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사진=연합뉴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서화(書畵)를 무척 좋아했다. 서예가와 화가가 되는 꿈도 꾸었지만, 어떻게 학자와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러나 서예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고, 그래서 20대부터 명사들의 서예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서화 컬렉터로 거듭나게 되었다. 현재 한중일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정치가, 문화인, 예술인 등 서예 작품 약 500점을 소장하고 있다. 

비교문화론과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전체론적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진상을 밝히는 연구에 투신한 나는 문헌과 사료의 일환으로 근현대사 주요 인물들의 서간(書簡)과 서예 작품을 수집해 왔다. 그들의 정신과 인격을 엿보는 보조적인 아날로그 문헌 자료로 간주해서 애지중지한다.

서예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사대부(士大夫)의 예기(藝技) 가운데 하나다. 한중일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한자를 통해서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습득했다. 적어도, 근현대 정치가와 지사들에게 서예는 가장 애착하는 취미였고, 자신의 신념과 지향을 가시화하는 최고의 표현 수단이다. “글씨는 그 사람(書如其人)”이란 말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그동안 한국 근대사를 대표하는 백범 김구의 서예는 안중근과 함께 민족의 거성, 독립영웅으로 절대적인 추앙과 사랑을 받아 왔다. 그래서 일찍부터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과 함께 함께 그의 서예 작품을 주목해 왔다. 

백범 김구

 

김구의 서예는 이른바 ‘총알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38년 가슴에 총상을 입고 수전증을 앓게 된 그는 글씨를 쓸 때 손이 떨게 되면서 글씨가 비틀비틀 흔들려 ‘떨림체’가 되고 말았다. 어쩌면 이 떨림체야말로 난필(亂筆)의 서예를 오히려 매력있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김구의 필체는 미필(美筆)이 아니라 일종의 악필(惡筆)이다. 그래서 나는 김구의 글씨를 추서(醜書)라 부른다. 그의 글씨는 율동과 변화도 없으며, 무척 경직된 일종의 ‘죽음의 필체’라고도 하겠다. 더구나 글씨가 지면에 꽉 들어차서 ‘여백의 미’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60여년에 걸쳐 고문자(古文字)와 필체만을 연구해 온 중국인 서예가 친구가 있다. 수년전 김구의 서예를 사진으로 보여주고 감정을 받았던 적이 있다. 친구의 감정은 “글씨로 보아 교양과 학식도 없고, 욕심이 많은 자이며, 억압감과 살기(殺氣)가 보인다”고 평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는 곧바로 1896년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김구의 흉측한 얼굴이 떠올랐다. 역시나 “객관적으로 보는 눈은 같다”며 크게 공감했다.

2015년경 상하이에서 꽤 용하다는 관상 및 점술가에게 김구의 사진을 내보인 적이 있다. 관상가는 “추상(醜相), 빈상(貧相), 악상(惡相)이다. 이마가 좁아서 도량이 없고, 못생긴 만큼 가난하며, 심술 굳은 악성(惡性) 때문에 살인할 상이요, 일은 하되 늘 실패할 살이 붙었다”고  평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섬뜩했다. 김구는 테러리스트와 암살자로서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치가로서는 무능하고 무력했던 그의 성격과 성품이 얼굴에 씌워 있던 것일까? “상판은 마음에서 생긴다(相由心生)”는 중국의 속담이 과연 옳았다며,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좌파들은 독립운동가를 무한정 미화하는 경향이다. 안중근의 서예도 예외는 아니다. 그에 대한 숭경심에서 그의 서예 작품마저 중국이 낳은 위대한 서예가 안진경(顔眞卿)과 비견하는가 하면, “신품(神品)의 경지에 달했다”며 찬미하고 신격화한다.

예를 들어, 구본진이라는 변호사는 ‘필적학(筆跡學)의 대가’를 행세하며,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소심하고 보수적이며, 공손하고 검박하지만, 친일파 글씨는 과시적이고 사교적 경향이 있다”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감정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좌파들은 필적 감정마저도 이성적 판단이 아닌 대중의 시선에 영합하고 찬양하는 편향성을 띤다.

객관적으로, 우남 이승만, 일당 이완용, 구당 유길준, 동농 김가진, 설산 장덕수, 몽인 정학교, 죽산 조봉암, 해공 신익희, 어문 황철, 김옥균, 서재필은 물론이고 민비 암살에 가담했던 우범선, 이진호, 이범래의 글씨야말로 김구와 안중근의 글씨에 비해서 훨씬 아름답고 달필이며, 교양이 배어 있다.

역사의 위인들이 아날로그로 남긴 것이 유묵(遺墨)이다. 그래서 나는 ‘유묵 사상’이란 말을 자작해서 쓰고 있다. ‘문여기인(文如其人)’이란 말처럼 문장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하지만, 나는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부르고 싶다. 글씨야말로 본인의 인격과 정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유묵은 글씨를 통해서 자신의 신조와 사상을 드러낸다. 후대인들은 역사인(歷史人)이 남긴 유묵을 감정과 편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진실된 마음으로 역사인과 역사상(歷史象)을 밝히고 말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일개 한민족의 지식인으로서 그날이 오기을 고대할 따름이다.  

지난달 27일 스타벅스 코리아가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증한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 '유지필성'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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