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 도착한 차이잉원 대만 총통. [사진=월스트리트저널]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9일(현지시각) '경유' 형식으로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이 이날 보도했다. 중국이 차이 총통의 방미에 격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은 이번 일을 빌미로 대만에 공격적인 조치를 취하지 말 것을 중국에 촉구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이유로 3년 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마지막 방미는 지난 2019년으로, 그 전엔 2016년부터 3년 간 '경유' 형식으로 이뤄져왔다. 미국-대만 외교 관계가 공식적으로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이 총통이 국가 정상 자격으로 방미할 경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중국의 반발이 촉발될 수 있기에 나온 일종의 '책략'으로 볼 수 있다.

차이 총통은 '민주의 파트너, 공영(共榮)의 여행'이란 테마 하에 대만을 외교적으로 인정하는 13개 국가들 중 2개국인 과테말라와 벨리즈(Belize)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뉴욕과 로스엔젤레스를 거치게 되는 약 9박 10일의 여정을 시작했다. 과테말라·벨리즈 방문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방문 사이에 이뤄진다.

차이 총통의 방미 일정은 공식적·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없다. 다만 미국과 대만 언론 보도를 종합했을 때 가장 중요한 일정은 다음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을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 의장과의 회동이며 30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중국 견제 등 대만 지원을 옹호하는 보수 성향의 허드슨 연구소 싱크탱크 방문도 이뤄질 예정이다.

그외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과는 만남이 없을 전망이다. 다만 얼마 전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있었던 로라 로젠버거 주대만 미국연구소 의장이 차이 총통을 미국 일정 동안 호위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밝혔다. 미 국무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주대만 미국연구소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미-대만 관계의 관리·유지를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차이 총통의 이번 방미는 중국의 격렬한 반발로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반발은 차이 총통이 이틀간 뉴욕에서 묵을 미드타운 호텔 주변에서 이미 감지됐다. 차이 총통을 환영하는 인파보다 반대하는 친중 인파가 훨씬 많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와 미국 성조기를 든 차이 총통 환영 인파 수십 명은 거리 반대편에서 중국 오성홍기를 든 수백여 명의 친중 인파에 숫자로 압도됐다"며 "일부 중국 지지자들은 차이 총통을 '반역자'라 지칭하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 중 일부는 확성기로 "차이잉원을 타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반면 대만 지지자들 중엔 대만 상징인 흑곰 복장을 입은 사람도 있었으며, "대만 가자!"는 구호가 나왔다.

차이잉원 총통을 환영하는 인파가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와 미국 성조기를 들고 있는 모습. 대만의 상징인 흑곰도 보인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중국 정부의 반발도 예상대로 격렬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이번 여행은 '경유'가 아니라 대만이 돌파구를 찾고 '대만 독립'을 선전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제는 중국이 과잉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대만 독립' 분리주의자들을 지독하게 방조하고 지원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중국은 특히 차이 총통과 매카시 하원 의장의 회동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대만 정책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차이 총통과 매카시 의장과의 그 어떤 만남도 중국으로부터의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했고, 중국 대만사무판공실의 펑리옌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이에 단호히 반대하며 반드시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미국은 대만 총통의 '경유' 형식 방미는 예전부터 흔하게 있었던 일이라면서 중국이 이를 빌미로 대만에 공격적인 행동이나 조치를 취해선 안 된다고 맞경고하고 나섰다.

존 커비 백악관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차이 총통의 이번 미국 경유는 미국과 대만의 오래 지속된 비공식적 관계, 또 미국의 변하지 않은 하나의 중국 정책과 일치한다"며 "차이 총통의 (중미) 순방에 따른 경유는 대만의 결정으로 경유는 방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적이며 비공식적인 것"이라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번 경유를 대만 해협 주변에서의 공격적인 행동을 강화하기 위한 구실로 활용해선 안 된다"면서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거칠게 반응하거나 반발할 이유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 총통과 매카시 의장이 회동할 경우 지난해 8월 초의 군사적 긴장 상태가 양안에 다시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당시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이 대만을 1박 2일의 일정으로 방문한 직후 중국은 대만 주변에서 보복성 군사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기에 미국이 중국에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차이 총통은 순방을 떠나기 전 대만을 선의의 세력으로 묘사했으며,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통해 자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대만은 세계 경제가 상호 번영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강조하기도 했다고 월스트리트는 전했다. 이는 중국을 점점 더 불안정한 존재(destabilizing one)으로 보고 있는 서방에 대만이 힘을 합치자며 보내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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