 규율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스탈린이 그렇고 마오쩌뚱이 그렇고 크메르루주가 그랬다. 이들이 인간의 본성을 손보겠다고 결심한 끝에 죽인 사람들의 숫자를 다 더하면 2차 대전 때 죽은 사람의 숫자가 나온다. 여기에 죽은 사람들로 인해 고통 받은 가족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미국 정도 규모의 나라를 새로 세울 수 있다. 실험은 실패했고 이제는 그 누구도 그런 무식한 발상은 안 한다. 이들은 인간 개조는 포기했지만 폭력 독점 이상의 권리를 확보하는데 다시 몰두하는 중이다. 그게 시장에 대한 개입이다. 또 충돌이 날 수밖에 없고 이 충돌은 정치의 영역에서 펼쳐진다. 내버려두라는 사람과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두 세력의 대결은 일종의 정서적 제로섬 게임이다. 권력을 잡은 쪽이 신념대로 시장을 다루는 동안 권력에서 배제된 쪽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권력이 교체되고 상황이 바뀌면 이번에는 또 다른 쪽이 스트레스를 감수할 차례다. 분노하고 저주를 퍼붓는 동안 서로의 정신과 육체가 망가진다. 화를 내면 폐가 상하고 그 폐에 담배 연기까지 토핑을 하면 조기 사망할 수도 있다. 그렇게 죽기 싫으니 죽어라 상대를 죽이려든다. 내전內戰이다. 말로 싸우다가 어느 순간에는 왜 대한민국이 총기 보유 합법 국가가 아닌지 짜증이 난다. 그러나 인간은 공멸을 선택할 정도로 한심한 존재는 아니다. 내전에 지친 두 세력이 합의를 보는 일은 그래서 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지성이나 신념을 포기하고 대신에 양자가 공히 인정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존재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다.

죽어도 너는 싫다는 사람들 사이의 합리적인 선택

‘소득주도성장’이니 황당한 원전 정책 같은 것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정책 운용에 문제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여전히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달려든다. 상대에게 정책 결정권을 넘겨주기 싫은 상황에서 나도 안 할 테니까 너도 하지 마 뭐 그런 심리로 차라리 인공지능에게 재원의 배분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통제와 규제를 주장하는 쪽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피로에 지친 양자가 합의한 끝에 자연스럽게 권한을 인공지능에게 이양하는 것이다.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적 발상이라 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또한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뜩이나 대한민국은 공통의 국익이 없는 특별한 나라다. 각 정파政派가 제 입맛에 맞는 사적인 이익을 국익이라 우기며 서로 충돌하는 게 일상이다. 이때 계보도 없고 계파도 없고 현실에 대한 이익 추구도 없는 존재가 가능하다면 이 또한 고려해볼 만한 안이 아닐까. 처음에는 행정부에서 시작해 입법부를 거쳐 사법부까지. 아마도 최소한 지금처럼 인간이 자기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사안을 붙잡고 오류를 반복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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