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만명이 50조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테라·루나 코인 사태의 핵심 당사자인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송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은 권 대표의 송환을 위해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과 싱가포르 당국도 수사를 진행중이다. 미국 검찰은 권 대표에 대해 8개 항목에 걸쳐 기소를 한 상태이다.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당사자인 권도형이 동업자와 함께 몬테네그로 법정에  소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당사자인 권도형이 동업자와 함께 몬테네그로 법정에 소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칼자루는 몬테네그로 사법당국이 쥐고 있다. 테라·루나 사태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직전인 지난 해 4월 한국을 떠났던 권 대표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된 코스타리카 여권을 사용해 두바이행 비행기 탑승을 시도하다가 23일(현지시간)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도피 11개월 만이다.

도주 11개월 만에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도형 신병 확보 쉽지 않아

법무부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과 함께 몬테네그로 당국에 권 대표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겠다고 24일 밝혔다. 검찰은 이미 인터폴과 공조해 지난해 9월 적색 수배를 했고, 10월에는 외교부에 요청해 여권을 무효로 했다.

대원외고 국제반을 졸업한 뒤 미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권 대표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인턴을 거친 뒤 2018년 소셜커머스 티몬 창업자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와 손을 잡고 테라폼랩스를 설립했다. 한국 국적자이다.

국내 피해자들은 권 대표를 한국 법정에 세워서 재판을 받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법인 LKB(엘케이비)앤파트너스는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USD(UST·이하 테라)의 폭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권 대표의 신병확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서 크게 4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① 권도형, 현지에서 수년간 소송 벌이며 송환 거부할 수도

우선 권 대표가 현지에서 소송으로 시간을 끈다면 국내 법정에 서기까지 수년이 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BBK 사건'의 당사자인 김경준 씨는 2004년 5월 미국 자택에서 체포됐으나 2007년 11월 국내로 송환됐다. 3년6개월이 걸렸다. 미국 법원의 범죄인 인도 재판과 국무부의 승인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1997년 4월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의 국내 송환에도 4년 4개월이 걸렸다. 2011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체포됐으나 2015년 9월에야 한국에 송환됐다. 자국인을 외국으로 보내기 위한 미국 법원의 결정 과정은 그만큼 길고 복잡했다.

② 몬테네그로 당국이 단순 추방 결정...권도형은 또 다시 도주 가능해져

몬테네그로 당국이 권 대표를 단순 추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가간 범죄인 인도의 기본 전제는 범죄혐의에 대한 공통분모이다. 즉 권 대표 인도를 요청한 한국에서 적용한 범죄 혐의가 몬테네그로에서도 범죄로 인정될 경우에 범죄인 인도가 가능해진다.

몬테네그로 당국이 권 대표를 단순 추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진=YTN 캡처]
몬테네그로 당국이 권도형을 단순 추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진=YTN 캡처]

몬테네그로 사법체계가 권 대표의 가상화폐 사기 행각을 불법으로 규정할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권 대표는 가짜 여권을 사용한 혐의만을 적용받게 된다.단순 추방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권 대표는 또 다시 도주할 기회를 얻게 된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의 핵심 인물인 스티븐 리(54·한국명 이정환·미국 국적) 전 론스타코리아 지사장이 그런 사례다. 그는 2017년 8월 이탈리아에서 체포됐지만 현지 형사법상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현지 재판부 판단으로 석방됐다. 스티븐 리는 이후 6년이 지난 3월 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체포됐다.

③ 미국 송환 가능성...미국 검찰은 권도형을 8개 혐의로 기소하고 백악관도 의회에 보고

현재 권 대표를 자국의 법정에 세우려는 나라는 한국, 미국, 싱가포르 등 3개 국이다. 미국 법무부도 지난달 테라USD 폭락 사태 수사에 착수했다. 싱가포르 경찰은 800억 원 규모의 가상화폐 사기 혐의로 피소된 권 대표에 대해 지난달 수사에 착수했다. 그 중 미국이 강력한 후보국가로 꼽힌다. 몬테네그로 법원이나 법집행부서에서 권 대표의 신병을 미국으로 인계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미국 검찰은 강력한 처벌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 검찰은 권도형을 증권 사기,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금융사기와 시세조작 등 총 8개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 뉴욕 검찰은 권도형을 증권 사기,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금융사기와 시세조작 등 총 8개 혐의로 기소했다. [사진=YTN 캡처]
미국 뉴욕 검찰은 권도형을 증권 사기,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금융사기와 시세조작 등 총 8개 혐의로 기소했다. [사진=YTN 캡처]

미국 수사 당국은 권 대표가 '테라·루나 생태계'라는 가상화폐 구조를 설계하고, 이 시스템이 계속 수익을 창출해내면서 유지될 것처럼 꾸며 투자자들을 기만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그는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다른 회사와 짜고 시세를 조작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미국의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속아 넘어가 전 재산을 날린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 백악관도 권 대표의 사기 행각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지난 20일 하원에 제출한 연례 '대통령 경제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권 대표가 고안한 테라USD(UST)와 이에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자매 코인 루나 사례를 소개했다.

백악관은 "암호화폐 자산은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해로울 수 있다"며 "해당 산업 참여자들은 기존의 법과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고, 개인 투자자들을 겨냥한 사기 유형의 불법행위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 암호화폐에 어떤 근본적인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④ 한국 송환 가능성...사법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관건, 권도형이 한국 국적자라는 점도 변수

법무부와 검찰은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권 대표를 신속히 국내에 송환해 우리 사법 관할권 안에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권도형이 한국 국적자라는 점도 국내송환에 유리한 점이다. 일단 외교 채널을 통해 몬테네그로 측과 접촉하는 한편, 법무부 소속 검사를 현지에 파견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몬테네그로와 한국은 '범죄인 인도에 관한 유럽협약' 가입국"이라며 "법률과 국제협약에 따라 신속히 송환될 수 있도록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보다 먼저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는 것이 신병 확보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권 대표가 국내 법정에 선다면 테라-루나의 증권성 판단에 따른 자본시장법 적용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가상자산 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를 규율·처벌하는 법안이 없다. 따라서 검찰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죄와 자본시장법 위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면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와 이 가치를 유지하는 데 쓰인 ‘루나 코인’이 증권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 금융당국은 ‘증권성’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하며 테라·루나가 증권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권 대표가 한국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법정에서 테라-루나의 증권성 판단 여부와 자본시장법 적용 여부로 다툼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기소하지만 재판부가 인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권 대표가 일단 미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이후 국내 법정에 세우는 게 철저한 처벌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즉 미국이 권 대표 신병을 먼저 확보해서 재판을 마무리하면 권 대표는 현지에서 형을 살게 된다. 한국 사법당국은 수감 중인 권 대표를 국내로 데려와 수사와 재판을 받게 하는 '임시인도'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도형, 비트코인 1만개 현금화"…검찰, 송환 총력.2023.02.19.(사진=연합뉴스TV)
"권도형, 비트코인 1만개 현금화"…검찰, 송환 총력.2023.02.19.(사진=연합뉴스TV)

양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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