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 KBS가 창립 된지 50년이 되는 해다. 그만큼 우리 방송계로서는 뜻 깊은 해다. 공영방송 KBS는 1973년 공영방송으로 새 역사를 시작한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엄청난 역할을 했고, KBS가 수행한 국민을 위한 공적책무는 금자탑을 쌓았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온 국민을 울렸다. <차마고도>, <누들로드>, <슈퍼피쉬> 등 KBS 글로벌 다큐멘터리는 한국문화의 품격을 높이는데 기여해 왔다. KBS 드라마는 한류의 제1 엔진이었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 KBS 미니시리즈 드라마는 한류라는 빛나는 이름으로 세계 문화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 <바람은 불어도>, <금쪽같은 내새끼> 등 KBS 1TV 일일드라마는 한국인 정서의 밥상이었다. 그리고 <가족끼리 왜 이래>, <첫사랑> 등 KBS 2TV 주말드라마는 한국 가족가치의 백과사전이었다. 또한 <용의 눈물>, <대왕 세종>, <불명의 이순신> 등 KBS 대하 역사드라마는 한국인의 혼을 담아내는 대서사시였다.

그렇지만 글로벌 미디어 환경변화와 함께 공영방송 KBS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OTT(Over-The-Top)와 GAFA(Google, Facebook, Amazon, Apple)로 대표되는 빅테크(big-tech) 기업들이 미디어 환경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국내 레거시(legacy) 미디어의 존속 발전문제가 심각한 과제로 부상됐고, 방송의 공적기능은 크게 약화되었다. 공영방송 50년을 맞이한 KBS는 글로벌 미디어의 신질서에 대응하는 새로운 공영방송 시스템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공영방송 오작동을 점검하고 새로운 방송시대를 열어야

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공영방송 거버넌스(governance) 시스템을 점검하고, 새로운 공영방송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방송계의 조류가 바뀌었다.

조류가 바뀌면 어종이 바뀌고, 어종이 바뀌면 어선을 바꿔야 한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조류가 바뀌었지만, 공영방송 KBS는 어선을 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 뉴테크놀로지에 의해 급변하는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서 공영방송 KBS는 표류하고 있다.

현재 공영방송 KBS 드라마 시청률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중 가장 최근 방송된 도경수ㆍ이세희 주연의 <진검승부>가 평균시청률 5.2%(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해 체면치레 했으나,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는 평균시청률 1.3%, <징크스의 연인>은 평균시청률 3.3%,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은 평균시청률 2.4%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급기야 시청률 1%도 못 미친 굴욕으로 최근 KBS는 2023년 수목드라마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공영방송 KBS 조직 내에는 패배의식이 가득하고, 전문 인력들이 공영방송 KBS를 떠나거나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또한, 공영방송 시스템의 본질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콘텐츠의 경쟁력 추락을 가속시켰다고 판단된다.

둘째, 공영방송 시스템이 오작동 되고 있다.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공익가치가 약화되고, 불공정 방송이 난무하는 등 공영방송 시스템이 오작동 되고 있다. 공영방송이 수행해야 할 공적책무는 여전히 유효하다. 정확하고 종합적인 정보 제공, 다양한 계층의 이해와 관심을 반영하는 프로그램 제공, 정치권력을 비롯한 사회와 환경에 대한 감시 역할, 갈등해소와 사회통합을 위한 공론장 역할 등.

공영방송 제도의 오작동 사례는 다양하다. 첫째, 이사회 여야 구성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추태가 되풀이 되고 있다. 둘째, 정파보도 피해자가 정파보도의 선두에 서 있다. 셋째, 제도는 그대로 두고 인적 보복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등이다. 그 결과 우리 공영방송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 공영방송은 글로벌 미디어의 신질서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정상으로 작동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필요한 때이다.

노영방송은 어용방송보다 더 위험

최근 노조가 공영방송 거버넌스에 막강한 행위자(player)로 등장했다. 이제 공영방송 경영진이 다수노조의 협력 없이는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 현실(paramount reality)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공영방송 노조가 경영행위에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경영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감시 혹은 견제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비정상성을 방증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사안은 공영방송의 노조가 독립된 개별조직이 아니라, 정치투쟁을 명확히 하고 있는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대리인 성격이 강해 중립성과 다양성이 침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가 방송경영에 개입하여 정상적인 방송경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상태를 비꼬는 용어가 ‘노영방송(勞營放送)’이다.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을 지지 않는 노영방송은 어용방송(御用放送)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공영방송 공정성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

방송 공정성은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의 주제이다. 방송 공정성 문제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지만, 일관성 있는 원칙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더라도 불공정했다’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방송보고서’, ‘악마적 편집’이라고 불리었던 ‘문창극 총리후보 지명자 교회강연 보도’ 등 방송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20년 7월 <KBS 뉴스9> ‘KBS판 검언유착 의혹사건’은 당초 ‘채널A 기자와 검사’의 검언유착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KBS 기자와 또 다른 검사의 유착관계가 발생한 사건’이다. 취재기자의 원고를 보도국 간부진들이 데스킹하는 과정에서 ‘제3의 인물’로 보이는 관계자와 나눈 대화록이 활용됐다는 의혹이다. 필자는 프로그램 편성, 제작, 심의 등 어느 한 단계에서만이라도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공영방송의 방송 공정성 훼손을 방치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공영미디어 거버넌스, 공익서비스 시스템이 창안되어야

글로벌 미디어의 신질서가 개막되면서 한국 공영미디어의 거버넌스는 궤도 수정을 요청받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공영방송 KBS 1TV, EBS, 아리랑방송을 통합하여 수신료 등의 공적자금을 대폭 지원하고, KBS 2TV와 MBC는 민영화를 통해 규제를 풀어주고 국내외 자본이 대거 투입될 수 있도록 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 국가발전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미디어 시스템을 검토할 단계가 되었다.

무엇보다 6000억 넘는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가 공영방송이라는 미명 아래 왜곡, 편파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낸 소중한 수신료가 공익적 콘텐츠 생산에 투입되도록 공영방송 시스템이 진화되어야 한다. 국민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되돌려 줄 수 있는 공영방송 시스템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 즉 공익서비스 강화다. 이를 위해 하나의 공영방송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공익서비스는 다양한 매체에 공적자금을 지원하여 공익서비스 총량이 확대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의 공익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가칭 <공익방송위원회>를 구성하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공익콘텐츠 생산을 권장, 장려, 지원하는 신박한 공익서비스 시스템이 창안되어야 한다.

황우섭 (미디어연대 상임대표, 전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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