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2월 28일 – 고교 평준화 발표

 이른바 고교 평준화라는 놀라운 입시 제도 개선안이 발표된 지 벌써 50년이 지났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는 고교 평준화. 제도 개선의 취지는 그럴 듯했다. 당시 수립된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정리하면 ①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촉진하고 ② 고등학교의 평준화를 기하여 학교 간 격차를 해소함은 물론 ③ 과학 및 실업교육을 진흥시키고 ④ 지역 간 교육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⑤ 국민의 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키며 ⑥ 학생 인구의 대도시 집중 경향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이 입시안은 3월 13일에 확정되었고 다음 해인 1974년부터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순차적으로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1980년에는 특별시와 7대 광역시를 포함하여 23개 시가 평준화 지역이 되며 나름 자리가 잡히는 듯했다. 그런데 확대는 거기까지였다. 학력의 하향 평준화 논란은 물론, 학교의 학생 선발권을 중앙 정부가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고, 자신이 다닐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학생에게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에 평준화를 실시했다가 비평준화로 환원하는 지역까지 생겨났다.
 
 고교 평준화 정책을 담고 있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84조에 대한 위헌 심판 청구도 있었다. 청구인은 고등학생과 고등학교 진학 예정인 중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였다. 자녀가 원하는 학교로 지원할 기회를 봉쇄하고, 원하지 않는 학풍이나 종교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에 배정되게 하여 학부모의 학교선택권과 종교교육권 및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청구한 것이다.
 
 결론은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합헌이었다. 국가는 헌법 제31조에 의해 학교 교육에 관한 광범위한 형성권을 가지고 있고,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84조는 고등학교 과열 입시 경쟁을 해소함으로써 중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학교 및 지역 간 격차 해소를 통해 고등학교 교육 기회의 균등 제공을 위한 것으로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현재 고교 평준화는 전국이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만 실시되는 불완전한 제도로 그 ‘확대’를 멈추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과 광역시에 살고 있고 그 외 많은 인구가 대도시에 몰려 있기 때문에 국민의 상당수가 50년 동안 고교 평준화 제도 아래 산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비평준화 지역이 많고 당초 생각했던 평준화의 긍정적인 요소가 정말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도 의문이다. 교육 제도의 변화를 성급하게 추구하는 것은 나도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50년 동안 사용해온 이 제도가 과연 이 시대와 미래 대한민국 교육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인지는 보다 심각하게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선 당초 제도 개선의 취지를 돌이켜보자. 제도 시행 후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가 촉진되고 과학 및 실업교육이 진흥되었을까? 학교 간 격차가 해소되고 지역 간 교육의 균형 발전이 도모되었을까? 국민의 교육비 부담이 줄었을까? 어찌 보면 이 중 하나도 달성된 바가 없다. 학생들은 여전히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고 사교육비는 부모를 괴롭히며 학교 간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학력 격차가 심해져 정상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 또 강남 등 학군 좋은 지역으로 인구가 몰려 부동산 시장을 흔들어놓았다. 우수한 학생을 집중적으로 길러내는 수월성 교육을 포기해야 하고 교육 효과의 하향 평준화를 우려하게 한다. 대체 고교 평준화 제도의 장점은 무엇일까?
  
 고교 선후배 간의 전통과 맥이 끊이고 학교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사라진 것도 평준화 영향 중 하나이다. 자신들이 졸업할 때 학교 수도꼭지를 바꿔놓고 나왔기 때문에 ‘먹은 물’도 다르다는 명문 학교 선배들 사이의 우스갯소리도 있다. 세칭 1류 학교라는 명문 고등학교 선배들은 후배들을 부정하고 3류 고등학교에서는 후배들이 선배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두드러지지 않는 단절이 사회의 화합을 저해하는 한 요소가 된다는 것은 너무 과장된 주장일까?  

 물론 고교 평준화 정책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리라. 정책 수혜자를 대상으로 한 고교 평준화 정책의 찬반 의견 조사는 이제까지 수차례 실시되었다. 그런데 대체로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폐지하자는 의견보다는 다소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양쪽의 입장은 커다란 이념적 명제를 내세우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자는 쪽에서는 교육의 기회 균등이라는 평등 이념을 강조하고,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경쟁을 통한 수월성 추구, 사학 운영의 자율성 신장, 학생에 대한 학교 선택 기회의 제공이라는 자유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면 교육의 기회 균등을 통해 진정으로 평등한 세상을 살 수 있게 되는 걸까? 이 점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처음 고교 평준화 제도를 도입했을 때 그게 쉬운 일이었겠는가? 어렵지만 끊임없는 고민과 개선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황인희 작가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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