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21일 국회 과방위에서 민주당은 방송법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결정을 다수결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국회본회의 의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여당은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판의 요지는 개정법안이 현재의 노영방송 체제를 영구화한다는 것이다.

작년말 민주당이 정한 이 개정법안 중 KBS, MBC 등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 방안을 보면 이사를 21인으로 구성하되, 국회에서 5인, 시청자위원회에서 4인, 방송언론학계에서 6인, PD연합회, 방송기자협회, 방송기술인연합회등 방송현업단체에서 6인으로 각 추천하는 안이다.

민주당은 개정 취지를 정치적 독립을 위해 정치권 추천을 줄이고 다원주의를 위한 다양성확보를 위해서 시청자와 방송학계 및 방송 현업종사자에게 추천권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사 구성에서 국회 추천 수를 줄이고 다른 집단을 넣는 것은 외형상으로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 과잉으로 모든 분야가 정치화된 지형에서는 현재의 양극화된 정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기에 의미가 없다. 오히려 언론노조의 영향력이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방송계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행보를 취하는 언론노조의 영향력이 발휘될 우려가 있다. 노영방송 영구화의 우려는 이런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정책입법을 통해서 가치를 배분한다. 정치력이 잘못 행사되는 것이 문제이지 국회의 추천 수를 줄이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공영방송의 관리감독이라는 책임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부담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개정 법안은 공영방송의 현재의 상태를 유지해서 현재의 정치적 구도를 지속하기 위한 당파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청자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도록 하는 안의 문제는 추천권을 행사하는 시청자위원회를 현재의 공영방송이 선정한 위원회로 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이사회의 구성원을 피감기관이 선정한 시청자위원회에서 추천하게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시청자 집단이 어떠한 이유로 공영방송의 이사진 구성에 추천권을 가져야 하는지 설명이 부족한데 공영방송의 공공성 확보와 책무 수행의 감독을 위해서 시청자에게 추천권을 부여하는 것이 유효적절한 것이라는 근거에 대한 논의가 있었어야 했다. 한편 다매체 다채널 상황에서 공영방송만의 단일한 시청자의 지위를 어떻게 특정할 것인지의 문제도 있다.

민주당의 개정안에서 가장 많은 이사 추천권을 가진 것이 방송학회와 방송직능 단체등 방송 내외부의 관계자 집단이다. 무엇보다도 대표성이 문제인데, 특정한 단체를 지목해서 법으로 규정하여 추천권을 부여하는 것은 문제다.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단체의 추천은 당연히 이해충돌 문제가 생길 수가 있으며 중립적인 위치에서 관리 감독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공영방송 이사진을 구성하는데 사회의 여론을 반영하기 보다는 방송관련 단체에 과다한 추천권을 부여하여 과잉 대표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경우 역시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 지배력이 현재의 지형을 유지하게 하여서 노영방송을 지속하게 한다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된다.

개정안에 의해서 이사진을 구성하면 공영방송에서의 언론노조 지배의 현상이 유지될 것이 예상된다. 공영방송이 국민의 방송으로서 추구해야 할 국민통합과 다양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 갈등을 만들어내는 정파적 도구로 사용되어온 그동안의 상황에서 볼 때에 언론노조지배의 현상은 이러한 경향을 더 고착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공영방송의 필요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 공영방송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개혁을 거부하는 현상 유지라는 비판이 있다.

노영방송 체제를 영구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현재의 방송 내부 지형의 지속을 위해서 공영방송을 사용(私用)방송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영방송은 국민 국가의 미디어 포털로서 국민 통합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공영방송은 국가의 제도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노영방송 영구화 우려를 제기하는 취지는 이러한 국가 제도가 사용화(私用化)되는 것 즉, 사회제도로서의 공영방송의 의미가 상실된다는 것이다.

지난 공영방송 거너번스 논의가 이와같이 이사 선임 방식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있었지 공영방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적 책무 수행과 이를 어떻게 관리감독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공영방송에 대한 관리감독과 책임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그냥 현재의 방송종사자에게 맡기는 것으로 결론 지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포털 규제 논의에서 자율 규제가 아닌 법규범을 만들어서 타율적 규제로 가야한다는 논의가 되는 상황에서 방송, 특히 운영 위기와 존속 여부 논란이 있으면서 정파적 운용으로 정치도구화 된 공영방송의 경우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현재의 공영방송의 문제의 핵심은 공영방송이 정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인데 공공성을 내세우면서 그렇게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유화된 공공성이 공영방송을 망가뜨리고 있다. 공영방송의 근거가 되는 공공성을 분명하게 개념화하여 객관화하고 제도화하여야 한다.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공영매체가 다수 운영되는 한국적 다공영체제의 해소를 위한 공영방송의 재구조화와 민영화가 요청된다. 공영 부문이 방만하게 유지되고 확장되는 것은 공공성 개념이 분명치 않아서 남용되는 경우다. 그동안 공영방송 개선 논의에서는 1공영 다민영체제로 개혁을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공영방송의 역할과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으로서의 공영방송법안, 공영방송위원회안등이 이미 제안되어 있다.

민영화에 대한 반대 주장은 방만한 공영방송의 운영과 함께 실질적으로 사유화된 공공성의 문제를 가리고 있다. 지금 진행되는 YTN 민영화 절차는 민영화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므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서 2020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중장기방송제도개선정책제안서의 공영방송협약제도를 눈여겨 볼만하다, 방송 재허가나 방송평가를 협약제도로 대체하는 것으로서. 공영방송의 지위 부여와 운영 조건을 계약으로서 체결하고 계약에 의한 이행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협약의 형태로 구체화함으로써 공영방송 개념이 불확정 상태로 유지되거나 무한히 확장됨으로써 공공성이 오용되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보인다.

공영방송협약제도에서의 핵심은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정하는 것이고 그 내용의 핵심은 공공성과 함께 다양성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을 정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공적인 것은 합의를 통해서 비로서 개념화되고 실행력을 확보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공적 책무의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적 책무의 설정과 그 실천의 어려움은 절차적 투명성의 추구가 미디어 가치로서 실천 가능한 최저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최저선으로서의 투명성 구현을 위해서 합리적 절차 설계와 절차적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최저한의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영방송의 노영방송화 문제에 대해서 노영방송을 유지하는 제도적 기초가 된 편성위원회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이라면 공영방송의 공공성 책무에 대한 관리 감독의 필요가 있으므로 그러한 차원에서 편성위원회 제도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동안 공영방송에 대한 문제를 방송 분야로 국한시켜서 방통위의 정책 과제로서 그리고 국회의 과방위에서의 방송법 개정논의로서만 다루어져 왔다. 제도로서의 방송은 언론은 물론 생산물인 문화 콘텐츠를 포함하는 여러 분야에 관련된 것이다. 편성위원회 관련해서는 노동문제와 함께 언론제도의 측면이, 콘텐츠 관련해서는 문화정책의 측면이, 뉴스프로그램 관련해서는 저널리즘의 측면과 언론 제도와 관련해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 문제에 대한 접근을 다기화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분야와의 통합된 논의를 통해서 제도로서의 공영방송이 재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공영방송 문제의 배경에 정치문제가 있다. 제6공화국 체제에서의 과잉 정치 현상과 양극화된 진영정치가 정치적 혼란을 만들고 있다.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논거로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 공공성을 사유화하는 정치적 접근을 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거버넌스 논의 이전에 정치 거버넌스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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