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차라리 놀고 싶어서라고 솔직히 말해라. 별 것도 아닌 일로 만날 아옹다옹 얼굴 붉히고 싸우다보니 지겨워서 바람 좀 쐬러 나왔다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야기다. 지난 주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유럽 출장을 다녀오셨다. 출장 목적은 두 가지다. 베를린 국제 관광 박람회에 참석해 관광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국제아동도서전을 참관해 내년 부산 국제아동도서전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베를린 국제 관광 박람회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알려져 있고 국제 아동 도서전도 만만찮은 행사로 알고 있다. 충분히 참석, 참관할만하다. 그런데 6박 8일 중 이 두 행사를 빼면 나머지 사흘이 로마 일정이다. 주 이탈리아 대사 만찬, 주 이탈리아 문화원 업무 보고 그리고 세계 문화유산 시찰을 하신다는 건데 이거 하루면 충분하다. 오전에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 구경하고 오후에 문화원 업무 보고받고 대사관에서 저녁 밥 얻어먹으면 된다. 그런데 사흘이나? 개도 안 웃는다. 이래서 짜증난다. 그래서 불쾌하다.

특권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
 
방송국 기자가 일행을 따라가서 물어봤다. 국회 회기 중에 해외 출장 오신 것에 대해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대답이 가관이다. 위원장인 홍익표씨는 이렇게 대꾸했다. “여기 와서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되지.” 대체 뭐라는 거니. 이 비논리적인 선문답을 이해하려면 홍씨의 대답에서 생략된 부분을 유추해야 한다. “알 만한 사람이”, 이 말이 빠져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 업무랑 상관없이 놀러가는 거 어제 오늘 관행도 아닌데 그런 걸 불편하게 따져 물으니 싫은 거다. 특권을 건드리니 짜증나는 거다. 감히 국회의원에게. 그래도 국민의 힘 이용호 간사는 성실하다. 똑같은 질문에 전 세계의 트렌드를 둘러보고 국회가 어떻게 하면 정책적 입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걸 보러 온 거라는 대답했다. 어쨌든 말은 된다. 뒷받침을 잘하기 위해 왔다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니까 홍씨는 이런 최소한의 성실도 귀찮은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 노비가 양반에게 당신은 왜 양반입니까 묻는 것처럼 들린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랜 특권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특징이다. 우리도 안다. 공직자들 일 핑계로 가끔 해외로 놀러간다는 거, 기관장들 시찰이니 협약 체결이니 해서 슬그머니 외국 나간다는 거. 그래도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내가 방송국 기자였다면 홍씨에게 추가로 물었을 것이다. 지금 다니시는 여행 경비는 누구의 돈입니까. 질문에 대한 답이 정말 궁금하다.
 
봉사라굽쇼?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특권은 어마어마하다. 45평 사무실에 연봉이 1억 5천 여 만원이다. 보좌 직원 9명을 고용할 수 있으며(월급도 자기가 안 준다) 차량 유지비, 유류비, 교통비가 공짜다. 중소기업 하나를 경비 없이 4년 동안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항상 말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이런 조건의 봉사라면 나도 하고 싶다. 이분들은 봉사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다. 받을 거 다 받고(아니 최대한으로 받고) 하는 것을 우리는 봉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연봉 1억 5천 여 만원을 받고 무료 급식소에서 일하는 사람을 우리는 봉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봉사는 자기 돈으로 하는 것이다. 자기 돈, 자기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을 봉사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제발 봉사 운운 하지 마시라. 듣는 국민 혈압 상승으로 돌아가신다. 조건은 그렇다 치자. 실적이 그에 상응한다면 못 해줄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 국민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이들이 그만큼의 성과를 냅니까. 성과가 없으면 퇴출이 답이다. 그러나 입법부를 없앨 수는 없으니 답은 경비 축소다. 우리보다 잘 사는 북유럽 국가들의 의원 세비는 우리나라 의원들의 절반 수준이다. 왜 이런 건 안 ‘시찰’하는 거니. 내년 총선의 의제가 어떤 것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부록으로 국회의원 특권 전면 폐지, 세비 등 제반 비용의 축소를 같이 내건다면 그나마 신선하게 들릴 것이다. 뼈를 깎는 쇄신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죽는다. 뼈 대신 다른 것을 깎아라.
 
제발 들키지 마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단체 유람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기본소득당 대표가 공무 수행 시에만 이용이 가능한 김포공항 귀빈실을 가족 여행에 이용했다. 규칙과 예규에 따르면 귀빈실은 공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만 이용 가능하다. 공무상이라도 신청자의 부모는 이용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몰랐다고 말하지 마라. 죄송하다고도 말하지 마라. 들키지 마라. 몰래, 철통보안으로 그러고 다녀라. 그게 예의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