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선보였다. 현행 주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도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행 제도가 근로시간의 양적 감소에는 기여한 면이 있지만, 일률적이고 경직적이어서 다양하고 고도화한 노사의 수요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이 개편의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근로자들의 최대 관심은 ‘주 최대 52시간으로 정한 현행 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개편방안이 장시간 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꼼수가 아닌지’로 향하고 있다. 펜앤드마이크는 정부가 밝힌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꼼꼼히 체크해, 근로자들의 관심 사항을 확인했다.

① 근로시간이 늘어날 가능성은?...오히려 ‘공짜 노동’ 없어져

고용노동부가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핵심은 ‘주52시간제 유연화’로 요약된다. 일이 많을 때는 집중적으로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충분히 쉬도록 해 궁극적으로는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현행 '주 52시간제'는 주 단위를 기본으로 해, 기본 근로시간 40시간에 최대 연장 근로시간이 12시간까지 허용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70년간 유지된 ‘1주 단위’ 근로시간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할 방침이다. 근로자 1명이 1주일에 1시간만 초과해 53시간을 일할 경우, 사업자는 범법자가 되기 때문이다.

사업자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근로자가 52시간보다 더 일을 하더라도 52시간만 일한 것으로 기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꼼수’ 기재가 ‘공짜 노동’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1주 단위’가 불합리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주52시간제'(기본 40시간+최대 연장 12시간)의 틀을 유지하되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거쳐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럴 경우 단위 기준별 연장근로시간을 살펴보면 '월'은 52시간(12시간×4.345주), '분기'는 156시간, '반기'는 312시간, '연'은 624시간이다.

하지만 정부는 장시간 연속 근로를 막고 실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분기 이상의 경우 연장근로 한도를 줄이도록 설계했다. 즉, '분기'는 140시간(156시간의 90%), '반기'는 250시간(312시간의 80%), '연'은 440시간(624시간의 70%)만 연장근로가 가능하게 했다.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전체 근로시간을 관리하게 되면, 주 단위 근로시간은 매주 달라질 수 있다. 일이 몰리는 주에는 근로시간이 많아지고, 일이 적은 주에는 반대로 줄어드는 식이다. 이 경우 한주에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근로시간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주52시간제 내에서 특정 주에 연장근로를 더하면 다른 주에는 연장근로를 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째 주에 연장근로를 활용해 69시간 근무하고, 둘째 주에도 63시간 근무를 했다면 3~4째 주에는 연장근로가 불가하다.

또 근로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서는 단위기간에 비례한 연장근로 총량 감축, 4주 평균 64시간 이내,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 또는 1주 64시간 상한 등 ‘3중 건강보호장치’를 통해 근로자를 두텁게 보호할 예정이다.

② 실근로시간단축 방법은?...포괄임금 오남용 근절과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중요한 프로젝트를 위해 '4일간의 집중 근무(1일 10시간)'를 한 경우에는 선택근로제를 활용해 1일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현행 주52시간 제도 하에서는 5일간 8시간씩 근무하고, 그중 4일 2시간씩 연장근로만 가능했다. 근로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서 무한정 공짜야근을 조장하는 포괄임금 오남용이 횡행한 것이 현실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을 통해 실근로시간을 강력히 단축할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을 통해 장기휴가를 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현금만이 아니라, 미래의 휴가(저축휴가)로도 가능토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징검다리 연휴·소그룹별 순환 휴가 등 '눈치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자녀 등·하원 시 시간 단위 휴가, 10일 이상의 장기휴가 등 다양한 휴가 활용을 적극 활성화할 계획이다. 근로시간·근무방식의 다양화 등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통한 체감 근로시간 단축 및 일·생활 균형 문화도 지속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일하고 일한 만큼 충분히 자유롭게 쉰다'는 개념은 부족한 상황이다. 연장근로를 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통해, 장기휴가를 활성화함으로써 충분한 휴식을 통해 노동의 질이 제고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③ 노사입장은?...양대 노총과 경영계 반응은 극과 극

경영계는 6일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화해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한국경영자총협회. [사진=연합뉴스]
경영계는 6일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화해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한국경영자총협회. [사진=연합뉴스]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가능하게 한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두고 노사 입장은 엇갈렸다.양대노총은 노동시간 제도개악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을 예고했고, 경영계는 낡은 법제도를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대해 “초장시간 압축노동을 조장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방안인 '11시간 연속휴식 부여'조차 포기했다는 주장을 펴며 "11시간 연속휴식을 하고 싶으면 1주 69시간 이상을 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1주 64시간까지 일하라는 것으로, 산재 과로인정 기준인 1주 64시간을 꽉 채우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안대로 연단위 연장노동 총량관리를 하게 되면 4개월 연속 1주 64시간을 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면서 "주 64시간 상한제가 현장에 자리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덧붙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논평을 내 "5일 연속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2시까지 일을 시켜도 합법이 되는 근로시간 제도개편에 노동자의 건강과 휴식은 없다"며 "오직 사업주의 이익만 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민주노총은 "사용자가 주도하고 결정하는 노동시간 선택권, 연속·집중 노동으로 무너지는 건강권, 근로기준법마저 적용받지 못하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와 단기 쪼개기 노동계약이 주류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휴식권은 그림의 떡"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정책의 재탕에 불과한 실효성 없는 포괄임금제 규제, 감독을 포함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은 결국 사용자의 이익으로 귀결될 뿐 노동자의 이익은 찾을 수 없는 독으로 가득 찬 개악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노동시간 제도개악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을 예고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노동시간 제도개악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을 예고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반면 경영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정부 개정안을 계기로 그 동안 산업현장에서 주단위 연장근로 제한 등 획일적·경직적인 현행 근로시간제도로 인해 업무량 증가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나 워라밸 요구확대에 따른 다양한 시간선택권이 제한돼 온 어려움이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 변경은 연장근로 총량 내에서 주문량 증가, 업무량 폭증 등 업무집중이 필요한 경우에 주로 활용되는 것"이라며 "극단적 사례를 들어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거나 근로자 건강권을 해친다는 노동계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근로시간 유연화 조치가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근로자 건강권 보호조치를 11시간 연속휴식보장 등 한 두 가지 방안으로 제한하기 보다는 노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건강조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④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다수당인 민주당 반대가 변수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개편안 중에는 법을 고쳐야 하는 사안이 많다. 하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정부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속 다양화하고 고도화한 노사의 수요를 담아내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야당과 노동계와의 진정성 있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마냥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여야는 초당적 견지에서 해법을 도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 노동계는 불통 상황을 끝내고 사회적 대타협 노력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이날부터 다음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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